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을 했던 임용고시를 그만두고자 다짐하고, 제주도로 여행을 떠난 적이 있다. 처음으로 혼자 떠난 여행이었고, 그곳에서 30번째 생일을 맞이했다. 떠나기 전에는 생각 정리도 좀 하고, 앞으로의 인생 계획을 세우고 오리라 다짐했는데, 하나도 하지 못하고 돌아왔다. 당장의 의식주가 더 급했기 때문이다. 점심은 어디서 먹을지, 그곳까지 가는 버스가 있는지(뚜벅이 여행이었다), 숙소에 가는 막차는 몇 시까지인지 등 눈앞에 놓인 과제들을 해결만 하다가 4박 5일의 일정이 끝났다. 그리고 참 어이없게도 4박 5일 동안 한순간도 내 현실이 생각나지 않았다. 앞자리가 바뀐 나이도, 별 볼 일 없는 경력도, 당장의 생활비도 분명 무겁고, 해결할 수 없을 것 같았는데, 고개만 돌리면 새롭고 낯선 것들 투성이어서 오히려 모든 게 단순했다. 하늘이 예뻤고, 바람이 적게 불었으면 했으며, 제주도에서만 마실 수 있는 술이 맛있었고, LP 바에 가 좋아하는 음악을 들었다. 일상에 지치고 힘들 때, 제주도 여행을 생각하면, 앨리스처럼 나를 잠시 이상한 나라로 가게 해주는 기분이다. 그때를 되새기며 현실 도피를 하기도, 힘을 얻기도 한다.
내가 원하는 장난감을 유치원에 먼저 온 친구가 놀이하고 있는 것, 다 같이 키우는 식물에 내가 물을 주는 순서가 오려면 아직 4일이나 기다려야 하는 것 등 어른의 눈에는 소소해 보이는 일들이 아이들에게는 큰 기다림이자 심각한 고민이 된다. 내가 그랬듯 아이들이 가지고 있는 일상의 고민을 잠시나마 잊고, 진정 여행의 기쁨을 느끼기를 바라는 마음에 현장 체험 학습을 계획한다.
현장 체험 학습은 가장 신이 나기도 하지만, 교사로서 부담스러운 활동 중 하나이다. 활동 전, 활동 중, 활동 후 모든 부분에서 교사의 역할이 중요시되기 때문이다. 우선 학기가 시작되기 전, 1년의 현장 체험 학습이 계획된다. 교통공원, 수영장 등 매년 가는 곳부터 새롭게 떠오르는 현장 체험 학습장, 아이의 흥미에 따라 또 다른 곳이 추가될 것을 예상해서 교육 계획을 세운다. 그다음, 고경력 교사와 함께 사전 답사를 떠난다. 저경력 교사인 나로서는 아이들의 동선, 주차공간, 체험할 장소 간의 거리가 유아한테 힘이든지, 아닌지 아직 명확히 파악이 안 되기 때문이다. 공간을 보면 머릿속에 아이들이 촤라락 그려지는 선배 교사가 존경스럽다. 체험장의 담당자와 이야기하며 유아들이 하게 될 활동, 소요 시간, 보조 인력 여부 등을 상의한다. 사전답사 다녀온 것을 토대로 사전답사보고서를 작성한다. 원감, 원장 선생님과 한 번 더 협의를 거친 후, 결재가 완료되면 안내장을 작성한다. 유아의 보호자에게 아이들이 갈 곳과 시간, 준비물, 체험 내용을 담아 사전에 공지하고, 참석 여부를 확인한다.
체험을 떠나는 인원과, 날짜가 다 정해졌으면 전쟁과도 같은 에듀버스 예약을 시작한다. 한 달을 주기로, 자정에 에듀버스를 예약할 수 있는 시스템이 오픈된다. 우리 아이들의 인원과 출발과 도착시간이 맞는 곳을 찾아 예약한다. 에듀버스가 지정되어 있지 않은 유치원에서 모두 신청을 하므로 아이돌 콘서트의 티켓팅 모습과 유사하다. 신청을 못 하면 어쩌나 늘 걱정하지만, 늘 어찌어찌 신청에 성공하고, 현장 체험 학습을 떠난다.
“00 가려면 몇 밤 자야 해요?”
“선생님, 딸기농장 가면 딸기꽃이랑 딸기 볼 수 있죠?”
“동물원 가면 공룡 볼 수 있어요?”
대부분의 현장 체험 학습은 아이들의 흥미에 따라 이루어지기 때문에 아이들은 자신이 갈 곳과 그곳에 가는 이유를 명확히 알고 있다. 또, 순수한 눈빛으로 어른이 듣기엔 엉뚱한 것을 물어보기도 한다. 어떤 질문은 가서 직접 확인하는 것이 더 좋다고 판단해, “가서 함께 찾아보자.”라고 대답해 주기도 하고, 어떤 것은 미리 알고 가면 좋을 것으로 판단해 함께 인터넷, 책 등으로 찾아본다. 그러다 보면 나 또한 몰랐던 정보를 알게 되어 기대에 부푼다.
현장 체험 학습 당일은 30분 정도 일찍 출근한다. 약품, 휴지부터 생수, 머리끈, 멀미할 때를 대비한 비닐과 여벌 옷까지. 온갖 경우의 수가 떠오르면 웬만한 것들을 다 챙겨가고자 한다. 내가 가는 여행에서는 절대 이러지 않는데, MBTI에서 계획형이 제로에 가까운, 극 P의 성향이어서 아이들과의 현장 체험 학습은 더욱 무겁고 부담스럽게 다가온다. 내가 피해 가는 거는 상관이 없는데, 아이들에게 피해가 가서는 안 되니까. 또 그런 책임감을 가지고 있어야 하니까.
하나, 둘 컨디션 최고조의 아이들이 등원한다. 이날은 보호자들의 요청사항과 당부도 평소보다 더 많다. 특히나 어린 연령일수록 주양육자 없이 타지를 떠나는 것이 처음인 아이들도 있기에 보호자들의 걱정은 더욱 배가 된다. 그 걱정과 불안을 덜어주는 것도 교사의 역할이기에 육성으로 가게 될 곳과 받게 될 체험, 그곳에 다른 보조 인력도 있어 최대한 안전을 우선시하여 다녀올 것을 다시 한번 알려드린다. 본격적으로 떠나기 전, 아이들과 이야기 나누기를 한다. 가게 될 곳을 다시 한번 알려주는 시간이기도 하지만, 안전을 강조하는 시간이다. 교통안전, 미아 안전, 응급 시 안전 등 교사가 지켜줄 수 있는 안전과 아이들이 스스로 보호해야 하는 안전을 일러준다. 떠나기 전, 화장실을 한 번 더 다녀올 것을 권유하고, 본격적으로 떠난다.
교사로서 가장 긴장이 되고, 떨리는 순간이다. 무사히 오늘 하루도 끝나길, 다치는 유아 없이, 큰 사고 없이 즐거운 현장 체험 학습을 보낼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하며 출발한다. 버스에 아이들이 타면 한 명, 한 명 안전벨트 착용 여부를 확인한다. 모든 유아가 다 타고, 안전벨트 착용을 확인하면, 나 또한 안전벨트를 매고 출발한다. 이동하는 버스 안은 조용할 리 만무하다. 창밖 풍경을 보며 재잘재잘 떠들어 대고, 언제 도착하냐며 투덜거리기도 한다.
드디어 도착하였다. 아이들의 텐션이 가장 최고조에 이르는 순간이자, 교사가 가장 정신을 차려야 하는 순간이다. 버스가 완전히 정차하고, 운전 주무관님이 기어를 P에 넣는 것을 확인해야지만, 일어선다. 교사가 조금이라도 빨리 일어서면 아이들 또한 도착했다고 판단해 벨트를 푸는 경우들이 있기 때문이다. 일어서서 아이들에게 가장 먼저 지시하는 것은 인사이다. 우리를 유치원에서 현장 체험 학습장까지 안전하게 운전해 주신 주무관님께 큰 소리로 인사하자고 한다.
“하나, 둘, 셋”
“감사합니다.”
아이들이 하나, 둘 벨트를 풀면 한 명, 한 명, 천천히 내리는 것을 도와준다. 이날만큼은 방과 후 선생님도 함께이기에 교사 한 명이 버스에서 아이들을 내려보내면 다른 교사 한 명이 버스 밖에서 손을 잡아준다. 아이들이 다 내린 것을 확인하면 버스 안에 있는 교사는 혹시나 수많은 의자들 사이에 가려져 못 내린 유아가 없는지, 놓고 내린 물건은 없는지 최종적으로 확인 후, 하차한다. 아! 운전 주무관님과 체험이 종료되고 다시 만나게 되는 시간을 한 번 더 확인한 후!
본격적으로 체험을 시작하기 전, 화장실을 다녀온다. 본격적인 체험이 시작되기 전인데, 때로 교사는 이때 이미 지쳐있기도 한다. 이제 체험 시작이다. 시야를 넓게 보며 이곳이 안전한지, 혹시나 위험한 행동을 하는 유아나 위험한 공간이 없는지 수시로 확인해야 한다. 체험학습장에 계신 선생님의 말씀을 들으며 새로운 정보를 얻기도 하고, 새로운 것을 보거나, 만져보기도 하며 아이들의 세상은 한층 더 밝아진다. 신기해하고, 좋아하는 유아들의 표정을 보며 많은 절차를 걸치더라도 여기까지 무사히 아이들을 데리고 왔음에 뿌듯함을 느끼고, 지쳤던 것도 잊고, 다른 또 재미있는 공간을 찾아봐야겠다고 다짐한다. 그리고, 20명의 내 친구들과 함께 신나게 재미있게 놀이한다.
“벌써 끝났어요?”
“더 놀고 싶어요.”
“다음에 또 와요."
아쉬움 가득한 아이들의 목소리와 함께 체험이 종료되었다. 비누, 피자, 쿠키 등 체험하며 생긴 아이들의 물건에 한 명, 한 명 이름을 써주고 챙긴다. 교사의 짐은 무거워졌지만, 아이들의 마음은 가벼워졌다. 다시 한번, 화장실을 다녀오고, 버스에 타 안전벨트를 착용한다. 올 때와 달라진 점은 버스 안의 소음. “왜 이렇게 조용하지?” 생각이 들어 뒤돌아보면 다들 잠들어있다.
‘오늘 하루만큼은 너희들도 아무 생각이 안 났기를 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