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학년 학생들 만나는 유치원 교사

by 김소원

“어떤 선생님이지?”

“안녕하세요.”


병설유치원에 근무하다 보면 복도에서, 급식소에서, 운동장에서 초등학생을 자주 만난다. 어떤 선생님인지 모르기에 낯을 가리는 학생부터, 누군지도 모르고 반갑게 인사하는 학생들까지. 분명 얼마 전에 내가 저런 모습이었는데, 언제 내가 선생님이 다 되었는지 모르겠다. 덩치가 큰 아이들이 “선생님”하고 부르면 놀랄 때가 있다. 나에게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아이들은 나보다 3배는 작은 아이들인데, 나보다 키 큰 아이가 선생님이라고 부르면 흠칫 놀라고는 하지만 티 내지 않고, 밝게 인사해준다. “어, 안녕~반가워.” 그러고는 문득 예전 기억에 씨익 미소 짓고는 한다.


기간제교사로 첫 학교에 근무하던 때, 초등학교 선생님들과 카풀을 한 적이 있다. 아니, 나를 태워주셨다. 나와 같이 근무하시는 유치원 선생님이 6학년 선생님들과 카풀 중이셨고, 운전을 못 하는 나를 위해 매번 “같이 타고 가자 선생님. 괜찮아.”라고 말해주셨다. 6학년 선생님들도 흔쾌히 수락해 주셨다. 선생님들과 함께하는 출퇴근길은 즐거웠다. 내가 알지 못하는 초등학교의 세계, 아이들의 특성, 과거 교육과정 등 선배 교사들과의 대화는 편안하고 신기했다. 그날도 어김없이 즐겁게 퇴근하던 길이었다.


“우리 유치원에 책 읽어주러 갈까?”

6학년 선생님들은 아이들의 인성교육 문제로 고민중이셨다. 동생들에게 책을 읽어주러 가면 아이들이 조금은 성숙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무심코 던진 선배교사의 말. 나는 그 말에 꽂혀버렸고, 그 뒤로 선배 교사들에게 매번 졸라댔다.


“선생님 우리 그거 진짜 하면 안 돼요?”

“뭘?”

“책 읽어주는 거요! 저희 아이들 급식소에서 초등학생 만나면 좋아한단 말이에요.”


언젠가, 학부모님이 우리 아이가 초등학교 언니들하고 함께 밥 먹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긴다고 말하였다. 복도에서 같은 학원 다니는 언니를 만나는 것, 나의 언니나 오빠 형이 친구의 형제보다 나이가 많은 것에 우쭐해주는 유아들의 모습을 보았다. 그래, 나도 우리 오빠가 6학년일 때가 가장 뿌듯했던 것 같다. 내 나이도 아니면서 말이다. 그래서 6학년 아이들이 우리 교실에 와서 책을 읽어주기를 바랐다. 우리 아이들이 좋아할 모습이 눈에 선했기 때문에.


후배 교사의 성화에 결국 선배 교사는 져주셨다. 6학년 학생들이 우리 유치원에 와 책 읽기를 계획하였다. 와서 읽어주면 되는 거라고 간단하게 생각했지만, 역시나 쉬운 일은 없었다. 우선, 6학년과 유치원이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을 맞춰야 했다. 점심시간도, 하교시간도, 체험학습 일정도 다 달랐기에 시간을 맞추는 것이 쉽지 않았다. 결국 유치원이 점심을 먹고 온 후, 6학년은 점심 먹으러 가기 전 짬 나는 30분 동안 활동을 진행하기로 했다.


“유치원생이 읽을 수 있는 그림책은 어느 정도 수준이에요?”


6학년 선생님이 물어보았다. 학생들과 도서관에 가서 책을 고르는데, 초등교사인지라 유아들의 수준에 맞는 그림책을 선정하는 게 어려웠다고 했다. 유아마다 발달 특성은 다르지만, 어린 연령(5-6세)은 1-2줄, 큰 연령(7세)은 대체로 3-4줄 정도의 글자가 있는 것이 좋다고 말하고 유명한 그림책 한두 권 정도를 추천했다. 학생들과 함께 도서관에 가서 유치원 동생들에게 읽어주는 그림책을 고르는 것도 색다른 경험이었다고, 자신들도 형님이라며 좋은 그림책을 고르고, 재미있게 책을 읽어주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니 기특했다고 후에 선생님은 말했다.


6학년 선생님이 걱정하는 것 중 또 하나는 남녀 비율이었다. 6학년은 남학생이 많고, 그 중에는 덩치가 큰 학생들도 여럿 있어서 혹시나 유아들이 놀라지는 않을까, 무서워하지는 않을까 걱정했다. 병설유치원 경험이 적은 어린 연령(5-6세)은 놀랄 수 있지만, 3년의 학교 경험이 있는 큰 연령(7세) 유아들은 괜찮을 것으로 판단해, 7세 반에 남학생들이, 5-6세(혼합) 반에 여학생들이 들어가 책을 읽어주기로 하였다.


대략적인 계획을 세웠으면 이제 보호자와 유아들(학생들)에게 알릴 차례이다. 유치원과 6학년 주간교육계획안에 안내가 나갔다.


“선생님 엄마가 그러던데, 6학년이 우리 교실에 온대요.”

“선생님, 6학년 형님들이 어떤 책 읽어주러 오는 거예요?”

“공룡 책도 읽어줘요?”


주간교육계획안을 통해 가정에서 보호자에게 이야기를 전해 들은 아이들이 질문하기 시작했다. 한 번도 초등학생이 유치원 교실에 찾아온 적은 없기에 유아들은 신이 났다. 드디어 “6학년(유치원)과 함께하는 책 읽기” 날이 왔다.


학생들이 교실에 왔을 때, 당황했다. 온다는 것을 알고 있었는데도, 앞서 말했듯, 나보다도 큰 키의 20명의 학생이 올망졸망한 유치원 교실에 있는 모습은 낯선 풍경이었다. 유아들 역시 조금은 얼어있었다. 분위기를 풀기 위해 밝게 웃으며 인사했다.


“어서와요~ 우리 유치원 아이들이 6학년 형님들 온다고 엄청 좋아했어요. 우리 6학년 학생들도 오랜만에 온 유치원 교실에서 좋은 추억 만들어가기를 바래요.”


조금은 풀어진 분위기 속, 책 읽기가 시작되었다. 한 명의 6학년 학생과 2-3명의 유아가 그룹을 지었고, 사전에 6학년 학생이 골라온 책 한 권, 유아들이 읽어주기를 바라는 책 한 권을 골라 총 두 권의 책을 읽어주었다. 개구지던 유아들도, 조금은 강하게 행동하던 학생들도, 그 순간만큼은 책에 온전히 몰입했다. 그때의 영상을 보고 있노라면 아직도 소름이 돋고는 한다. 6학년 학생들은 과자와 직접 그린 만화 캐릭터를 동생들에게 선물로 주었다.


“선생님, 어제 6학년 형이 알려준 대로 레고 만들었어요.”

“어제 이거 안 되었는데 6학년 언니가 고쳐줬어요.”

“선생님 저희도 6학년 형님들한테 고맙다고 편지 쓰고 싶어요.”


6학년 학생들과 함께 한 시간이 좋았는지, 다음 날이 되어도 아이들은 어제 만난 오빠, 누나들 이야기뿐이다. 편지를 쓰고 싶다는 아이들의 어여쁜 마음에 한 번 더 반했고, 이번엔 우리가 6학년 교실에 찾아가기로 했다. 6학년 학생들만큼 멋지게 그린 캐릭터는 없지만, 유아들이 손수 적은 편지와 종이컵으로 만든 인형을 들고 찾아갔다. 매번 오는 초등학교이지만, 늘 유치원에만 머물러있기에, 처음으로 가는 초등학교 교실에 유아들은 또 한 번 들떴다. 6학년 교실의 문을 여니, 칠판에 “우리 교실에 온 걸 환영해!”라는 큰 글자와 함께 유아들의 이름이 하나, 하나 적혀있는 모습을 보며 유아들은 “우와~”를 연신 내뱉었다. 선물을 나눠주고, 함께 사진을 찍는 것을 끝으로 이틀 동안 진행한 “6학년과 함께하는 책 읽기 활동”이 마무리되었다.


“유치원 선생님이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저 그때 동생이 준 인형 아직 사물함에 있어요.”


그 뒤로 6학년 학생들은 나를 보면 반갑게 인사해 주었고, 나도 괜히 다른 학년보다 6학년 학생들에게 더 정이 가고는 했다. 이때의 활동이 유독 기억에 남는 이유는 유아들에게(학생들에게) ‘주는 기쁨’이 무엇인지를 경험해 주었다는 뿌듯함 때문이다. 받는 것이 더 쉽고, 기쁠 것 같지만,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을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더 기쁘고 행복할 때가 있다는 것을 유아들(학생들)이 조금이나마 느끼길 바랐다. 기간제 교사 계약이 종료되던 날, 회식 자리에서 6학년 선생님은 말했다.


“쌤~~ 나 사실 그때 ‘밥 한번 먹자’처럼 그냥 한 말이었는데, 선생님이 계속하자 해서 얼마나 당황했는지 몰라요. 그래도 좋은 경험이었어요.”


뒤늦게 본심을 드러낸 선생님의 모습에 웃기면서도 미안했다. 융통성 있게 교육과정을 운영할 수 있는 유치원과 달리 정해진 진도가 있고, 다른 학급과 맞춰야 하는 초등학교의 교육과정상 새로운 수업을 진행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수업을 계획하고, 학생들과 도서관을 가고, 유아들을 위해 미술 시간에 캐릭터 그림 수업을 진행해 준 선배 교사에게 고마웠다. 나의 열정을 보니 본인의 초임 때가 생각났다며, 앞으로 교육 현장을 이끌어 갈 사람은 후배들이니, 그들이 원하는 대로 이끄는 것도 선배 교사의 몫이라고 생각했다고, 나중에 선생님도 후배 교사 만나면 그들의 목소리를 들어주라는 말도 전했다. 유치원,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다른 학교급에서 다른 연령의 아이들을 가르치지만, 누군가에게 바른 마음을 전달하고 싶다는 소망 하나는 모두 동일하다. 우리 모두 선생님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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