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어떻게 죽을 수 있을까 생각했어요. 집에서 죽자니 우리 가족이 살 곳은 남겨둬야 했고, 투신하자니 마땅한 건물이 없었고, 물에서 죽자니 내 시체도 못 찾는 건 싫더라고요. 그래서 말인데, 저 좀 죽여주세요. 명예롭게 죽게 해 주세요. 주변에서 그저 “운이 나빴네”라고 말할 수 있는 죽음이면 됩니다. 제발 좀 살지 않게 해 주세요.”
지속되는 불합격으로 매일 세상에 대한 불만을 쏟아내며 피해의식과 열등감에 찌들어 있던 시기가 있었다. 밤마다 유서를 썼고, 낮에는 자기소개서를 썼다. 유서와 자기소개서의 공통점은 지금 이곳을 떠나 더 좋은 곳으로 가고 싶다는 소망이 있다. 그래서 그 둘을 번갈아 쓰는 것이 쉬웠다. 유서와 자기소개서의 차이점은 수신인의 유무다. 유서는 보낼 수 없었지만, 자기소개서는 보낼 수 있다. 받은 곳에서 연락이 왔다. 내가 그토록 가고 싶었던 공립유치원의 파트타임 일이었다. 정확한 명칭은 “돌봄 교사” 아침 1시간, 저녁 2시간. 일찍 등원하거나, 늦게 하원하는 유아를 보육하는 일이다. 아침과 저녁 시간 사이의 간격은 8시간이어서 아침에 출근 후, 집에 갔다가 저녁 시간대에 다시 와야 하는 번거로운 일이었다. 두 번 출근이 걸리긴 했지만, 더 이상 최소 금액으로도 버틸 수 없는 통장 잔고와 포기할 수 없는 시험이 나를 그곳으로 이끌었다. 비록 작은 시간이긴 해도 내가 근무할 곳이 공립유치원이라는 것이 좋았다.
“공립유치원”이라는 곳은 나에게 환상의 나라였다. 쉽게 들어갈 수 없기에 그곳 사람들은 무언가 다를 것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비록 계약직이었지만 설레었다. 마치 첫 아르바이트를 할 때 “관계자 외 출입 금지”에 들어가면 묘한 희열감을 느끼는 기분과 동일했다.
몇 년째 운동복만 입다가 옷다운 옷을 입기 시작했다. 출근하기 시작하며 옷을 갈아입을 때마다 나의 자존감이 점차 상승하는 기분이었다. 비싼 옷도 예쁜 옷도 아니었지만, 교복만 입다가 하루 있는 소풍날 무슨 옷을 입을지 고민하는 고등학생처럼 하루하루가 신났다. 도보로 출퇴근했는데, 그제야 사계절을 느낄 수 있었다. 수험생이 된 이후로 나의 계절은 겨울밖에 없었다. 매일매일 내리는 눈을 쓸기 바빴다. 다 쓸었나 싶으면 또 눈이 내렸다. 나의 생은 늘 추웠는데 하천을 걸어 다니며 봄의 따스함, 여름의 무더움, 가을의 쌀쌀함을 느낄 수 있었다.
“선생님 이름이 뭐예요?”
유치원에 가면 아이들이 가장 많이 묻는 말 중 하나이다. 아이들은 들리는 대로 글을 적기 때문에 처음에는 “소어”라고 적어주었다. 그러다 점차 글자를 정확히 알기 시작하면서 나의 이름도 다르게 적기 시작하는데 “소워”에서 끝내 “소원”로 적을 수 있게 된다. 아이들이 점차 나의 이름을 향해 가주었다. 나를 “소원 선생님”이라고 불러주며 나의 이름에 숨결을 불어넣어 주고, 내 행동에 생명력이 생기게 해 주었다.
아이들과 함께 이야기하며 “유치원 교사”가 하고 싶었던 이유가 명확해졌다. 어린이는 미완의 상태이다. 성인의 반의반만 한 몸짓들 주제에 자신들을 지킬 줄 안다. 쓰레기는 쓰레기통에 버릴 수 있고, 자신의 물건을 친구에게 양보할 수 있고, 친구들에게 “사랑해”라고 할 수 있다. 세상을 바르고 굳건하게 살아갈 수 있는 존재들이다. 그런 대상들을 가르치며 함께 놀이할 수 있는 것이 멋있었다. 이 멋있는 일을 너무 하고 싶었다. 정말 미치도록 하고 싶었다.
‘진정 유치원 교사가 하고 싶으면 사립유치원도 있잖아.’
마음의 소리가 계속 들려오곤 했다. 특히나 사립유치원에서 자리를 잡고 독립까지 한 친구들을 보면 부러움과 함께 그 마음의 소리는 더 커졌다. 다만, “평생 잘리지 않을 직장”이라는 것이 꽤 끈질기게 나를 붙잡고 있었다. 아직 가지지 않았기에 잃을 것도 없었는데, 이미 나는 몇 년 전부터 “공무원인 나”를 머릿속에 그려 넣었던 터라 시험을 포기하면 모든 것을 잃게 되는 것만 같았다.
2년 동안 돌봄 교사를 하며 선생님들과도 많이 친해졌다. 선생님들은 나를 동등한 교사로 대해주셨다. 아이들의 특성을 다 공유해 주시며 교육 방향을 어떻게 잡아야 하는지 알려주셨다. 사적으로도 만나는 일이 많아졌고, 만나면 늘 유치원의 일상을 공유하였다. 사실 진짜 유치원의 하루는 내가 없는 시간대에 다 이루어진다.
나는 고작 3시간 있고, 그것도 하루 일과가 시작되기 전에 잠깐, 다 끝난 저녁에 잠깐이기에 늘 유치원의 예고편과 에필로그만 보는 기분이었다. 그래서 선생님들의 대화 속 유치원 이야기는 드라마의 본편처럼 흥미진진하고 재미있었다. 그럼에도 나는 관객이고 선생님들은 주연이었기에 묘하게 그들과는 선이 있었다. 나에 대한 차별적인 말과 부당한 대우를 전혀 하지 않으셨어도 파트타임의 한계는 존재했다. 이 유치원에 속한 듯 속하지 않은 이방인인 셈이었다. 아이들과의 만남이, 동료 선생님들과의 대화가 즐거웠기에 이 시간을 늘리고 싶었다. 이방인이 아니라 내국인이 되어 소속감을 느끼고 싶었다. 그 결심이 기간제교사를 하게 만들었다.
담임교사를 뽑는 공고마다 족족 원서를 다 내었다. 한 번에 될 거로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이렇게까지 안 될 줄은 몰랐다. 수험 생활을 이력서에 한 줄이라도 쓰지 못하는 것은 그래도 괜찮았다. 다만 정규 교사가 아니었다는 이유로 지난 2년의 돌봄 교사 경력을 아무도 인정해 주지 않는 것은 많이 서러웠다. 처음 돌봄 교사를 시작할 때와 1년 더 연장할 때는 “두 번 출근이 쉽지 않은 자리라 해줄 사람이 없다.” “선생님만 한 사람 찾기 힘드니 부탁한다”며 원성이더니 막상 이력서에 경력으로 넣자, 아무도 인정해 주지 않는 게 서운하고 괘씸하기까지 했다. 지난 7년의 치열했던 수험생활도, 정직하게 일했던 돌봄 교사도.. 나의 시간은 어느 곳에도 기록되지 않았다.
나는 늘 성실했고, 꾀부리지 않고, 열심이었다. 그런데 고작 내 노력의 결과가 이거라고? 남들은 네가 열심히 하지 않았기에 이런 결과가 나온 거 아니겠냐고 했다. 그랬다. 내가 나의 결과물을 보더라도, 전혀 노력하지 않은 사람의 것이었다. 그래서 더 억울했다. 나의 시간을 보여줄 수 없어서, 그 시간을 나만 알고 있다는 게 사무쳤다.
또 누군가는 그랬다. 나 자신만 알면 되는 거라고. 그거면 충분하다고. 아니. 나는 성공하고 싶어. 나의 시간을, 노력을 보여주고 싶어. 솔직히 다들 그것 때문에 열심히 사는 거 아니야? 정말 다들 타인의 시선은 신경 안 쓴다고? 그래서 다들 그런 말에 흔들리는 사람은 자존감이 낮은 사람이니, 뭐니, 훈수 두는 거라고? 다들 그렇게 자신에게만 집중할 수 있다고?
서류 내고 불합격, 서류 합격하고 면접까지 봤지만 불합격. 또 다른 곳에 서류 내고 불합격. “다 경력자 원하면 나 같은 신입은 어디서 경력을 쌓나!”라는 유병재의 콩트를 매일 보며 견디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