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소민이가 유치원에서 진주가 선물로 줬다면서 인형을 가지고 왔는데, 인형이 크고 새것 같아 보여서요. 이거 받아도 되는 걸까요?”
소민의 어머니에게서 온 전화에 나의 눈빛은 흔들렸다. 소민이 받은 인형이 무엇인지, 어제 진주가 인형을 들고 왔었나?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애써 더듬은 기억 속 떠오른 인형 하나가 있었다. 만화 포켓몬스터에 나오는 꼬부기 인형이었다. 어제 교실에서 갑자기 꼬부기 인형이 나타나서 집에서 가지고 온 물건은 꺼내지 말라고 했었는데, 그게 진주 거였구나.
“아~ 어머니 혹시 꼬부기 인형 말씀하시는 건가요?”
“네, 맞아요.”
“아~ 요즘 진주가 부쩍 소민이랑 같이 놀이하던데, 소민이 좋아서 선물로 줬나 봐요. 진주 어머니한테 한번 여쭤보고, 다시 전화드릴게요.”
“진주어머니~ 소민 어머님이 꼬부기 인형 선물로 받아도 되는 거냐고 여쭤보시더라고요. 새것이라 받기에는 미안하다고.”
“꼬부기 인형이요?? 진주한테 인형이 워낙 많아서 저도 어떤 건지 잘 모르겠네요. (웃음)
진주가 괜찮다고 했으면 선물로 줘도 돼요.”
소민어머니에게 괜찮다고 말을 전하고, 교무실에서 업무를 보는데 방과후 선생님이 잠깐 나와야 할 것 같다고 오셨다. (교실 사이에 교무실이 있어, 문을 열면 바로 교실이다.) 진주를 하원하러 데리러 온 어머니가 진주에게 “너한테 꼬부기 인형이 있었어?”라고 물어보자, 진주가 “아 그거 인국이가 나 준 거야.”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그러니까, 그 꼬부기 인형의 원래 주인은 인국이었고, 인국이가 진주에게 선물로 준 것을, 진주가 또 소민에게 선물로 주었고, 그 인형을 들고 소민은 집으로 가지고 간 것이었다.
세 명의 유아와 이야기 끝에 꼬부기 인형은 원래의 주인이 인국에게 돌려주기로 했고, 진주 어머니는 번거롭게 해서 죄송하다고 하면서 속상해하는 소민에게 이모가 인형을 사주겠다는 말까지 하였다.
유치원 문 앞에서 어머니와 유아 세 명이서 이야기하고, 교무실로 돌아왔는데 속상함이 들었다. 내가 조금만 더 유의 깊게 아이들을 봤다면, 어머니에게 전달하기 전에 한 번 더 확인했다면, 온갖 “만약에~”를 붙이며 그랬다면 조금 더 원활하게 이 상황이 마무리되었을 텐데...
“선생님, 그거 진짜 별일 아니야. 30년 경력의 나도 교실의 모든 상황을 다 파악할 수는 없어. 애들은 20명 가까이 되지, 교사는 한 명이지. 그걸 어떻게 다 알아. 진짜 아무 일도 아니야.”
옆 반 선생님이 위로해 주셨지만, 그때의 난 교사 경력 3개월의 생초짜였고, 초임 교사에게는 모든 게 다 별일이었고, 그래서 모든 상황에 다 심각해졌다.
혼자 고민을 하다가 유아들에게 의견을 물어보기로 했다. 살면서 문제 상황을 한 번도 안 겪을 수는 없다. 문제를 맞닥뜨렸을 때 어떻게 해결할지를 알려주는 것도 교사의 역할이다. 문제라면 문제랄 수 있는 이 상황을 어영부영 넘기기보다는 잘 해결하고 싶었다.
“집에 있는 물건을 유치원에 가져오지 않기라는 약속이 있잖아~ 그럼에도 우리는 왜 집에 있는 장난감이나 인형을 유치원에 가지고 오고 싶을까?”
“유치원에 있는 놀잇감은 이제 다 익숙해져서 재미가 없어요.”
“집에서 혼자 가지고 놀면 재미가 없어서, 친구들하고 같이 놀고 싶어요.”
“집에 있는 장난감을 친구들에게 자랑하고 싶기도 해요.”
유아들의 의견에 다 일리가 있었다. 연령마다 교실에 있는 교구가 다른데, 작년 선생님들은 주로 옆 반과 합반을 해서 많이 놀이할 수 있도록 했다고 하셨다. 그러니 재원생들에게는 7세 반의 교구가 흥미롭지 않았다. 합반을 통해 어린 연령과 큰 연령이 서로 협력하여 사회성을 증진시키고, 모방 학습할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생각지 못한 단점이었다. 또한, 외동인 유아들이 많아 집에서는 혼자만 놀이해야 하니 친구들과 같이 놀고 싶은 그 마음도 충분히 이해되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의견을 모아 “장난감 DAY”를 하기로 했다. 일주일 동안은 집에 있는 장난감을 마음껏 가져와도 되는 것이다. 단, 다음과 같은 규칙을 정하였다.
- 매일 장난감을 바꿔도 가능하나 하루에 1개의 장난감만 가져올 것
- 위험하지 않은 물건
- 태블릿 pc, 닌텐도 등 전자기기가 아닌 것
- 유아들이 가지고 다닐 수 있을 정도의 크기인 것
- 실내에서 놀이할 수 있는 것
- 새 제품이나 고가의 물건은 아닌 것
가정에서의 협조가 필요한 활동이었기에 사전 안내가 나갔다. 혹여나 보호자들이 부담을 느끼실까 봐 집에 있는 작은 인형이어도 좋으니 이 활동으로 인해 새로운 장난감을 구매하지는 말아 달라는 당부도 한 번 더 하였다.
당일이 되었고, 유아들은 함박웃음을 지으며 장난감을 손에 들고 왔다. RC카, 반자동 병원놀이, 로봇 등 정말 많고도 다양한 장난감들이 있었다. 본격적인 놀이를 시작하기 전, 한번 더 유아들과 약속했다.
- 친구의 장난감을 가지고 놀이하고 싶을 때는 친구에게 먼저 물어봐요
- 나의 장난감이 소중하듯, 친구의 장난감도 소중해요. 조심히 놀이해요.
- 장난감을 다 가지고 놀았으면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바구니에 정리해 줘요. (유아들이 장난감을 놓을 수 있도록 1인 1 바구니를 준비해 주었다.)
장난감 DAY가 시작되었다. 각자 가지고 온 팽이로 시합하는 유아들과 화장품으로 화장하고, 마이크를 들고 무대를 하는 가수들까지.(유아용 화장품과 마이크 다 다른 유아가 가지고 와서 협력해서 놀이가 이루어진 것이다.) 중간에 팽이가 멀리 튕겨 나가 눈에 보이지 않자, 놀이를 멈추고 다 같이 찾아주려는 유아들의 모습에 또 한 번 반했다.
유아들에게 가장 인기 있던 장난감은 의외로 오목이었다. 재훈이 자신의 몸만 한 오목판과 오목 알을 낑낑거리며 들고 왔을 때는 웃기기도 하고, 속으로 내심 친구들이 재미없어할 것 같은데 걱정했는데 아니었다. 유아들은 다른 색깔로 된 알과 그 알로 수많은 네모 사이의 줄에 맞춰 5개의 알을 먼저 줄 세우는 사람이 이기는 그 게임의 재미를 느낀 것이다. 재훈은 일주일 내내 오목을 가지고 왔고, 오목은 장난감 DAY에 가장 인기 있는 종목이 되었다. 후에 나는 오목을 교실에 배치해 주었고, 오목이 익숙해지자, 알까기와 오목 알로 탑 쌓기 등의 놀이를 하는 모습을 보며 흐뭇해질 수밖에 없었다.
두 달 뒤에 “제2회 장난감 DAY”가 실행되었다. 또 하고 싶다는 유아들의 열렬한 성원이 있었기 때문이다. 교사의 부족함으로 시작된 일이지만 그로 인해 유아들이 다채로운 경험을 하고, 즐거운 감정을 느낀다면 나는 또 한 번 실수할 준비가 되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