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유아들과 함께 한 게임은 ‘컬링’이다. 유치원에도 빙상장이 있으면 좋겠지만, 빙상장이 없기에 교실 바닥에 1~5점까지 된 점수판을 붙여놓고, 네모 블록으로 밀어서 해당하는 점수를 얻는 게임을 진행하였다. 유아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응원하고, 높은 점수를 받아 좋아하는 유아, 낮은 점수를 받아 아쉬워하는 유아 등 게임은 늘 즐거운 활동 중 하나이다.
소규모 유치원에 있기에 게임이나 신체활동은 옆 반과 협력하여 자주 하고는 한다. 옆 반과 함께 수업해도 총 13명밖에 되지 않지만, 5명, 8명인 반에서 따로따로 하는 것보다 다 같이 하는 것이 팀을 나누기도 편하고, 더 즐겁기 때문이다.
“우리 보너스게임도 할까?”
“어떡해요?”
“점수판 위를 선물로 뒤덮는 거지. 그래서 그 위에 스톤이 닿으면 그 선물을 가져가는 거야.”
“오 좋은데요?! 아이들이 좋아할 것 같아요.”
선배 교사들이 부러운 순간들이다. 어쩜 그렇게들 아이디어들을 잘 내실까, 선배 교사의 의견에 따라 나는 선물들을 고르기 시작했다. 유치원에는 미술 활동을 하고 남은 재료나, 운동회나 학예회 등 때 배부하고 남은 선물들이 꽤 쌓여있다. 자료실을 뒤져가며 선물들을 꺼내놓았고, 옆 반 선생님과 협의하여 키링, 속옷, 마스크, 전동칫솔, 캐릭터 수첩, 스티커, 크리스마스 색종이 등으로 선물을 추리게 되었다. 해당 선물들의 사진을 찍어 A4용지로 뽑아 점수판 위에 뒤덮을 수 있도록 준비하였다. 선물 교환권도 있어 유아들이 얻어낸 선물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다른 친구와 바꿀 기회도 주었다.
본경기 때보다 유아들의 반응은 더욱 뜨겁다. 한 사람당 총 3번의 기회를 주었고, 3번을 시행했는데도 선물을 못 가져간 유아들에게는 한 번의 기회를 더 주어, 결국 모든 유아가 선물을 가져갈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자신이 원하는 선물을 가져가지 못해 아쉬워하는 유아들이 존재하긴 했지만, 무해한 유아들답게 서로 선물을 교환하여 모두가 행복하게 게임이 끝이 났다.
이미 많이 말해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은 지겨울 수도 있지만, 이런 순간이 교사로서 참 좋다. 유아들에게 선물을 주는 순간, 유아들에게 새로운 교구를 제공하는 순간들. 유아들로부터, 보호자들로부터 어떠한 대가를 받지 않고 지원해 줄 수 있는 순간들이 좋다. 그리고 그건 어린 시절 나의 결핍이 채워지기 때문이라는 것을 난 알고 있다. 선물에는 ‘마음’이 있다. 선물의 크기와 가격을 떠나 이 선물을 준비할 때, 상대가 나를 생각했을 마음. 나의 취향을 고려하여 조심스레 건넸을 그 마음들이 있다는 것을 알기에 우리는 선물을 받으면 기분이 좋아진다.
살아가며 많은 선물을 받았지만, 잊지 못하는 선물 두 가지가 있다. 그리고 그건 다 오빠가 선물해 준 것이다. 오빠는 내가 초등학생이 되던 8살의 생일에 생일을 축하한다면 그 당시 내가 가장 좋아했던 캐릭터가 그려진 손거울을 선물해 주었다. 손거울 안에는 핑크색 빗도 있었다. 탁 열면, 손거울과 빗을 꺼낼 수 있는 폴더폰같이 생겼던 내 자랑스럽고도 예쁜 손거울. 오래 쓰자 접고 열리는 부분이 부셔줬지만, 테이프로 칭칭 감싸 오래도록 들고 다닌 그 손거울은 현재까지도 나의 화장대 서랍 한 편에 있다. 또 하나의 선물은 곰돌이 인형이다. 초등학교 4학년 친구들로부터 따돌림받아 힘들던 시절, 자고 일어나니 눈앞에 곰돌이가 있었다. 오빠가 “생일 축하해!”라는 편지와 함께 곰돌이 인형을 선물해 주었다. 하늘색 옷을 입은 곰돌이 인형은 너무나 귀여웠고, 나의 애착 인형이 되었다. 현재는 곰돌이의 귀가 축 처져 기가 팍 죽은 곰돌이의 모습으로 집 안 장롱에 있지만, 그 시절 나의 기를 팍팍 살려준, 나의 힘을 제일 많이 실어준 곰이다.
선물과 함께 또 사람의 감정을 따뜻하게 만드는 것은 편지이다. 유치원 교사를 하면 편지를 자주 받는다. 한글을 읽고 쓸 수 있게 되면서 유아들은 자신이 좋아하고 관심 있는 글자를 마구 쓰기도 하고, 교사에게 불러주는 것을 써달라며 요청하기도 한다. 그 덕에 교사의 책상은 늘 편지로 산을 쌓는다. 편지를 읽으며 유아들의 늘어가는 한글 실력을 보는 재미는 쏠쏠하다. 알아보지도 못하는 글씨를 쓰던 유아들이 점차 알아볼 수 있게 “선”을 쓰고, 연달아 줄지어 반복하고 그러다가 점차 “선생님”을 쓰고, “사랑해요”까지 완성하게 된다. 유아들은 정말 하루가 다르게 성장한다.
돌봄 교사를 하던 시절, 잊지 못할 문자를 받은 적이 있다. “선생님, 임용고시 준비하신다면서요. 선생님은 정말 좋은 교사가 될 거예요.”라는 문자. 혜진이의 부모님은 맞벌이 부부셨기에 늘 돌봄교실에 오랜 시간 남아있었다. 그런데도 혜진이는 늘 지치지 않고, 밝은 미소를 보여주었다. 조금이라도 시간이 늦으면 뛰어오며 미안함을 표현했던 보호자들. 스승의 날, 보내주신 문자에 나에게 따뜻한 기운이 퍼졌다. 3년이 지난 지금도, 그 문자를 지우지 못하고 있다. 아마 휴대전화를 바꾸더라도 그 문자는 계속 내 휴대전화에 남아있을 것이다. 내 다이어리 뒤쪽 책 덮개에는 늘 하나의 편지가 껴있다. 혜진이 어머님의 문자처럼 언제까지고 버리지 못할 편지.
“사랑하는 딸, 작년 한 해도 열심히 살아줘서 고마워 올 한 해도 용기 잃지말고 네가 정한 목표를 향해 열심히 노력해 나가길 바라 꿈은 꼭 이루어진다잖아! 포기만 하지 않으면.. 우리 딸 파이팅!”
짝사랑은 늘 쓰리다. 시험에 대한 일방적인 사랑으로 힘이 들던, 늘 똑같았던 일상 중 하루였다. 그날도 어김없이 오늘 할 공부를 머릿속으로 정리하며 일어났는데, 책상 앞에 놓인 편지에 한참을 울었다. 아빠의 열심히 살아줘서 고맙다는 말에 지난 서러움들이 몰려왔다. 아빠가 날 사랑해주는 것만큼, 세상도 나를 사랑해 주길 간절히 바랐다.
편지를 받은 지 5년이 지났지만, 함부로 꺼내보지 않는다. 그 편지 안에는 아빠의 마음이 담겨 있어, 그 마음을 매번 들춰보면 마음이 해질까 봐 겁이 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말 내가 힘이 들 때, 누군가의 응원이 간절히 받고 싶을 때 딱 한 번씩만 꺼내본다. 아빠의 소중한 마음을 해치지 않을 정도로만 보고, 다시 넣어 둔다. 아빠의 편지는 내 영원한 부적이다.
편지는 받는 사람의 마음이 따뜻해지기도 하지만, 쓰는 사람 역시 포근해진다. 편지를 쓰는 순간만큼은 오로지 그 대상만을 생각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래서 사람들은 선물보다 오랜 시간 나를 생각하며 공들여 작성한 편지에 더 깊이 감동하는 것이지 않을까?
유치원에서는 그림책을 읽고 주인공에게 글을 쓰거나, 소방관, 경찰관, 환경 미화원분들에게 감사 편지 쓰는 활동을 자주 한다. 그리고, 그들을 조금이나마 돕기 위해 분리수거를 하거나, 질병 관리 규칙을 지키고, 매일 안전 규칙을 상기하고 지키려고 한다. 우리는 유아기 때부터 다른 사람의 감정을 살피고, 대처하는 방법을 배운다. 다른 사람에게 “감사함”을 표현하는 방법을, “미안함”을 표현하는 방법을 배운다.
지금 한글을 쓰며 다른 사람에게 “표현”의 재미를 느끼는 유아들이 성인이 되어서도 그 재미를 유지해 가기를, 지금처럼 자신의 감정에 솔직해져 타인에게 올바르게, 진심 어리게 표현할 수 있기를 우리 모두 그런 과정을 거쳐왔음을 잊지 말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