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은 자녀가 없으시잖아요.”
미혼의 교사라면 보호자로부터 한 번쯤은 들어봤을 말이다. 처음, 이 말을 들었을 때는 억울함뿐이었다. 아니, 자녀가 없는 게 뭐. 나는 교사 자격증이 있는 전문가인걸, “부모가 되어야 부모 마음을 안다.”라는 말에 나는 자식은 해봤으니까, 오히려 온전히 아이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다고 반박하고는 했다.
보조교사와 돌봄 교사를 하며 보호자들과 이야기할 기회가 적게나마 생기고, 부모인 선배 교사와 이야기하며 내 생각은 조금씩 달라졌다. 선생님은 자녀가 없다는 말은 교사에 대한 적대심에 하는 말이 아닌, 내 아이를, 자녀를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언어만큼 사랑해서 나오는 표현이었다는 것을. 내가 유아교육을 공부하고, 교사로서 쌓은 경험이 가치 있고 소중하듯, 보호자가 자녀를 양육한 경험 또한 매우 귀중한 것이었다.
첫 담임교사가 되고, 보호자 상담 주간 전이 제일 긴장되었다. 아이의 연령이 어릴수록, 첫 아이일수록, 유치원에서의 모습과 생활을 궁금해하신다. 더군다나 입학식 때 선생님의 모습이 어려 보여 걱정스러운 마음을 전하시던 보호자도 있었기에 더욱 긴장되었다. 상담을 잘해서 걱정스러운 마음을 덜어내고 싶었다.
보통 보호자 상담 전에 보호자로부터 설문지를 받는다. 설문지의 내용은 건강, 가족관계, 기본 생활 습관, 유치원 후의 일과, 관심사 등 가정과 유치원에서의 일상을 공유하기 위한 내용들이 담겨있다. 유치원에서의 생활과 친구 관계, 유아의 성향은 교육하며 관찰한 것을 토대로 자세히 설명해 드릴 자신이 있었다. 다만, 나에게는 ‘자녀’가 없기에 부모가 자녀를 걱정하는 그 마음들은 짐작하기가 어려웠다. 보호자의 마음을, 부모의 마음을 이해하기 위한 질문들을 고민해 봤다. 내가 지금 전혀 느낄 수 없는 마음들은 무엇이 있을까? 6개월 동안(기간제 교사 계약기간) 가장 많이 시간을 보내고, 함께 지낼 아이들과 부모들이다. 그들과 잘 지내기 위해, 그들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알기 위해 다음과 같은 질문리스트를 만들었다.
- 우리 아이가 태어났을 때 부모인 나의 기분은 어땠나요?
- 우리 아이를 키우면서 가장 기뻤을 때는 언제인가요?
- 우리 아이를 키우면서 가장 슬펐을 때는 언제인가요?
- 보호자인 내가, 교사가 지도하면서 특별히 고려하거나, 유의해 줬으면 하는 부분이 있으면 자유롭게 적어주세요.
이 질문들은 의무가 아닌 선택사항이니 혹여나 질문들이 불편하면 작성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도 전했다. 설문지를 가정으로부터 배부하고 가장 기다렸던 일주일이다. 보호자들이 어떤 이야기들을 남겨주실지, 혹여나 모든 보호자가 작성하지 않은 채 보내주시면 어떡하지 걱정을 하며 시간이 지났다. 다행히 모든 보호자가 질문들에 성실히 답변해 주었다.
답변들에는 공통점이 있었다. 아이를 키우며 가장 슬프다고 한 것은 ‘아이가 아플 때’였다. 아픈 이유는 다양했다. 응급실에 갔을 때, 심장 수술했을 때, 자폐를 의심했을 때... 그래서 아이를 키우며 가장 기뻤을 때는 ‘아이가 다 나았을 때’였다. 심장이 아파 누워있던 아이가 뛰어다니는 모습을 볼 때, 자폐아가 아닌 정상 판정을 받았을 때 등. 텍스트 너머 부모의 감정이 조금은 느껴졌다.
의외의 답이 나왔던 질문은 아이가 태어났을 때의 기분이었다. 늦둥이로 예상치 못하게 낳아 조금은 당황스러웠던 감정과 아직 경제적으로 준비가 되지 않았는데 임신하게 되어 기쁨보다는 걱정이 앞섰던 감정, 이제 내가 엄마니까 잘해야 한다는, 좋은 어른의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부담감과 책임감을 느끼셨다는 답변 들에 조금은 놀랐다. 막연히 아이가 태어나면 ‘기쁨’의 감정만 있다고 지레짐작했기 때문이다. 물론 여러 번의 시험관 끝에 아이를 갖게 되어 온 세상을 가진 기분이었다고 답한 보호자도 계셨다.
“선생님, 사실 우리 아이가 죽을 뻔했어요.”
다른 답변에 다 성실히 해주셨는데 유일하게 슬펐을 때의 질문에만 답을 작성하지 않으신 지민이 어머니가 상담 중 울면서 말하셨다. 설문지에 가장 슬펐을 때를 쓰려고 했는데, 이때만 생각하면 눈물이 나와서 차마 작성하지조차 못했다고 한다. 모두가 마스크를 벗어던졌음에도 매일매일 마스크를 꼬박꼬박 쓰고 오던 지민이.
“덥지 않니?”라고 물어보아도 “괜찮아요.”라고 답하던 지민이의 언니는 코로나19 초창기에 죽기 직전까지 갔다고 한다. 면회가 아예 차단되어 있던 시기라 병원에만 아이를 두고 오는 것이, 혹시 그 안에서 혼자 쓸쓸하게 생을 마감하게 될까 봐. 당시 사회적 분위기로는 장례조차 치를 수 없을 것만 같아 늘 마음이 무너졌다는 어머니.
큰 아이가 완쾌하고 정말 기뻤는데, 그동안 할머니 집에서 지낸 지민이가 "엄마는 언니 엄마잖아. 할머니가 지민이 엄마이고."라는 말에 아차 싶으셔서 이제라도 지민에게 더 많은 신경을 써주고 싶다는 이야기에 나도 눈물이 났다.
유아 한 명, 한 명에게는 다 사연이 있고, 그 사연으로 가족은 붕괴될 수도, 모일 수도 있다는 것을.. 자신의 보물을 교사에게 맡기니, 그 교사 역시 보물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 있기를 부모는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그래서 선생님은 자녀가 없으시잖아요라는 말의 이면에는 보물을 가져본 사람이 보물을 더 소중히 할 수 있다는 의미가 있는 거였다는 것을 그때야 깨달았다.
(그럼에도 화법을 다르게 표현해야 한다고는 생각한다. 자녀의 유무가 교사의 전문성을 나타내지는 않으니까.)
“자녀란 무엇일까?”
“부모란 무엇일까?”
매일 부모와 자녀를 마주함에도 그 관계를, 서로의 애틋함을 설명하기가 어렵다. 갓 돌이 지난 아이를 차에 태우고 마트를 가다가 접촉 사고가 났는데, 성인인 우리는 아프다고 표현을 할 수 있는데, 이 아이는 표현을 못 하니까, 혹시 내가 아이가 아픈 걸 놓칠까 봐 걱정되어 밤새 한숨도 못 잤다는 친구의 말을 들으며 또 한 번 어떤 마음이 내게 왔다. “부모”라는 것은 내가 감히 생각조차 못 하는 무언가 찌릿한 마음이 있는 것 같다.
우리 부모님은 나를 낳으셨을 때 어떤 기분이었을까?, 수술하고, 깁스를 하고, 휠체어를 타고 다닐 때 마음은 어떠셨을까, 매번 불합격 글자를 보며 좌절했을 때는? 나는 부모가 될 수 있을까? 하나의 생명을, 삶을 끝까지 책임질 수 있을까? 나는 좋은 부모가, 좋은 교사가 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