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생 때 사모했던 선생님이 있다. 갓 군대에서 제대하고, 자전거로 출퇴근 하던 선생님. 어쩌면 지금의 나보다도 어렸을 그 선생님이 좋았다. 다행히 선생님의 과목이 문학이었다. 수학이나 과학이었으면 말을 꺼내 볼 엄두도 못 냈을 텐데, 문학이라 괜히 아는 것도 한 번 더 질문하고, “선생님 이번에 새로 나온 책 재미있던데요?”라며 아는 척을 하고는 했다. 도서부였던 나이기에 도서관에서, 교실에서 선생님과 ‘책’ 이야기를 하는 것이 즐거웠다.
MBTI로 나의 성격을 설명하자면, ENFP이다. 나는 즉흥적인 만남이 제일 신나고, 밸런스 게임하며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 깊이 의미를 부여하는 그런 사람이다. 교사가 되고 나서는 이런 나의 모습을 숨겨야 한다고 생각했다. 교사라면 응당 차분하고, 헌신과 인내를 다하는 모습이어야 하지 않나, 특히 유치원 교사라면 아이들을 섬세히 관찰하고, 배려심 넘쳐야 하는데, 매일 덤벙거려 여기저기 다치고, 물건을 깜빡하고, 아재 개그가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는 나의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된다고 스스로에게 다그쳤다. 무엇보다 유아들에게 질서, 배려, 협력 같은 가치관을 몸소 보여주고, 가르쳐줘야 한다고 생각하니 책임감이 강해졌다.
“다른 선생님 마주치면 인사해야 하는 거야.”
“뛰기보다는, 걸어 다녔으면 좋겠어.”
“친구의 잘못된 행동을 보면 선생님께 이르기보다는 바른 행동을 할 때까지 기다려줬으면 좋겠어.”
매일 유아들에게 딱딱한 말들만을 했다. 유아들을 교육하기 위해서 분명히 해야 하는 말도 있지만, 어떤 날은 한 번도 제대로 놀아주지 못하고, 잔소리만 하다가 끝이 나기도 했다. 가끔 언성이 높아지는 때도 있었다. 유아들이 조금이나마 위험한 행동을 하면 왜 안 되는지 이유를 설명하기보다는 화가 났고, 때로는 아예 놀잇감을 치우기도 했다. 혹여 내가 못 본 사이,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서 유아들이 다칠까 봐 너무 무서웠다. 그런 날은 퇴근 후에도 마음이 좋지 않았다. 아이들이 그 행동이 왜 하고 싶었는지 들어줄걸, 장난감을 아예 치우기보다는 안전한 방법으로 대체할 방법은 없었는지 고민해 볼걸, 목소리를 조금만 더 작게 낼걸... 매일매일 미안함과 죄책감으로 하루하루를 보냈다.
“나 6살 때가 더 좋아. 그때가 더 재미있었던 것 같아.”
놀이 중 나온 주영이의 말에 귀가 기울여졌고, 물어보았다.
“왜 그렇게 생각했어?”
“그때 선생님은 화내지 않았아요.”
“그랬구나.. 선생님도 화내지 않고 말할 수 있도록 노력할게.”
주영에게 애써 밝게 말하기는 했지만, 마음이 좋지 않았다. 분명 유치원 교사를 애절하게도 하고 싶었는데, 재미있지 않았다. 선배 교사에게 조언을 구했다.
“아이들이 하는 말에 일일이 신경 쓰지 마. 유아들 발달상 의미도 모르고 어딘가에서 주워들은 거 따라 하는 거야, 우리 반 애들도 나한테 그랬어. (웃음) 그리고 안전 문제는 선생님이 아직 어리고 경력이 없어서 그래, 시간이 지나면 눈에 딱 보여. 이 정도 범위까지는 허용해도, 아이들이 다치지 않을 수 있겠다. 이건 위험하겠다. 이렇게 말이야.”
위로가 되지 않았다. 지금의 내가 행복하지 않고, 불안한데, 언제 올지도 모르는 그 시간을 막연히 기다리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여전히 주영이의 말도 마음속에 남아있었다. 문득 문학 선생님이 떠올랐다. ‘문학’을 진심으로 사랑하셨던 선생님, 문학 선생님과의 대화가 생각났다. 선생님과 책에 관해서 이야기할 때는, 그 순간만큼은 교사-제자 관계가 아닌 책을 사랑하는 마음을 서로 나누었다. 그때의 감정이 떠오르니, 그동안 내가 유아들을 통제하려고만 했다는 것을, 한 번도 마음을 나눈 적이 없다는 것을 느꼈다.
미국의 정신과 의사 에릭번이 개발한 ‘상호 교류 분석 이론’이라고 있다. ‘교류’를 통해 인성이 형성되며 나아가 삶의 유형이 결정됨을 강조함으로써 인간의 감정이나 행동, 인성 발달을 설명하는 기틀을 마련하였다. 에릭번은 인간은 세 가지 자아 상태로 타인과 교류한다고 보았다. 부모나 형제, 다른 권위적인 위치에 있는 사람들을 통해 배운 태도나 행동이 내면화된 부모 자아, 누구에게든지 구속받지 않고 자연스럽게 행동하며 즐거운 감정인 아동 자아, 아동 자아상태의 감정적 생활개념과 부모 자아상태의 학습된 생활 개념에서 얻은 정보를 근거로 하여 어떤 일을 혼자 해낼 수 있는 능력을 갖춤으로써 형성된 성인자아이다.
내가 문학 선생님을 좋아했던 이유는 유일하게 아동 자아로 대할 수 있는 어른이었기 때문이었다.
하루 24시간 중 유아들이 ‘아동자아’로 교류할 수 있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유치원-학원-집” 사이클 같은 일상을 보내며 수많은 어른을, 많은 선생님을 만난다. 유아들이 아동자아로 이야기할 수 있는 존재는 친구들밖에 없을 듯싶었다. 유아들이 편하게 대할 수 있는 어른이고 싶었다. 그리고 어쩌면 그것이 그렇게 어렵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유아들한테 보여준 건 꾸며진 모습이었으니까. 애써서 감추지 말고, 나의 진짜 모습을 아이들에게 보여주기로 했다.
“앗싸! 선생님 3연승!”
“아 선생님~ 한 번 더 해요.”
“이번엔 내가 선생님 이겨줄게.”
그 뒤, 나의 교실은 아니, 우리 교실은 달라졌다. 유아들이 하고 싶다고 하는 것은 거의 다 수용해 주었다. 최대한 안전한 환경을 만들 수 있도록 노력했고, 유아들에게도 혹시 놀이하다가 불편한 점이 있다면 언제든 말해달라고 했다. 유아와 같이 게임을 하면 일부러 져주기보다는 짓궂게 이기기도 하니, “선생님 이기기 게임”까지 진행되는 유아들의 모습을 보며 내가 유아들을 너무 얕봤구나! 반성했다. 유아들을 뒤에서 툭 치고 모르는 척하는 장난도 치고, 유아들이 아이돌 음악 이야기를 할 때면, “선생님도 그 노래 좋아해!”라고 말하며 노래를 부르거나 춤을 추기도 했다. 그런 선생님을 처음에는 신기하게 보더니, 시간이 지날수록 익숙해져 자신들의 놀이에만 집중하는 유아들을 보며 괜히 서운해지기도 했다. 하루하루, 소소한 재미를 보내며 시간이 흘렀다.
“선생님 그동한 제있어요. 선생님은 제이있어서 좋았어요.”
마지막 날, 주영이가 써준 편지이다. 등원 때마다 보호자가 우리 주영이가 선생님 재미있다고 매번 이야기한다고 했던 게 진짜였구나. 삐뚤빼뚤하고, 맞춤법도 맞지 않는 편지였지만, 그 어떤 편지보다 나에게 감동을 주었다.
유아들의 성격이 다 제각기 있듯, 교사들도 다양한 성향을 보인다. 차분하고, 꼼꼼한 교사가 있다면 나처럼 장난꾸러기 교사도 있는 것이다. 방학만 되면 레고 맞추기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매일 넘어져 무릎은 성할 날이 없고, 만화 캐릭터 뽑겠다고 인형 뽑기에 눈이 도는 나이지만, 이런 나라서 유아들과 즐겁게 놀이할 수 있고, 유치원 교사에 적합하다고 우겨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