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눈

-숙의의학 소설-

by 강용원


“도통 뭘 삼킬 수가 없어요. 침 맞으면 밥 먹을 수 있나요?”


낯빛이 새카맣게 죽은 ㅅㅁ이 진료소 문을 밀치면서 소리쳤다. ㅂㅇ는 곡절이 있지 싶어 침 치료를 하면서 이리저리 말문을 두드려보았다. 완강히 부인하는가 싶더니만 이내 기총소사하듯 말을 쏟아냈다.


원인은 배우자 외도. 어느 종교단체 회원 사이에 일어난 일이었다. 현장을 목격했다(고 주장하)는 그는, 맹렬한 분노와 배신감을 여전히 누그러뜨리지 않고 있었다. 3년째 부부는 똑같은 말로, 똑같이 소리치며 싸웠다. 이제는 아들딸들조차 지쳐서, 이혼하라고 말할 지경에 이르렀다. 진중하면서도 단호한 어조로 ㅂㅇ가 물었다.

“그 정도라면, 이혼하셔야 맞는 일 아닐까요?”


ㅅㅁ이 성마른 어조로 대답했다.


“경전에 이혼은 금지되어 있습니다.”


ㅂㅇ가 단호함은 빼고 진중함을 더해 다시 물었다.


“경전에 혹시 용서하라는 말씀은 없나요?”


민망한 표정을 지을 뿐, 아무 말이 없다. 그가 어떤 유형의 종교인인지 알 수 있는 장면이다. 그런 사람들이 생애 기준으로 삼는 가치는 대부분 한쪽으로 치우쳐 있기 마련이다. ㅂㅇ는 부드럽게 어조를 바꾸어 다른 질문을 던졌다.


“외도 파트너를 아신다고 하셨습니다. 그가 지닌 어떤 매력이 배우자분을 흔들었다고 생각하세요?”


의외의 질문을 받은 ㅅㅁ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이내 익숙한 가부장적 어휘 몇 가지를 나열했다. 대답하는 그 얼굴에는 이미 다음 질문을 안다고 쓰여 있었다. 자못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한 번도 정색하고 생각하거나, 문제 삼지 않았음이 분명했다. ㅂㅇ는 물론, 그가 예상하는 질문을 하지 않았다. 대신 질문에 대한 간략한 설명을 붙였다. 잠시 숨을 고른 다음, 결정적 질문 하나를 던졌다.


“사달이 나기 전까지 부부간의 성생활은 어땠습니까?”


그 성마름으로 이내 돌아왔지만, ㅅㅁ의 대답에는 어쩐지 겸연쩍은 기색이 묻어 있었다.


“20년 이상 전혀 없었습니다.”


ㅂㅇ는 역시 간단히 질문에 대한 설명을 붙였다. 다른 질문은 하지 않았다. 일주일 뒤로 숙의 예약을 잡고, ㅅㅁ은 돌아갔다. 사흘 뒤, ㅅㅁ에게서 전화가 왔다.


“선생님, 외람되지만 상담을 하지 않아도 될 듯합니다. 그 사람을 봐도 더 이상 화가 나지 않습니다. 신기해요. 밥이 잘 넘어갑니다. 정말 신기해요.”


ㅂㅇ는 싱그러운 리듬을 넣어 축하한다고 말해주었다. 달포쯤 시간이 흘렀다. ㅅㅁ이 발목을 접질렸다며 침 치료받으러 왔다. 부부간 평화와 안정이 잘 유지되고 있다는 말을 전하면서 재삼 고맙다 했다. 그들 부부가 삶을 큰 눈으로 돌아봤음이 확실했다. 무엇이 큰지를 구태여 말할 필요는 없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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