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파르팔레 Nov 27. 2021

순서의 문제

순서의 문제     


크레마(Crema) : 에스프레소 상부에 갈색 빛을 띠는 크림 층. 커피의 향을 함유하고 있는 지방 성분을 

포함하고 있어 보다 풍부하고 강한 커피 향을 느낄 수 있다.     




내겐 오랜 버릇이 하나있는데, 커피를 마실 때 빨대로 크레마를 휘휘 젓는 것이 그것이다. 

내 동생은 가장 맛있고 진한 부분을 허비한다며 핀잔을 주지만, 내게도 나름의 논리가 있다.

진하고 고소한 부분을 골고루 저어서 커피 전체의 향과 풍미를 균등하게 끌어올린다는 게 내 지론이다. 물론, 적은 양의 크레마가 커피 전체에 녹아든다고해서 별 영향이야 없겠지만, 적어도 내게 심리적인 효과만은 확실하다.      


며칠 전엔 유달리 거품이 눅진해 보이길래 평소의 지론을 어기고 크레마를 한모금마셨는데... 참 진하고, 고소하고 맛있더라. 그렇다고 커피의 나머지 부분이 맛이 덜했던 것도 아니다. 지금까지 이 커피 맛의 정수를 허비하고 살았다니.     


어쩌면 인생도 이런 것이 아닐까? 결이 조금 다를 수 있겠지만, 우리는 가장 좋은 것을 나중으로 미루고는 한다. 커피를 마시며 곰곰이 생각해보니, 제일 멋진 순간을 먼저 보낸 이후 갈수록 맛과 멋이 덜해지는 실망을 경계하기 때문인 것 같다.     


아버지는 어린 내게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맛있는 사과와 썩은 사과를 함께 가지고 있으면 맛있는 사과를 먼저 먹는 사람이 되라고.

썩은 사과를 먼저 먹는 이는 그 사이 맛있는 사과마저 상해 결국 두 개의 썩은 사과를 먹게 되지만, 그 반대를 택한다면 맛있는 사과 하나를 온전하게 맛볼 수 있다.     


요는 결국, 좋은 것을 나중을 위해 아껴두지 않고, 가장 좋은 것이 가장 빛나고 멋진 그 순간을 즐기는 것. 

시간이 지나면 크레마는 녹아 없어지고, 사과는 썩어 제 맛을 잃는다.

잊지 말자. 인생에서 좋은 것들은 생각보다 빠르게 지나간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