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개월 기간제교사에 합격했다.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면접을 보았던 작은 시골에 있는 학교였다. 정식 출근 전부터 실무 책을 사서 공부하고, 맡게 된 업무에 대해 친한 교사에게 물어보며 준비했다. 초임이라서, 기간제라서 뒤처지고, 일에 배제되고 싶지 않았다. 특히 면접을 볼 때마다 “나이스 업무* 해본 적 한 번도 없잖아요.”라는 질문을 수백 번 들은 것에 넌더리가 나 있는 상태였다. 얼마나 어려운지 보자, 그리고 내가 잘하는 사람인 거 보여줄게라는 독기가 활활 했다.
* 나이스: 공립 교사들의 업무시스템을 일컫는 말.
내가 맡게 된 반은 유치원에서 가장 큰 연령인 7세 반이었다. 14명 아이의 담임이 될 것이라고 하였다. 매우 설레고 기대되었다. 드디어, 나도, 내 새끼들이 생긴다. 다른 교사에게 물어보고, 눈치 보며 교육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만으로 매우 기뻤다.
그러나, “기쁨이 가는 곳에는 슬픔도 가야지”라는 영화 <인사이드 아웃>의 대사처럼 담임인 것이 매우 기쁘고 행복했지만, 불안도 같이 왔다. “내가 잘 해낼 수 있을까?” 특히나 뉴스에서는 교사들의 힘듦이 하루가 멀다고 계속 나오고 있었고, 돌봄 교사를 하며 간접적으로 경험했던 학부모의 민원은 도를 넘었었기에, 나에게도 그런 상황이 온다면 어떻게 대처해야 하지?, 내가 이겨낼 수 있을까?라는 생각들이 떠나지 않았다.
입학식 날, “00반 교사 김소원 선생님입니다.”라는 말에 ‘저 사람이 내 새끼의 담임이구나.’라는 수십 명의 눈동자를 받았다. 아니나 다를까, 입학식이 끝나고 한 보호자가 교감 선생님* 께 “김소원 선생님 초임이에요?”라고 물어보았다. 움찔했지만 괜찮았다. 내가 예상했던 민원사례 100중 하나에 불과했으니까. 부모로서는 자기 자식의 담임이 능숙하길 바라는 건 당연하니까. 앞으로 내가 잘하면 그 걱정은 사라질 거라고 믿었다.
*병설유치원이라 교감선생님이 유치원 원감의 업무를 대행함.
시간이 흘러 아이들과 친해질수록 아이들은 너무 사랑스럽고 예뻤다. 그래서 잔소리도 늘어갔다. 어떨 때는 잔소리만 하다가 하루가 다 가는 날도 있었다. 내일은 잔소리를 줄이고, 더 많이 놀아주고 예쁜 말을 해줘야지 다짐해도 쉽지 않았다. 너무 예쁜 내 새끼들이 내년 학교에 가서도 잘해야 할 텐데 미움받으면 안 될 텐데라는 마음에 하게 되는 말들이 많았다. 가끔 내가 싫어했던 내 부모의 모습이 나올 때 놀랬지만, 조금씩 그들의 행동이 이해되는 계기이기도 했다. 아이들과 함께할수록 나의 마음이 반짝였다. 내가 무언가를 가르쳐주면 아이들은 놀이에 적용하고, 나는 함께 놀이하며 새로운 교구들을 제공하고, 그러다 또 다른 것들을 가르쳐주는 이 과정을 더 잘하고 싶었다. 좋은 선생님이 되고 싶었다.
초반에 버벅대긴 했지만, 나이스 업무도 금방 익숙해졌다. “선생님이 일을 어려워하지를 않는구나.”라는 선배 교사의 칭찬에 지난 면접에서 받은 서러움이 씻겼다. 아이들과도 라포가 형성되고, 업무도 능숙해지고, 모든 것에 적응이 될 때쯤, 문자 한 통을 받았다.
“선생님 혹시 6개월 연장해서 1년을 일 해줄 수 있어요?”
휴직한 선생님이 보내신 문자였다.
(*기간제교사는 정교사가 휴직하게 되면 그 자리를 대신해서 들어가는 것이다.)
물론이었다. 아이들과 더 긴 시간 놀이할 수 있는 것인데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네! 해줄 수 있어요.” 대답했다.
모든 것이 완벽하게 흘러갔다. 같이 일하게 된 선생님들도 인품이 좋으셨다. 기간제교사의 차별 등 내심 걱정했던 일들은 일어나지 않았다.
한 가지, 특이점은 임용 합격 후, 교사 생활이 10년이 되어 가는 사람들도 여전히 진로 고민을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과거 회사로부터 스카우트 제의가 들어왔지만, 거절한 것이 여전히 후회되는 선생님,
예술대학을 가고 싶으셨지만 집안 사정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교대를 오신 선생님,
이제라도 다른 길로 가고 싶지만, 자식들 생각에 쉽게 포기할 수 없는 선생님,
아픈 자식을 돌보기 위해 의원면직 한 선생님.. 등등
다양한 선생님들과 서로의 인생을 이야기하며 진로 고민은 죽을 때까지 계속되는 거구나 생각했다. 나에게 임용은, 내 인생을 구원해 줄 키였다.
임용만 합격한다면 내 인생은 모든 해결돼.
생각하며 지난 시간을 버텼다. 그래서 임용에 합격한 교사 모두가 나에게는 동경의 대상이었다. 그런데 각자의 삶 속에서 각자의 이유로 힘들었다.
의원면직할 때 많은 고민과 주변의 말들에 흔들렸지만 “나”를 중심에 두니 미련 없이 떠날 수 있다고 했던 K의 말이 떠올랐다. 나는 어떤 가치를 추구하며 살았던 걸까? 과연 나는 교사가 하고 싶은 걸까? 공무원이 하고 싶은 걸까? 진정한 교사의 마음을 갖추면 합격은 따라오는 거라는데, 정말 다들 그런 걸까? 안정성을 좇는 나의 마음이 잘못된 걸까? 진심이 아닌 마음 때문에 계속 불합격한 것은 아닐까? 공무원은 안정적이지만 안전하지는 않은 직업이었다. 환경이 아닌, 나의 안전이 우선되어야 한다. 나는 그동안 나를 안전하게 보호하며 살지 않았기에, 안정적인 직업으로나마 채우고 싶었다.
“선생님, 번복해서 죄송해요. 저 2학기 때 복귀해야 할 것 같아요.”
여름방학 휴가 계획을 짜고 있을 때 온 문자였다.
“아.. 그렇구나.. 그렇지, 복귀하셔야지. 원래 내 자리가 아니었잖아.”
휴직을 연장하시겠다던 선생님이 철회하셨다. 원래대로 1학기 후에 복귀하신다고 하신다.
“기대했는데 속상해서 어떡하냐.”
“괜찮아요. 임용 준비해야죠.”
선생님들의 걱정에 씩씩하게 대답했다. 근데 자취방에 돌아와 문을 닫자마자 눈물이 나왔다. 다행히 이 집에는 나밖에 없다. 예전처럼 이불 속에 들어가 숨죽여 울거나, 화장실에서 수도꼭지를 틀어놓고 울지 않아도 된다. 나밖에 없는 고요한 그 집에서 소리 내어 울었다.
다행히 아무도 모른다. 부풀었다가 바람 빠진 이 마음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나 혼자만 창피하고 아파해서 다행이다. “방학 중에 또 상황이 달라져서 휴직 연장한다고 할 수 있어. 기다려봐”라는 교감 선생님의 말씀에 또 한 번 기대하게 되는 내가 밉다. 얼마큼 데어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