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들이 웅이를 은근히 따돌리는 것 같아요.”
어느 날, 방과후 선생님이 한 말이다. 사실 나도 조금은 느끼고 있던 부분이다. 웅이는 혼자 놀이하는 날이 많았다. 다른 친구에게 관심이 없고, 퍼즐, 롤러코스터 만들기 등 무언가에 집중해서 구성하는 놀이에만 흥미를 가졌다. 독립적이고, 자주적이라는 장점이 있지만, 또래와 어울리고 관계를 맺는 것은 어려워 보였다. 혼자 놀이에 집중할 때는 다른 친구들이 무언가를 물어보아도 대답하지 않았고, 그러다 다른 친구와 같이 놀이하고 싶어지면 말하기 보다, 친구를 따라다니기만 했다. 그렇지만 교사가 “왕따”라고 단정을 지어버리면 그 유아는 정말로 그렇게 되어버린다.
“우리 조금만 더 자세히 관찰해봐요. 저희가 놓친 부분이 분명 있을 거예요.”
방과후 선생님께 대답했다. 모든 유아가 친하게 지내는 건 불가능하지만, 소외되는 유아 또한 있어서도 안 된다. 다시 한번, 편견 없이 웅이를 관찰하려고 노력했다. 웅이는 꼼꼼하고, 창의적이며, 차례, 질서 등을 잘 지키는 유아였다. 다만, 다른 사람과 소통하는 것에 어려움이 있었다. 언어 발달이 느리게 되고 있어 자신의 의사를 명확히 표현하는 데까지 시간이 걸렸다. 자기 말을 다른 친구들이 끝까지 들어주지 않으니 때로는 따라다니거나, 소리를 지르는 등으로 의사 표현을 하려고 했다. 그 점이 다른 친구에게는 불편할 수 있었다.
“누군가는 밥을 느리게 먹고, 누군가는 유치원에 일찍 오는 게 힘들 듯, 우리가 다 힘들어하고 노력하는 게 있잖아. 웅이는 말을 빠르게 하는 게 조금은 힘들대, 그러니까 우리 조금만 기다려주는 거 어떨까?”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유아들에게 말해주었다. 선생님이 웅이의 편만 드는 것처럼 보이지 않도록, 웅이도 친구들과 잘 어울릴 수 있도록, 웅이에게도 계속하여 말해주었다.
“웅아, 친구가 불편해서 하지 말라고 하는 거야. 우리 다른 방법으로 같이 놀자고 표현할 수 있어.”
조금, 조금씩, 아이들이 변해가는 게 느껴졌다. 점차, 웅이의 주변에도 친구들이 생겼다. 주로 여자 유아와 놀이하는 날이 많았다. 누나가 두 명이 있는 웅이의 환경적인 영향과 웅이와 여자 유아들의 놀이 취향이 비슷한 것, 남자 유아들보다 여자 유아들이 상대적으로 웅이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줄 수 있는 것 등의 영향인 듯했다. 웅이가 다른 친구에게 관심이 생기고, 다른 친구들 또한 웅이와 같이 놀이하는 건 기쁜 일이었지만, 조금의 아쉬움은 남았다. 남자 유아, 여자 유아 따로 놀이하다가도 서로가 어울려져서 놀았다가, 또 헤어지기도 하는 특징을 보이는 다른 유아들에 비해 웅이는 여자 유아하고만 놀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친구와 함께 놀이하는 것은 좋은 신호였으니 유아들을 더 지켜보았다.
웅이가 다른 유아들과 친해질 수 있는 결정적인 계기가 된 사건은 “장난감DAY”였다. 그날 웅이가 가지고 온 로봇이 친구들에게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단순히 로봇이 멋있어서라기보다, 로봇을 해체했다가 조립하는 웅이의 현란한 손기술에 친구들이 반했기 때문이다. 나 또한 화려하게 로봇이 변신하는 모습을 보며 놀랐다.
“웅아 나도 해봐도 돼?”
“어떻게 하는 거야?”
“한 번만 더 보여줘.”
그날, 웅이는 질문 폭탄을 받아내느라 바빴다. 친구들의 질문에 하나하나 대답해 주는 웅이의 모습과 웅이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로봇을 변신시키는 아이들의 모습 그 모습을 보며 나는 흐뭇해졌다. 그 뒤, 웅이는 우리 반의 “박사님”이 되었다. 레고, 자석 블록 등 무언가를 구성하다가 어려움이 생기면 웅이에게 도움을 요청하고는 했다. 활짝 웃으며 도와주는 웅이의 모습을 보며 웅이가 친구들 사귀는 방법을 몰랐던 것뿐이구나. 생각이 들었다.
“선생님, 웅이가 저랑 놀이 안 논대요.”
“웅이가 혼자 놀고 싶은가 봐. 00이도 혼자 놀고 싶을 때 있지? 지금 00이도 그런 기분인 거야.”
“‘웅이도 친구에게 ‘나 지금은 혼자 놀이하고 싶어.’라고 말해주면 어떨까?”
그럼에도 생기는 사사로운 소통 문제들을 지속적으로 말해주었다. 유아들은 분명 더 성장할 것이고, 변할 것이다. 그렇지만, 아쉽게도 난 웅이와 유아들이 변하는 모습을 끝까지 보지 못하였다. 6개월의 계약이 종료되었기 때문이다.
“선생님, 오늘 웅이가 친구를 일렀어요.”
“네? 진짜요?”
계약이 종료되고 3달 정도 지난 후에 방과후 선생님께 온 연락에 나는 웃음이 났다. 이른다는 거 자체는 좋지 않은 행동이지만, 그만큼 웅이가 친구와 어울려서 잘 놀이하고 있다는 증거기도 했으니까. 친구들과 티키타카가 잘 맞다가 안 맞는 순간에 속이 상해 이르는 거니까. 그 모습을 보지 못해 아쉽다가도 역시나 변한 유아들에게 고마움과 기특함, 안도감이 들었다.
<따돌림 없는 교실 (원제. You Can’t Say You Can’t Play.)>은 50여 년 동안 유치원 교사를 하신 비비언 거신 페일리 선생님이 쓰신 책으로 <‘너랑 안 놀아’라고 말하지 않기>라는 규칙을 도입하고 유아들과 토론하며 벌어진 일들을 기록한 에세이이다. 이 책을 옮긴 신은수 선생님이 하신 따돌림은 따돌림당하는 아이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잘못된 교육이 불러온 습관에서 비롯되는 것이라는 말에 깊이 공감한다.
어린 시절부터 우리는 “친구랑 싸우지 않고, 사이좋게 지내.”라는 말을 들어왔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그대로 말한다. 하지만, 관계를 맺다 보면 갈등이 없을 수 없고, 사이좋게 지내지 못하는 날도 있다. 그래서 친구랑 싸우게 되면 유아들은 죄책감을 느끼고, 갈등을 자주 불러일으키는 사람을 보면 이상한 사람이라고 단정 짓기도 한다. 나는 갈등 없는 교실이 아닌 갈등이 대화가 되는 교실을 만들고 싶다. 그리고 그건 비단 교실에서만 이루어져야 할 것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