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의 하나의 역사,
한 사람의 하나의 별

by 김소원

나는 지쳐있다. 유치원-피아노 학원- 학습지-집이라는 루틴 속에서, 아직 한글도 제대로 모르겠는데, 어른들한테는 존댓말을 해야 한다는 규칙 속에서, 가위도 그냥 주어서는 안 된다는 예절과 식당에 갈 때는 줄을 서야 한다는 질서 등 수많은 규율로부터 지쳐있는데, 아빠는 오늘도 말한다.


“너희 나이 때가 제일 좋을 때야.”


도대체 뭐가 좋단 말인가, 오늘 난 오빠만 이뻐하는 엄마가 미웠고, 유치원에서 친구들이 내가 놀고 싶은 장난감을 먼저 차지해서 놀고 있었고, 내 의견을 말했을 뿐인데, 어른들이 말대꾸한다며 혼냈는데 말이다. 하고 싶은 대로만 다 하고 사는 어른들은 모른다. 우리의 심정을, 그런데 또 엄마, 아빠의 눈을 보자니 그리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 매일매일 바쁘고, 커피라고 불리는 검은 물을 먹는다. 언젠가 한번 엄마 몰래 마신 적이 있는데, 먹자마자 뱉었다. 우웩 이런 이상한 걸 어른들은 왜 먹는지 모르겠다. 역시 어른들은 이상하다.


현 꼭지의 제목이자, 가사인 BTS <소우주>는 내가 수험생시절 울었던 몇 백곡 중 하나이다. 이 곡의 가사를 좋아한다. 우리는 모두 별이고, 한 사람에게는 한 사람의 역사가 있다. 그리고, 그 한 사람에는 유아도 포함된다.


“어린이”라는 호칭이 붙었던 시절, 늘 의구심이 들었다. 어른들은 왜 우리의 일을, 문제를, 별일 아닌 것처럼 여기지. 지금의 난, 매우 힘들고, 심각한데 말이다. 어제 있었던 일이다. 선영이가 서럽게 울고 있다. 교구장에 있는 컵을 사용하여 컵 쌓기 놀이를 하는 데, 원민이가 컵 몇 개를 사용했기 때문이다. 교구장에 있는 모든 컵을 사용하여 높이높이 탑을 쌓고 싶었던 선영이의 바람이 깨져 눈물을 흘린다.


“교구장에 있는 장난감은 다 같이 사용하는 거야. 원민이도 컵이 필요해서 가져간 거니까, 컵이 더 많이 필요하면 원민이가 다 사용할 때까지 기다려줘.”


낙심한 선영이는 교사의 말에 꾹 참는다. 그 모습에 미소가 나온다. 지금 선영이는 자신의 우주를 참고 있는 것이다. 세상과 달리, 유치원에서는 참는 만큼 결과가 나온다. 꾹 참은 선영이 앞에 원민이가 다 사용하고 갖다 놓은 컵이 왔다. 싱글 생글 웃으며 선영이는 자신의 키 보다도 높은 탑을 쌓아 완성시켰다. 선영이의 모습을 보며 이렇게 금방 괜찮아질 일인데, 뭐가 그렇게 서러웠을까, 생각이 들지만, 말로 꺼내지 않는다. 그 말이 얼마나 야속한지 알기 때문이다.


열세 살 때, 책을 읽는 나를 보며 선생님이 “소원아, 너는 지금 책을 읽을 때가 아니야, 공부해서 성적을 올려야지.”라는 말 한마디에 10년 동안 책을 놓고 살았다. ‘책’은 감히 내가 함부로 읽어서는 안 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제는 법적으로 성인이라고 네가 하고 싶은 걸 다할 수 있어’라는 말을 듣는 20살이 되어서야 내가 좋아했던 책을 다시 만나게 되었다. 열세 살의 나에게 “소원아, 너는 책을 참 좋아하는구나.”라는 말을 해주었다면 나의 인생은 어떻게 바뀌었을까?


“선생님들은 대한민국의 미래를 책임지고 있습니다.”


유치원 교사가 되어 연수를 들으러 가면 빠지지 않고 나오는 말이다. 언뜻 들으면 굉장한 자부심을 느끼게 해주는 말 같지만, 이 말은 잘못되었다. 이 말에는 유아들은, 어린이들은 미래의 주인공이라는, 대한민국의 미래를 책임져야 할 의무가 있음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아들은, 어린이는 현재의 주인공이다. 미래가 아닌 오늘 행복할 자격이 있다.


유치원에 다녔던 나, 다리 수술을 했던 나, 책을 멀리했던 나, 8번의 실패를 겪은 나.

하루하루 모여 현재의 내가 되었듯, 유아들도 성인이 될 날 만을 바라보며 살지 않는다. 5살인 나, 6살인 나, 7살인 현재를 산다. 그렇기에 미래를 위한 노동력이 아닌 현재를 사는 시민이다.


고작 어린아이들에게 무슨 “시민”이라는 호칭을 붙이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시민의 사전적 정의는 '국가 사회의 일원으로서 그 나라 헌법에 의한 모든 권리와 의무를 가지는 자유민.’이다. 유아도 아동복지법을 통해 권리가 실현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유아들은 노키즈존을 없애달라는, 어린이보호구역에서 속도를 줄여달라는, 안전하게 현장체험학습을 가게 해 달라는, 영화관의 좌석은 어른들에게 맞춰져 있어 불편하다는 목소리를 낼 수 있다. 그리고 우리는 모두 같은 시민이기에 한 시민이 불편해하는 목소리를 주의 깊게 들어주어야 한다.

책 <유치원 아이들의 학급자치 이야기>는 유치원 교사들이 교실에서 유아들과 양방향적으로 소통하며 유아들이 자율성을 가지고 규칙을 만들고, 실현하고, 갈등이 생겼을 시 해결하는 과정 등을 담고 있다. 이 책을 보고 있노라면 교사로서 나는 얼마나 유아들의 의견을 들어주었을까 되돌아보게 되고, 우리 사회는 유아들의 목소리를 얼마나 암살시키고 있나 반성하게 된다. 어린 너희가 무얼 하느냐고 성인들은 매번 말한다. 하지만, 유아들은 어리기 때문에 사고가 유연하고, 세상을 많이 경험하지 않았기 때문에 오히려 본질과 진심에 가깝다.

오늘은 선영이가 걸어가다가 실수로 원민이가 놀고 있는 자동차를 발로 차게 되었다. 선영이는 미루고, 남 탓을 하는 어른들과 달리 바로 “미안해”라고 말한다. 그러자 원민이가 말한다. “괜찮아, 우리는 친구니까 안 미안해해도 돼.” 우리는 유아들의 말을 과연 얼마나 듣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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