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나보조 이야기 35

-허울 대한민국 부역 서사-

by 강용원

『육두구의 저주』(26)-나는 울었다


풍경과 그 속에 거하는 영들이···생생하게 살아간다는 사실은 풍경이 자체적으로 의미를 창조할 수 있고, 자기 이야기를 들려줄(스토리텔링: 인용한 이 부연) 수 있다는 증거다. 이는 인간이 장소에 대해 문화적 구조를 만들어 내고, 거기에 자신이 창조한 의미나 신화를 부여한다는 서사와 완전히 다르다.(307쪽)

어제(2023년 4월 9일)는 제6번 국도(정확히는 국도변을 따라 만들어진 자전거도로) 남양주시 구간 일부를 걸은 데 이어, 예봉산(679m)과 예빈산(590m) 경계를 이루며 조안리에서 팔당리로 넘어가는 계곡 길을 걸었다. 20km가량 이 길을 걸으려 내가 경의·중앙선 팔당역에 내렸을 때 가장 먼저 맞닥뜨린 풍경은 한강 건너편에 우뚝 솟아 있는 어떤 산이었다.

그 산을 보자마자 왈칵 눈물이 솟구쳤다. 한순간이 아니라 화장지를 꺼내 눈물을 여러 번 닦아야 할 만큼 지속되었다. 물론 그 까닭을 정확히 말로 표현할 수는 없다. 다만 어떤 미세한 ‘촉’으로는 그제 들은 소식과 본성이 같으면서 형태가 다른 몸 반응, 이를테면 풍경과 그 속에 거하는 영들이···생생하게 느껴지는 증험처럼 다가온다.

이렇게 느끼는 이유는 생명을 드러내기에 가장 적합한 내 감각이 울음이기 때문이다. 풍경, 즉 장소 “자체가 지니는 생명력”(308쪽)이 전해질 때 가장 신속·정확한 내 반응은 우는 일일 수밖에 없다. 울기 전까지 나는 그 산을 앞에서 직접 본 적이 없다. 지도에서 본 그 ‘검단산’이리라고 추정했을 뿐. 모를 때 울음만큼 참된 스토리텔링은 없다.

내가 차후 검단산에 관해 어떤 앎을 지니게 된다고 해서 그 앎이 검단산에 대해 문화적 구조를 만들어 내고, 거기에···의미나 신화를 부여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내 울음이 그런 일을 용납하지 않는다. 먼저 자체적으로 의미를 창조할 수 있고, 자기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다는 증거를 보여준 주체가 바로 풍경, 그 산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그 ‘검단산’과 네트워킹할 때 더불어 나눌 이야기들은 제국 서사와 완전히 다르다. 제국 서사는 인간, 아니 서구 인간을 초자연적 존재로 전제하고 그들만이 의미를 창조하고 이야기할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우리 서사는 거꾸로 초인간적 자연에‘게’ 그 지위를 돌려준다. 인간 언어가 너무 형편없어서 눈물 한 방울조차 감당하지 못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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