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net, 위키드 창작동요 “내가 바라는 세상” 가사 중 일부
수술 후, 휠체어 생활을 할 때의 첫 외출을 기억한다. 오랜만에 외출에 신이 난 것도 잠시, 세상에는 걸어야지만 갈 수 있는 곳이 많았다. 자주 가던 식당 입구에 계단이 있다는 것을 그제야 알았다. 한 칸뿐이었지만 휠체어는 들어갈 수 없었다. 그나마 백화점은 다니기 편했지만, 피팅룸이 협소해서 마음에 드는 옷을 입어보지 못했다. 화장실 또한 휠체어가 들어가기 좁은 공간이 많았다. 그나마 휴게소에 있는 가족 화장실은 이용하기 편리했지만 아무도 가지 않는 그곳을 홀로 들어가는 기분이 유쾌하지 않았다. 세상으로부터 비주류가 된 기분으로 아파트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차에서 휠체어로 옮겨타기 위해서는 주차장 두 칸의 공간이 필요하여 아빠가 겨우 찾아내어 내리려고 하는데 옆 칸에 다른 차가 들어와, 성급히 엄마가 내려 우리 딸이 휠체어를 타고 있으니, 잠깐만 양보해 주시면 안 되겠냐고 부탁했다. 그러나 그 차에도 산후조리원에서 퇴원한 여자와 갓난아이가 있었고, 그 차 또한 돌고 돌아 최대한 엄마와 아이의 동선이 적은 곳에 주차하신 거였다. 감사히 우리의 상황을 듣고 차를 앞으로 잠깐 빼려고 하셨지만, 차가 계속 들어오고 있어 쉽지 않았다. 다행히 반대쪽에 있던 차가 나갔고, 우리는 그곳을 이용하여 휠체어를 타고 집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휠체어를 타기 전까지는 경험해 보지 못했던 하루였다. 그때야 그동안의 난 주류 속에 포함되어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주류에서 한 발짝 벗어나서야 주류들이 굉장한 권력을 가지고 있었음을, 나 또한 그 권력을 가지고 있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두 발로 걸어 다닐 수 있는 지금, 길거리에서 휠체어를 탄 사람을 마주하면 문을 열어주거나, 물건을 대신 줍거나 등의 행동을 하며 나는 좋은 사람이라는 뿌듯함을 느끼고는 한다. 그 마음이 어쩌면 내가 그들보다 우위에 있다는 마음에서 나온 것은 아닐지 생각한다. 뒤따라오는 비장애인을 위해 문을 잡아주고, 내 앞에 떨어진 물건을 주워주는 일은 하루에도 여러 번 하는 행동이니까. 그때마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이지,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으니까. 휠체어를 탄 사람들을 보며 나는 한때 저기에 속했지만, 지금은, 그리고 원래는 다른 범주의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묘한 희열감과 우월감을 느끼고는 했다. 이러한 감정은 교사를 하면서도 이어졌다.
돌봄 교사를 할 때 일이다. 돌봄교실은 맞벌이 자녀를 위해 운영하는 제도이다. 그러므로 돌봄교실을 신청하기 위해서는 보호자의 재직증명서와 사업자등록증이 필요하다. 5명의 특수 유아가 돌봄교실을 신청하였고, 교사인 나 혼자서 봐야 하는 상황이었다. 특수 유아들과 함께하는 시간은 1시간 남짓이었지만, 의사소통이 어려운 3명의 유아와 발달이 지체된 유아 2명을 혼자 보는 것은 버거웠다. 사고가 날까 무서웠다. 한 달을 하고, 도저히 못 하겠어 원감님께 그만두겠다고 말씀드리니, 다행히 다른 교사분께서 함께해주기로 하셨고, 1년 동안 나를 포함 2명의 교사와 1명의 도우미 선생님이 함께 돌봄교실을 운영하며 무사히 계약기간을 채우고 나왔다.
그때, 내가 그만두겠다고 한 것은 힘들기도 했지만 약간의 억울함도 들었기 때문이다. 특수교사도 특수 유아 4명이 정원이고, 특수 교육 지도사와 장애 유아 지도사가 함께 교육과정을 꾸려가는데, 비전공자인 나에게 아무런 인력도 없이, 특수 유아도 돌봄교실을 할 권리가 있다는 이유로 맡겨놓은 게 억울했다. 특수 유아도 돌봄교실을 이용할 권리가 있음에는 오백 번 동의한다. 단지,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비장애 유아가 받는 권리를 이용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 된다. 하지만, 환경과 여건을 고려하지 않고 무조건 권리 하나로 밀고 붙이는 것도 잘못된 일이라고 생각한다. 특수교사는 나의 힘듦과 어려움을 존중해 주셨지만, 이런 상황에 놓인 것에 대한 씁쓸함을 표현하시기도 했다. 누군가에는 당연한 것이 누군가는 싸우고, 여건이 갖춰져야만 이룰 수 있는 일은 참으로 무력하고 슬픈 건 분명하다.
고등학생 때, 장애가 있는 친구와 같은 반이 된 적이 있다. 출석부에도 그 친구의 이름이 있고, 함께 수업을 듣기도 했지만, 그 친구를 “우리 반 친구”라고 생각해 본 적은 없다. 3교시까지만 수업을 듣고, 특수반에 가곤 했다. 그것을 “통합교육”이라는 이으로 불린다는 것은 교사가 되고 나서야 알았다. 통합교육은 특수교육 대상자가 일반 학교에서 차별 받지 아니하고 또래와 함께 개개인의 교육적 요구에 적합한 교육을 받는 것을 말한다. (“장애인 등에 대한 특수교육법”) 적절한 교육을 통해 자아를 실현하고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함께 살아가며 또 자신의 권리를 당당히 누리도록 하는 것이 통합교육이 지향하는 바다.
미국의 경우 길거리에서, 마트에서, 식당에서 흔하게 휠체어를 타거나 장애가 있는 사람을 마주할 수 있다. 건물 등도 장애인을 위한 시설이 잘되어있기에 모두가 어우러져서 살 수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그렇지 않다. TV 프로그램에서도 장애가 있는 사람은 공익광고에서만 존재할 뿐, 다양한 프로그램에서 마주하기는 어렵다. EBS 『딩동댕유치원』에서는 국내 어린이 프로그램에서 처음으로 자폐 아동 ‘별이’라는 캐릭터를 만들었다. 딩동 선생님은 “별이는 우리랑 같은 점도 있지만, 별이만의 생각이 있어.”라고 소개한다. 별이가 소리에 예민한 모습, 도전 행동하는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며 별이의 머릿속을 그림으로 표현해 준다.
만약 내가 유아기부터 이 프로그램을 접하고, 길거리에서 자연스럽게 휠체어를 탄 사람을 만나고, 고등학교 때 담임선생님이 “00이는 우리와 같은 반이야. 다만 우리가 국영수를 우선시하여 배우듯 00이는 다른 것이 우선시되어야 해서 오후에는 특수반에서 배우고 오는 거란다.”라는 말을 한마디만 해주었다면, 나는 돌봄교실에 있는 특수 유아들을 보며 버겁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원감님 또한 적절한 환경과 인력을 보충해 주어 특수 유아와 함께 돌봄교실을 운영하라고 하지는 않았을까? 길거리에서 마주하는 장애인들을 보며 놀라지 않을 수 있었을까? 생각한다.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에서 다운증후군을 처음 맞이한 김우빈 배우가 연기한 정준이는 말한다.
“영희 누나 보고 놀랐어. 근데 난 그럴 수 있죠. 다운증후군을 처음 보는데 그럴 수 있죠, 놀랄 수 있죠. 그게 잘못됐다면 미안해요. 그런 장애가 있는 사람을 볼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학교, 집, 어디에서도 배운 적이 없어요. 이런 상황에서 내가 어떻게 하는 게 맞는지 몰랐다고요. 그래서 그랬어요.”
결국, 우리가 모두 배우지 못했다. 교사를 하며 특수 유아를 맞이하거나, 길거리에서 장애인을 만나면 본능적으로 무언가를, 티를 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더 경직되고는 한다. 그렇지만 그 무언가가 무엇인지는 나도 모르겠다. 분명 특수 교육학개론을 배웠는데, 통합교육의 중요성에 관한 연수를 매해 듣는데, 여전히 어렵다. 아이들에게 “보편성”이 주가 아닌 “다양성”이 당연한 세상을 물려주고 싶지만, 그 세상을 나도 본 적이 없는지라 어떤 방향성을 가지고,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 막막하다. 특수교사도 아니고, 휠체어와 목발을 사용하던 6개월의 시간도 힘들고 외로웠는데, 그 이상의 시간을 보내야 하는 분들의 어려움은 짐작할 수도 없는 내가 감히 이런 글을 써도 되는 것일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조심스레 내 생각을 꺼내놓는다. 앞으로 내가 교사 생활을 얼마나 할지, 만나게 될 제자들이 몇 명이나 될지 모르지만, 적어도 그중 한 명은 살면서, 혹은 평생 휠체어를 타게 될 수 있다. 그 아이가 휠체어를 탈 때에는 내가 느꼈던 불편함을 안 느꼈으면 좋겠다. 조금은 편하게 세상을 살아가길 바라는 마음에 글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