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살 민준이의 아버지는 해외에서 일을 하고 계시고, 어머니는 베트남분이라 가정과의 소통에 어려움이 있다. 준비물을 챙겨야 하는 전날이면 민준이의 집에 전화를 한다. 베트남어로 번역해서 알림장을 남기긴 하지만, 번역에는 오류가 있기에 한번 더 전화로 알려드린다. 수영장을 가기 전날, 미리 수영복을 입혀 보내줄 것을 부탁드렸으나, 민준이는 수영복을 가방에 넣어서왔다.
“너는 왜 수영복 안 입고 왔어?”
정말 사소한 일인데, 무심코 나온 한 친구의 말 때문인지, 왠지 모르게 민준이가 주눅 들어 보였다.
“괜찮아. 갈아입으면 되지.”
교사인 내가 말했다. 교사의 말 한마디에 교실 분위기는 달라진다. 그 말에 아이들은 “아 그렇구나.”하고 넘어간다. 민준이의 표정이 밝아진 것을 보고, 괜스레 나도 기분이 좋다. 기죽은 민준이의 기분이 무엇인지 알 것 같았으니까. 다 가지고 있는 것이 나에게만 없는 그 기분이 뭔지 너무 잘 아니까. 그때의 나에게도 “괜찮아, 이렇게 하면 너도 가지게 될 수 있어.”라고 누군가 말해주었으면 좋았을 텐데. 그래서 난 오늘의 내가 말한다.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 나를 지키기 위해.
나는 어떤 교사가 되고 싶을까?
그 질문에 대답을 못하겠다. “좋은 교사”가 되고 싶다는 마음은 분명한데, 어떤 것이 좋은 교사인지 모르겠다.
아이들한테 화를 내지 않는 교사?
놀이를 통한 교육을 잘 수행해 낼 수 있는 교사?
학부모와 깊은 신뢰 관계를 형성하는 교사?
그 모든 것들을 잘 수행해 내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 마음이 무겁다. 나를 만나는 아이들에게 미안하다. 나보다 능숙하고, 좋은 교사를 만나면 더 크게 성장할 수 있었을 텐데 너무나 서투르고, 모자란 교사와 인연을 맺게 되었구나.
내가 더욱 좋은 교사가 되어야겠다고 다짐하는 이유는 과거 나의 교사들에게 받은 상처들 때문이기도 하다. 내가 살고 있는 지역은 고교평준화가 전국에서 가장 늦게 시행되었다. 이는 나는 고교비평준화일 때 학교에 다녔음을 의미한다. 고교비평준화는 고등학교 입학 시 성적순으로 학생을 선발하는 제도로 중학교 내신 성적순으로 합격 여부가 결정되었다. 이 탓인지, 강압과 억압이 심한 중학교 시절을 보냈다. 시험 성적이 안 나오면 틀린 개수만큼 맞았고, 머리가 길면 공부에 방해된다며 선생님이 머리카락을 가위로 잘라 우는 친구를 여럿 보았고, 전국 단위로 실시하는 학력평가에서 하위권의 성적을 맞으면 1시간 동안 단체로 혼나기도 했다.
심지어 책을 읽고 있는 나에게 "소원아, 너는 지금 책 읽을 때가 아니라 공부할 때야. 너 성적을 봐봐”라는 말을 하는 사람과 “부모님 두 분 다 일하시는데 뭐가 그렇게 어렵다고 그러니?”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선생님이라고 부르기도 싫다.) 중학교에 대한 좋은 기억이 없다. 인생에서 삭제하고 싶을 만큼 상처받고, 아팠던 기억들만 남아있다. 꾸역꾸역, 고등학교 입학시험을 치르고, 내가 원하던 인문계 고등학교에 입학했다.
이럴려고 중학교 때 그토록 상처받았나 생각이 들 만큼, 좋은 교사분들을 만났다. 이과, 문과를 고민하는 나를 위해 일주일 내내 상담을 해주셨던 선생님, 유치원 교사가 꿈이라는 말에 자신이 알고 있는 유치원에 봉사활동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해주신 선생님, 제자들이 원하던 대학교에 지속적으로 떨어지자, 눈물을 흘리셨던 선생님, 졸업을 하고 한참 뒤, 지속되는 임용고시 불합격에 연락드렸더니 진지하게 나의 고민을 같이 나눠주신 선생님. 그분들 덕에 나는 좋은 교사를 경험한 교사가 되었다.
“세상을 바꾸는 교사가 되고 싶습니다.”
유아교육과에 입학하기 위해 자기소개서에 썼던 문장이다. 한 아이에게 따뜻한 기억을 전해주면, 그 아이는 또 다른 사람에게 좋은 기억을 줄 것이고, 그렇게 늘어나고, 늘어나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그러니까 나는 세상을 바꾸는 사람이 될 것이라고 굳게 다짐했다.
교사에게는 엄청난 영향력이 있다. 누군가의 말 한마디가 아직까지 내 가슴 속에 남아있듯, 나 또한 나의 말 한마디가 아이들의 평생에 남을까 봐 무섭다. 교사가 된 지금, 그들을 되돌아보며 생각한다. 내가 좋은 교사, 나쁜 교사라고 기억하는 분들은 무엇이 다르셨을까? 무엇이 나의 기억 속에서 이토록 다르게 상기될까?
- 선생님 저 너무 어려워요. 안 할래요.
- 벌써 두 조각이나 맞췄는걸? 아까 00이는 한 조각도 못 맞추고 있었잖아. 너가 노력해서 벌써 이만큼이나 한 거야. 조금 더 하면 더 늘어날 거고~
유아들마다 다르지만, 어려운 과제를 맞이하면 시도조차 안 하거나, 쉽게 포기하는 유아들이 있다. 그럴때마다 나는 “완성”보다는 “과정”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해준다. 완성 못 한 퍼즐이어도 두 조각을 맞추기 위해 노력했을 유아의 마음을 들여다 주기 위해 노력한다. 어쩌면 나 스스로에게 하는 말이기도 하다. 공부를 못했던 12년의 학창 시절과 임용고시를 준비한 8년의 세월 동안 노력을 인정받고 싶었으니까. 결과만 보는 이 세상이 그지같았으니까.
그리고 나는 깨달았다. 내가 기억하는 내 선생님들의 모습이 달랐던 이유는 “공감”의 유무였다는 것을. 좋은 교사로 기억에 남는 선생님들은 나의 진로를, 고민을 들어주셨고, 같이 심각해지고, 아파해주셨다. 나도 과거에 그런 적이 있다며, 위로해주시던 선생님의 손길과 목소리가 아직도 뚜렷하다.
“선생님은 8번 실패했어.”
“선생님도 휠체어 타고 다닌 적 있어”
“선생님도 공부 못했어”
“선생님도 가난한 집에서 살았어.”
나와 같은 상처를 지닌 유아들에게 말해줄 수 있어서 나는 그토록 내 삶을 힘들게 했던 나의 결핍들에 고맙다. 세상에 자신과 비슷한 동족이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외롭지 않고, 든든한 마음을 안다. 좋은 교사가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난 옆에서 손을 잡아 줄 수 있는 교사인 것은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