첫 번째 시험을 준비하던 해, 7월쯤, 허리가 아프기 시작했다. 오래 앉아 있어서 그런 것으로 생각했다. 공부 시간을 줄이고, 침을 맞으러 다니고, 걷기 운동을 시작했다. 그런데도, 나아지지 않았다.
'왜 이렇게 아프지..?
아? 나 지금 허리가 아픈 게 아닌 것 같은데?‘
설마 싶었다. 그 다리는 아프면 안 되는 다리였다. 병원을 가서 의사가 예전 병력과 상관없다고 말하면 나아질 것이라고, 심리적 불안으로 아프다고 느끼는 걸 거라고 생각하며 몇 년 만에 대학병원을 예약했다.
병원 예약 날짜를 기다리며 나는 신께 빌었다.
‘설마 또 수술해야 하는 거 아니죠? 당신이 정말 존재한다면 그러면 안 되잖아요. 저 지금 제 인생에서 가장 열심히 살고 있는 거 아시잖아요. 이번만큼은 안 돼요. 제발요.’
종교도 없으면서 일주일 동안 아픈 다리를 부여잡고 애원했다.
그렇지만 신은 존재하지 않았다. 나는 또다시 수술을 받아야만 했다. 세 번째 수술이었다. 과거의 일들이 스쳐 간다. 10년 전 일이지만 생생히 느껴지는 감정들. 병원에 다녀온 뒤, 일주일을 울었던 것 같다. 공부하다가도 울컥, 밥을 먹다가도 울컥, 남들은 한 번도 안 하는, 아니 그런 병이 있는지조차 모르는데 나는 왜,, 왜 나만,,, 3번이나 받아야 하나요, 그것도 하필 이 시기에, 나는 올해 임용 합격해야 한다고요. 내가 지금 얼마나 열심히 살고 있는데... 왜! 세상에 대한 분노가 가득했다.
일주일을 울고불고, 원망하니 감정이 조금 가라앉혀졌다.
이성적으로 생각해야 했다.
자, 우선 내 병이 지금 당장 고치지 않는다고 생명에 지장을 주는 것은 아니잖아. 그럼 현실적으로 생각해 보자. 우선 올해 시험이 4개월 정도 남았으니, 이 기간만 참자. 그 후에 수술해도 늦지 않아.
4개월이다.
“지금껏 열심히 한 만큼만 아니, 더 최선을 다하자. 무조건 붙자.”
그때는 그것이 가장 현실적이고 효율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합격 후, 교사가 된 다음 병 휴직을 하면 돈도 어느 정도 나올 테니 그때 수술을 하는 게 이득이라고 생각했다. 그럼, 수술비 걱정도 덜 할 테니까.
”합격“ 두 글자만을 보고 달렸다.
일주일에 한 번 쉬던 휴식도 없앴다. 『무한도전』은 나중에 다시 보기로 보면 된다. 친구들과의 연락도 단절했다. 합격하고 멋있게 등장하면 된다. 무조건 합격해야 한다.
그렇지만, 세상은 그리 만만하지 않았다.
불합격과 수술.
내 삶에 놓인 2개의 과제. 이것을 어떻게, 잘, 효율적으로 해결해야 할까?
무엇부터 해야 할지 전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지난 1년간 수많은 교육 이론과 방법들을 배웠는데 지금 내 과제를 해결해 줄 수 있는 방법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지난 1년간 우리 집은 철인 3종 경기를 나눠서 하고 있는 듯했다. 엄마는 생활비를, 아빠는 공부 비용을, 나는 공부를 맡아서 경기를 시작했다. 합격이라는 도착지를 향해 수영하는 엄마에서 자전거 탄 아빠로 잘 넘어왔다. 이제 내가 달려서 도착만 하면 되는데 그러지를 못했다. 모든 걸 다 엉망으로 만든 기분이었다.
또한, 내 인생이 1년 늦춰졌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게 힘들었다. 그동안 초등 6년, 중등 3년, 고등 3년. 시간이 균등하게 흘러갔는데, 처음으로 비틀어짐을 경험했다. 친구들은 벌써 경력 1년을 쌓고, 이직과 결혼을 고민하는데 나는 여전히 제자리걸음이었다. 처음 겪는 시간의 격차가 낯설었다. 1년이 늦춰졌다는 것은 평생 남들보다 한 템포 늦게 가는 것처럼 받아들여졌다. 남들보다 뒤처졌다는 불안감은 쉽게 해결되지 않았고, 해결되지 않은 감정은 더욱더 불안하게 만들었다.
일단, 지금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것부터 하기로 했다. 병원을 가서 검사를 받고, 수술 날짜를 잡았다. ‘하.. 이 수술을 다시 하게 되는구나. 그럼 난 또 6개월은 꼼짝을 못 할 텐데 어떡하지? 그 답답함에서 또 어떻게 살아가야 하지?’ 수술이고 뭐고 다 집어치우고, 남들과 뒤처진 시간을 메꾸기 위해 취업을 할까도 생각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오래 걷거나, 앉아 있으면 통증이 올라왔다. 그 통증의 주기는 시간이 갈수록 짧아졌다. 이 몸으로 취업한다 해도, 오래 버티지 못할게 분명했다. 회피하고 미뤄뒀던 일들이 다가오고 있었다. 피할 수 없다고 즐길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내 현실을 마주해야 했다.
수술을 받기로 결정하자, 내 눈에 놓인 남은 한 개의 과제. 불합격에 시선이 갔다.
수술하면 또 6개월은 움직이지를 못할 텐데, 그 시간을 그냥 재활만 하면서 보내고 싶지 않았다. 이미 남들보다 늦춰진 1년을 채우기 위해서는 효율적으로 보내야 했다.
“좋아. 공부 한 번 더 하자.”
몸을 움직이는 것이 불편해도 뇌는 살아있었고, 손은 움직일 수 있었다. 오히려 돌아다니지 못할 테니 더욱 공부에만 매진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합격해서 교사가 되면, 공무원이 되는 것이니, 지금 취업한 친구들보다 더 좋은 대우를 받을 수 있다. 그러면 지금 벌어진 시간의 격차를 한방에 메꿀 수 있다. 그렇게 2번째 시험을 보기로 결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