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부터 나는 언제나 자동차와 함께했어요.”
<낡은 타이어의 두 번째 여행>이라는 동화책의 첫 구절이다. 이 부분이 참 좋다. 아버지가 운수업을 하셔서 나 또한 어릴 때부터 차와의 추억이 많기 때문이다. 아빠의 5톤 트럭은 우리 식구의 별장이었다. 새벽에 졸린 눈을 비비고 아빠를 쫓아가 운전석 뒤에 있는 간이침대에서 잤던 기억, 여름이 되면 온 식구가 옹기종기 모여 앉아 바다에 가서 뒤에 있는 냉동칸에 텐트를 치고 이야기했던 추억들. 떠오르기만 해도 포근하고 따뜻하다. 동화책에서 자동차는 멈춰버리고, 타이어만이 두 번째 여행을 시작한다. 이곳저곳 여행 끝에 타이어는 끝내 한 곳에 머무르지만, 그곳에서 자신이 무척 행복하다고 말한다. 아빠의 트럭은 이제 사진으로만 볼 수 있다. 5톤 안에 우리 가족의 추억과 행복을 싣고 멀리멀리 떠났다.
유치원은 교과서가 없기에 교사가 유아의 흥미와 관심을 잘 파악하고 의사결정을 해야 한다. 그럼에도 전국의 유아들이 동등한 교육을 받아야 하기에 공통적으로 실행하는 몇 가지의 놀이 주제들이 있는데 <교통기관>도 그중 하나이다. 유년시절 기억들 때문인지 나는 이 놀이를 할 때, 가장 신이 난다.
우리 반 아이들이 가장 재미있게 가지고 놀이하는 장난감은 빅블록으로 만든 자동차이다. 빅블록은 플라스틱으로 생긴 교구인데, 레고의 큰 버전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빅블록을 여러 개 쌓은 뒤 밑바닥에 바퀴가 달린 블록으로 완성시키면 자동차가 된다. 떼었다 붙였다가 쉬우니, 아이들 마음대로 자동차를 바꿀 수 있다. 5분 전까지 트럭이었던 것이 갑자기 소방차가 되기도, 택시가 되기도 한다. 이런 아이들의 관심에 따라 교실에 도로를 만들어주었다. 도로모양의 펠트지를 교실 바닥에 붙여주었다. 펠트지를 이어 붙여 도로를 완성했다. 그중에는 횡단보도, 어린이보호구역, 유턴표시도 있다. 그뿐 아니라 신호등과 표지판도 만들어주어 아이들이 교통표지판에 익숙해질 수 있도록 하였다. 어른들만 운전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자동차를 내가 직접 운전하고, 도로에 나갈 수 있다니, 아이들은 신이 난다. 5명의 초보운전자들이 도로를 신나게 씽씽 달린다.
꽝!!!
사고가 났다.
왼쪽차선과 오른쪽차선 구분 없이 달려서 난 사고이다.
“왜 도로에 화살표가 있을까?”
“왜 서로 방향이 다를까?”
“우리가 놀이 전 본 영상에서 차들이 어떻게 달렸지?”
“아~ 서로 다른 쪽으로 달리라는 거죠?!”
아이들의 머릿속에 교통규칙이 하나 더 생긴 것이다. 화살표를 보고, 방향을 지키며, 자동차를 탄다. 어린이 초보운전자의 자동차가 향한 다음 장소는 주유소이다. 주유소에 도착하자, 여자 어린이 운전자가 말한다.
“주유는 남자만 할 수 있어. 여자는 못해.”
교사로서 참 어려운 순간이다. 남자만 주유를 할 수 있다는 성역할 고정관념이 있는 아이에게 남녀 모두 주유를 할 수 있다는 성평등을 인식시켜줘야 한다.
“주유는 여자도 할 수 있어. 선생님도 하는 걸?”
말로 설명을 해주지만 찜찜하다. 과연 6년 평생 남자만이 주유하는 걸 봐온 아이에게 여자도 한다는 말 한마디로 그 오해가 벗겨질까. 고민 중, 문득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마침 다음날이 주말이었고, 나의 차의 기름이 떨어져 가고 있는 중이었다. 유튜버처럼 카메라를 차에 설치해서 여자인 내가 운전하는 모습과 셀프주유소에서 주유를 하는 모습을 촬영했다.
“우와~ 선생님 멋있다.”
“진짜 선생님 차예요?”
“선생님이 직접 기름 넣는 거예요?”
여기저기 환호성이 펼쳐진다.
혼자 떠들어대며 촬영하는 것이 민망했지만 아이들의 반응을 보며 뿌듯했다. 그럼에도 이 영상 하나로 아이들의 인지가 갑자기 달라질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여전히 “주유는 남자만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의 머릿속에 물음표 하나가 떴다면, 그 물음표가 언제 해결이 될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그것에 대해 해답을 계속 찾아나가려고 한다면 난 그걸로 충분하다. 그냥 주유하고 말아도 될 것을 주말에 굳이 촬영을 하며 수업준비를 했던 것은 어쩌면 어릴 적 나의 추억 때문이지 않을까. 나의 따뜻했던 기억들이 아이들에게도 전달되기를 바랐다.
빵빵!
운전 2개월 차인 초보운전자는 오늘도 겁이 난다. 뒤에서 들리는 경적소리는 다 나를 향한 소리 같아 무섭다. 나의 꿈은 아빠처럼 베스트 드라이버가 되는 것이다. 어느 도로, 어느 주차장을 가도 걱정이 없는 우리 아빠. 최근에 알게 된 사실은 아빠가 생각보다 늦게 운전을 배웠다는 것이다.
“아빠, 20대 때부터 운전했던 거 아니었어?”
“아니야. 결혼하고, 너희 태어나고부터 배웠지. 면허 따자마자 바로 첫 출근했어. 그때 코너 도는데 공간감각이 없어 자동차가 확 돌아서 인도 위로 차가 올라갔던 게 아직도 기억나.”
지금이야 웃으며 말하지만 그때의 아빠는 참 무서웠을 것 같다.
첫 운전, 첫 출근, 첫 아이.
인생을 살아가며 모든 게 처음이었던 그 순간을 아빠는 묵묵히 견뎌냈다.
그렇게 30년 차 베테랑 운전자가 되었고, 덤프트럭, 5톤 트럭을 지나 1톤 트럭을 끌며 우리를 키워냈다. 먹고사는 게 바빠, 자식들에게 상처를 주기도 했지만, 또 바쁜 와중에도 매일 여름, 우리와 함께 바다를 가주었다. 겹겹이 쌓인 자동차의 추억 덕분에 나는 오늘도 미소 짓고 놀이한다.
내가 일상 속에서 트럭만 보면, 어릴 적 추억이 떠오르듯이 유아들도 길을 걷다 주유소를 바라보면 “우리 선생님도 주유했는데.”라고 한 번만 떠올려주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