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 그 시간이 가진 의미

by 김소원

화목한 가정이었다. 비록 돈은 좀 없었어도 술, 담배 안 하는 아버지와 가정에 충실한 어머니와 공부 잘하는 오빠가 나에게 있었다. 가끔 치솟는 우울들이 있었지만, 다들 그렇게 사는 거라고 생각했다.


‘이 세상에 우울함을 안 느끼는 사람이 어디겠어.’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스무 살이 되었고, ‘유아교육과’에 진학했다. 진학하는 과정이 쉽지는 않았다. 성적이 좋지 않아서 3년제 대학교를 가게 되었다. 그래도 내가 원했던 학과였으니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대학교에 가 처음 들었던 수업은 교육학개론이었다. 그때 강의실의 배경, 교수님의 설명, 앉아서 듣던 내 모습이 생생하다. 누군가를 가르치고 체계적 지식을 전달하는 교육학의 세계에 매료되었다. 특히나 그 대상이 어리면 어릴수록 더 많은 정보와 감정을 습득할 수 있다니, 어린 시절의 경험이 평생을 좌우한다는, 그 대상을 가르치는 유아교육에 흠뻑 빠졌다.


“소원이가 이번 과제를 참 잘했어요. 다음 과제 때는 모두 이 리포트를 참고하도록 하세요.”


교수님이 전체 학생들에게 나의 과제를 모범 답안이라며 돌릴 때는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내 내면에 있는 온갖 세포들은 춤을 추고 있었다. 대학 다니는 3년 내내 즐거웠다. 매 수업 최선을 다해 집중하여 들었고, 매 과제를 성실히 수행했다. 그럴 때마다 결과는 좋았고, 동기들의 시선도 달라졌다. 처음으로 받는 인정과 칭찬들에 자존감이 높아져 갔고, 어쩌면 나는 유아교육의 천재일지 모른다는 생각까지 했다.

그렇게 유아교육을 배우면 배울수록 머릿속에는 물음표가 떴다.


“내가 안정형 애착이 아니었네?”

“우리 부모님의 훈육이 잘못된 방법이었네?”

“우리 집 화목한 가정이 아니었네?”


20년 인생에 처음 뜨는 물음표들이라 당황하긴 했지만, 과제와 수업들이 쏟아졌기에 물음표들에 답할 시간이 없었다. 졸업 시즌이 되었고, 다른 동기들과 마찬가지로 취업을 준비하던 중에 어머니가 말하였다.


“소원아, 임용고시 준비해 봐, 그거 되면 좋아. 너 대학교 때 학점도 좋았잖니.”


그 말 한마디에 나의 대여정이 시작되었다. 그때는 몰랐다. 어머니가 나에게 무언가를 권유한 것이, 나를 믿고 지지해 준 것이 처음이었다는 것을. 부모님이 오빠가 아니라 나를 믿어주었다. 나에게도 지원을 해준다고 하신다. 그 사실이 벅차서 시작되었다. 무조건 합격해서 인정받고 싶었다.


시험을 준비하는데 생각보다 많은 돈이 필요했다. 강의료, 도서비, 독서실비, 각종 문구류 등. 거의 등록금과 비슷했다. 그나마 장학금 받으며 학교에 다녔기에 1년 정도는 임용고시에 투자해 볼만했다. 무조건 1년 안에 합격한다. 만약 떨어진다면 곧바로 취업하리라, 돈벌이 안 되는 수험 생활을 오래 할 생각은 없었다. 정말 없었다.


매일 9시. 독서실 문 여는 시간에 맞춰 항상 첫 번째로 출근했다. 환기하느라 모든 방과 창은 열려 있어 상쾌하고, 입, 퇴실 시스템이 아직 로딩이 안 되어 실장님이 “내가 입실 눌러줄게. 가서 공부하고 있어.”라는 말을 들으면 기분이 좋았다. 내가 제일 빨리 움직이는 기분이었다. 임용고시는 대학 때 배운 유아교육과는 깊이가 달랐다. 더 전문적이었고, 유치원 교사의 책임과 권리, 윤리를 인식시켜 주었다. 그럴수록 대학생 때부터 내 머릿속에 떴던 물음표가 더욱 짙어졌다.


“나는 안정되어 있는 상태일까?”

“제대로 된 방법으로 아이들을 사랑할 수 있을까?”

“내가 교사 자격이 있을까?”

....



“없을 것 같다.”


부모님이 주신 사랑이 잘못된 사랑인 걸 알았을 때의 충격이란, 그 사랑으로 내가 살아왔던 날들이 사실은 꽤나 힘들었던 것이었음을, 알려주는 사람이 없어 행복한 가정이었다고 오해하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나는 바람에 문이 쾅 닫히는 소리를 싫어한다. 화장실에서 샤워할 때 밖에서 들리는 사람의 말소리를 싫어한다. 칼보다는 가위를 선호한다.


운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 23살에 삶의 이면을 알았다. 표현이 과격한 아버지와 자식에게만 의존하는 어머니와 부모님의 지원이 부담스러운 오빠가 나에게 있었다. 그 사이에서 눈치 보며 울고 있는 어린 내가 있었다. 어린 나를 바라보고 난 뒤, 공부보다는 나의 감정에 집중하기 시작하였다. 여태껏 한 번도 나를 돌봐준 적이 없었다는 것을, 아니, 돌보고 싶었지만 어떻게 돌봐야 할지 몰라 방치시켰던 나 자신. 너무 어릴 때부터 겪어온 일들이라 내가 당연하다고 느꼈던 것들이 당연한 게 아니었다. 힘이 없던 어린아이에게 유아교육이라는 무기가 생겼다. 시험문제를 맞히기 위해 읽었던 글자들이 살아 움직이기 시작했다.


전문가에게 상담을 받고, 유아교육을 공부하며 나를 치유했다. 매 장면 속 울고 있는 나를 안아주자, 다른 한편에서 울고 있는 오빠와도 만났다. 김가네의 흥망성쇠를 책임지고 있는 그 아이도 안아주었다. 다만, 부모님에 대한 감정은 쉽게 정리되지 않았다. 이미 힘이 없고 늙은 그들이었지만, 나도 힘없을 때 당했으니, 당신들도 당해보라며 더 세고 센 망치를 힘차게 두들겼다. 그러면 그 망치의 진동이 고스란히 나에게도 전해졌지만, 망치질을 멈추기가 어려웠다.


시도 때도 없이 치는 망치질에 한풀 꺾인 한 여자, 한 남자가 보였다. 그들의 일생을 돌아보자, 상처받은 사람들이 서 있었다. 그 상처를 치유하지 못해 덧나고, 본인들도 모르는 사이, 자식에게까지 상처를 대물림시켰음을, 먹고사는 게 바빠 돌아볼 여력이 없었음을, 30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그들 역시 후회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이 모든 과정을 깨닫기까지 8년이 걸렸던 것이다. 단순히 시험에 합격하고, 공무원이 되고 싶었던 마음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지금 나를 살리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깊은 위기감을 느꼈다. 여전히 용서할 수 없는 장면들이 있고, 정교사가 아닌 내가 아쉽기도 하지만, 징그럽게 성실한 시간 앞에서 나 또한 성실하게 대응했다. 맛있는 것을 챙겨 먹고, 커피를 마시고, 책을 읽고, 사람들과 대화하며, 울고, 분노하고, 아파하며 긴 긴 터널을 지나왔다. 여전히 어린 시절의 상처는 그림자가 되어 시도 때도 없이 찾아와 나를 괴롭히기도 하지만, 그 아이에게 지지 않을 정도로 강해졌다. 나를 사랑하게 되었다.

8년의 세월이 지났고, 어느덧 나는 서른이 되었다. 나의 20대가 전쟁을 치르고 승리한 덕에, 편안한 30대를 맞이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앞으로 맞이할 40대, 50대도 나의 20대에게 감사할 것을 믿어 의심치 않기에 나의 20대에 대한 노고를 기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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