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냐면 신은 실수하지 않거든

by 김소원

2019년도에는 이례적으로 유아 임용고시가 1년에 두 번 시행되었다. 사립유치원의 부정부패가 지속해서 밝혀지고 있었고, 이에 대응하여 정부에서는 공립유치원증설을 계획하였기 때문이다. 6월과 11월, 두 차례의 시험이 예정되어 있었다. 1월에 나는, 지속되는 불합격에 아팠고, 5개월 뒤에 있는 시험이 당황스러웠고, 한 달 뒤에는 다리 속에 박혀있는 철심을 빼러 수술해야 했다. 내 인생이 도통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 것일까, 답을 찾기 위해 난생처음 철학관을 갔다. 사주에서 조상이 돕고 있다고 했다. 그간 기도가 부족해 잘 안된 것이라고, 그래서 조상님께 자주 인사드리고, 기도하면 올해 합격할 수 있다고 했다. 그 말을 맹신하여 다음 날부터 매일매일 조상님께 기도했다. 난 매일 빌었다. 뭘 그렇게 잘못했는지, 현재의 나를 부디 용서해 달라고, 그리고 더 나은 나를 달라고 애원했다. 나의 모든 말들을 조상님이 듣고 있는 것만 같았다. 꼭 나를 합격시켜 주실 것만 같았다. 친구 S도 임용시험을 준비한 지 2년 차가 되어가고 있었다. S가 가진 여유로움은 여전히 빛나고 예뻤다. 같은 공부를 하고, 일주일에 한 번, 스터디를 함께 하고, 비슷하게 시간을 쓰고 있으니 나도 그 녀석처럼 빛나는 것만 같았다. 그때 우리는 시기별로 스터디를 다르게 하였다. 우리의 계획은 꽤 전략적이고, 철저했다.


1-2월: 신문요약스터디

각 주마다 나오는 교육 관련 뉴스를 읽고, 요약한 다음 서로의 생각을 공유하는 것이다.


3~7월: 문제 내기 스터디

교육과정 강의를 듣고, 그 주에 해당하는 교육과정에 관한 문제를 각자 내고, 바꿔서 풀어보는 것이다.


8~10월: 모의고사 풀기

매주 카페에 같이 앉아 실제 시험시간에 맞게 문제를 풀고, 틀린 것을 공유하고, 왜 틀렸는지, 왜 이것이 정답이 될 수밖에 없는지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3~10월: 논술 스터디

매주 같은 주제의 논술을 쓰고 바꿔서 피드백하는 것이다.


S와 함께 이야기하고 있으면 허기가 채워졌다. 수험생활 3년 차, 사람은 사람을 만나고 살아야 한다는 것을 깨닫고 있는 시점이었다. 사람에게는 힘이 있다. 서로가 싸우고, 상처 주는 이유는 사람에게 온기가 있기 때문이다. 그 온기에 취해 화상을 입을지라도, 사람이 주는 따스함은 어떤 난로도 이길 수 없다. 같이 공부하면 할수록 S는 단번에 합격할 것이라는 느낌이 있었다. 공부를 먼저 시작한 나에게 S가 주로 물어봤는데, 질문의 수준이 날마다 올라갔고, 대답을 해주면 금방 이해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내가 아는 것보다 S가 아는 것들이 더 늘어갔다. 그것이 불안했다. 자존심 때문에 내가 모르는 것들 점차 숨기기도 하고, 모르는 것을 아는 척하기도 했다. 그래서 늘 기도를 했다. 하늘에 계신 누군가가 들어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나의 불안감을 감추기 위해, 합격한 나를 갖기 위해 기도했다. 불안감이 더욱 깊어지던 어느 날, P 선배와 만났다. P 선배는 작년에 임용고시에 합격해서 근무 중이었다.


- 선배, 합격하니까 좋죠?

- 좋은 것도 한 달이면 끝이더라 야.

- 진짜요?

- 어휴, 힘들어 죽겠어. 소원아, 나는 차라리 공부할 때가 더 행복했던 것 같아.


P 선배는 만학도로 유아교육과에 들어왔고, 두 명의 아들을 키우고 계셨다. 육아하면서도 학교에서는 늘 1등을 놓치지 않으셨다. 나는 그런 P 선배를 존경했다. 선배는 교사 생활을 힘들어하셨다. 최근에는 응급실에도 다녀오셨다고 했다. 아무리 그래도 수험생한테 공부할 때가 행복한 거라니, 그럼 나랑 바꾸자고 말하고 싶었다.


P 선배를 만나니 문득, 선배가 우리가 살고 있는 A 지역이 아닌 다른 지역에서 시험을 보셨다는 사실이 생각났다.


- 선배! B 지역에서 근무하시죠? 왜 B 지역으로 응시하셨어요?

- 나도 초수 때는 A 지역에 응시했어. 다른 지역은 생각도 안 했지. 근데 수험생활이 2년 차가 되니까 더는 못 하겠더라고. 빨리 공부를 끝내고 싶었어. 그때 당시 모집인원을 보니 A 지역보다 B 지역이 더 많이 뽑았고, B 지역 정도면 차로 출퇴근하기에도 나쁘지 않겠더라고.

- 그래도 차로 1시간 거리면 아침 일찍 나가셔야 하는데 안 힘드세요?

- 힘들어. 그래서 지역 이동하려고. 교사끼리 지역 이동할 수 있는 시스템도 있거든. 쉽지는 않지만 계속 서류 내보게. 그럼, 언젠가는 되겠지 뭐.

- 우와. 그래도 어쨌든 시험을 잘 보셨으니까 합격하신 거죠?

- 근데 나 아마 작년에도 A 지역 썼으면 떨어졌을 거야. 커트라인이 B 지역이 더 낮았거든. 운이 좋았지. 뭐. 작년에 A 지역이 전국에서 커트라인 제일 높지 않았었나?

- 맞아요.

- 그러니까, 작년에 너도 A 지역이 아니라 B 지역으로 응시했으면 합격했을 텐데....


이거였다. 작년에 내가 불합격한 이유, 선배처럼 지역이나 경쟁률 등에도 신경을 써야 했는데 난 그저 내가 사는 지역만 생각하고 있었다. 공부 전략뿐만 아니라 원서 전략도 짜야했다. P선배를 만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가슴이 뛰었다. 상반기 내내 집중하지 못한 것이 내내 마음에 걸렸다. 올해 또, 불합격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그런데 한줄기 빛이 보였다. 합격할 방법을 찾았다. 선배는 자신이 운이 좋아서 합격한 거라고 했다. 올해는 너에게 운이 갈 것이라고 격려도 해주었다.


‘그래, 올해는 내 차례지. 전국에서 나처럼 수술을 받고, 휠체어 탄 상태로 공부한 수험생은 나밖에 없을 거야. 신이 있다면 나를 지켜보고 불쌍해서라도 운을 줄 거야.’


1차 시험까지 4개월 남았다. 이 기간에 최선을 다하고 지역을 잘 선택하면 합격할 수 있다. p선배의 말에 따라 지역을 바꾸기로 했다. 바꾼 지역은 우리 집에서 2시간 정도의 거리에 있다. 시험날 늦지 않고, 뇌를 최대한 깨워서 가기 위해서는 새벽 5시 기상이 최적이었다. 이제부터 빡세게 공부해야 한다는 조급함에 남은 기간동안 4시간을 자며 생활했다. 수술후유증으로 다리가 지끈거릴 때면 스탠딩책상에서 공부하고, 그래도 통증이 가라앉지 않으면 누워서 책을 보기도 했다. 가끔 서럽기는 했어도 누구보다 열심히 산다는 자부심이 있었기에 괜찮았다.



새벽 5시. 시험 날이다. 아직 해가 뜨지 않아 어둡고 차가운 공기가 휘감는 도로를 달리고 있다. 운전자는 아빠. 뒷좌석에 탄 엄마가 시험장 안에서 먹을 나의 간식들을 한번 더 확인하고 계신다. 창문을 보며 머릿속으로 그간 공부한 내용들을 정리하고 있다. 강사가 올해 시험에 꼭 나올 것이라고 한 부분을 더 뚜렷이 상기시킨다.


톨게이트를 통과하고 낯선 지역을 들어선다. 작년과 다른 시험장에 도착하였다. 교문에서 엄마, 아빠와 인사하고 고사실을 찾아 들어간다. 내 자리는 맨 끝자리. 벌써 와 공부하고 있는 몇몇의 경쟁자들. 화장실을 다녀온 후, 책을 들여다본다. 조용한 분위기 속 종이 울린다. 어느덧 교실은 더 많은 경쟁자들로 가득 찼고, 감독관이 들어와 시험지를 나눠준다. 이제 1분 후, 시작이다. 이 시험만 끝나면 꼬깃해진 내 인생이 펴질 수 있다.

젠장, 합격하기는 개뿔. 1점 차이로 떨어졌다. ‘기도를 조금만 더 했다면 합격할 수 있었을까?’ 발표 후 한동안 부족한 기도를 한 나를 원망했다. 2019년 6월에 있는 시험에 친구 S가 합격했다. 금방 합격할 것 같았던 나의 예감이 맞았다. 당연하다면 당연하고, 의리 없다면 의리 없게 나는 친구의 합격을 진심으로 축하해주지 못했다.


더 이상 힘이 없었다. 쉬고 싶었다. 2017년부터 지금까지 제대로 쉬어본 기억이 없다.

한 달이 지났다. 망할, 세상. 숨만 쉬겠다는데도 돈이 필요했다.

어린이집 보조교사로 취직했다. 그렇게 7개월이 흘렀고, 어린이집 재계약을 하지 않았다. 귀소본능이 있는 동물처럼 자연스럽게 다음 해에 있는 시험을 준비했다.

이전 05화깊은 수렁 속에서 깨달은 사실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