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울 대한민국 부역 서사-
허울 대한민국 부역 서사(12): 공시적 이야기-아베의 축원⑦
교육 부역 서사 6
사실 경성제국대학과 일(본토) 제국대학 출신자보다 긴 역사와 규모를 자랑하는 집단은 미(제국) 대학 출신자다. 구한말 개화기에 이미 시작되어 식민지 시대에도 계속되었고, 광복 이후에는 압도적 대세를 형성했다. 대한민국 시대 미국 유학파는 본디 미국 유학파 후손에 일본 유학파 후손이 더해져서 특권층 부역자로 동일 정체성을 구축했다. 오늘날에는 친일·친미 구별이 불가능할 뿐 아니라 무의미하다. 이들 손아귀에 있는 대한민국 현재와 미래는 과연 무엇인가?
김종영(경희대 사회학과 교수)은 저서 <지배받는 지배자: 미국 유학과 한국 엘리트의 탄생>에서 이렇게 말한다.
“미국 박사 1호 이승만이 대통령이 된 이래 미국 박사 학위는 한국 사회에서 출세의 보증수표로 인식되고 있다. 미국 박사는 미국 박사를 알아보고, 서로 챙겨주며 네트워크를 이룩한다. 한국의 엘리트 계층에게 미국 학위는 반드시 갖추어야 할 상징자본이 되고 있다.…미국 학위는 한국 엘리트 집단의 배타적인 지위재이며, 이것이 없으면…‘이너 서클’에 들어가기 어렵고 배제되거나 소외되기 쉽다.…즉 미국 학위는 한국 기업에서 엘리트와 비엘리트를 분할하는 상징적인 징표가 되고 있다.”
한국적 학벌주의(한국 학부 학위)와 미국 학위(명성 높은 미국 연구중심대학 박사 학위) 선호 현상이 만난 “글로컬 학벌 체제”가 미국 유학파에게 한국 사회 패권을 장악하는 힘으로 작동하는 현실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저자는 미국 유학파를 ‘지배받는 지배자’ 또는 ‘트랜스내셔널 미들맨 지식인’으로 규정한다. 문화 영역을 지배하는 지식인은 스스로 지배계급에 속하면서도 경제 영역을 지배하는 자본가에게 지배당하는 모순 속에 있다는 말이다. “트랜스내셔널 미들맨 지식인은 한국 학계의 지적 식민성과 전근대성 속에서 탄생한다 (…) 트랜스 미들맨 지식인의 주요 생존 전략은 미국에서 생산된 지식을 빨리 받아들여 한국의 로컬 지식인들에게 판매하는 것이다.”
가장 중요한 문제 가운데 하나는 미국 유학파가 자기에게 유리한 상황을 입신출세에 이용만 할 뿐 지식과 실천에서 실질적 내용을 담보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처음부터 요식적 학위만 노리고 유학 가는 경우가 적지 않을 뿐만 아니라, 공부 목적으로 가도 현실에서 저들이 탁월한 연구 결과를 생산해내는 경우는 거의 없다. 여기에는 여러 요인이 작용하겠지만 원천적으로 식민지 지식인이 맞닥뜨리는 한계 탓이다. 이 결정적 어둠이 낳는 결론은 무엇인가?
요컨대 미국 유학파는 지적 식민지 상태인 대한민국에서 선한 얼굴과 악한 심장을 동시에 지닌 트릭스터(trickster) 위상을 점하나, 궁극적으로는 앵글로아메리카 제국주의를 추수하는 특권층 부역 집단이다. 이들은 “호모 사피엔스의 등급을 분류하는 기계”인 대학과 지식을 비판하거나 혁파할 어떤 이성도 의지도 없이 “학벌 인종주의로 물든 한국 사회에서 한국 엘리트들에게 최고의 지적 등급을 부여하는” 미국 대학에 충성한다. “미국에 쏠린 한국 사회 체제와 그에 기생하는 지배계급 재생산 구조”(한겨레 이재성 지자)를 맹렬히 떠받친다. 어찌 이렇게 되었는지 그 역사적 과정을 돌아본다.
개화기부터 시작된 미국 유학은 1905년까지 수적으로는 많지 않지만 이미 어떤 경향성을 띠고 있었다. 김우재(중국 하얼빈공대 교수)는 논문 <식민지 미국 유학생의 오리엔탈리즘과 한계>에서 이렇게 말한다.
“갑오개혁으로 일본에서 공부 중이던 유학생들은, 아관파천 이후 ‘역적의 손에 의해 파견된 유학생’이라는 낙인이 찍히자, 상당수가 미국으로 도주 유학을 떠난다. 이들 중 대표적인 인물이 김헌식, 이범수, 임병구, 여병현, 이하영, 안정식, 박희병, 이희철 등으로 미국 유학생 대부분은 선교사의 지원을 통해 유학을 떠날 수 있었다. 기독교계를 통한 미국 유학은 망국 시기에도 활발해져 바로 이 시기에 이승만을 비롯해 윤병구, 신흥우, 박용만, 민찬호, 정한경, 유일한 등이 유학길에 오른다.···
이들 제2기 미국 유학생들에게서 보이는 특징은, 그들 대부분이 결국 기독교로 개종했다는 사실이다. 갑오개혁의 실패 이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난 이들은 ‘신분적 주변성과 사상적 이단성으로 인해 유교전통을 비롯한 전제군주제와 양반 지배체제에 대해 매우 비판적인, 즉 전통의 질곡에 항거해 근대적 가치체계를 적극적으로 수용한 혁명적 지식인’으로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이들 중 한국 과학기술의 1세대는 없었다. 이들은 분명 조선의 전통적인 가치체계를 벗어나 있었지만, 관료로의 출세를 원하는 면에선 일본 유학생과 대동소이했다. 따라서 이들 대부분은 ‘청소년기에 미국으로 건너가 인문과학 또는 사회과학 분야에서 정규 대학 교육을 받았으며, 기독교를 매개로 미국의 문화에 적응했던 미국식 사고와 가치에 익숙한 사람들’이었다. 이승만이 미국 유학을 통해 갖게 된 꿈은 ‘한국적 기독교 국가의 건설’이었다.···
메이지 시대···일본 근대적 지식인 대부분은 종교를 교육의 일환으로 여겼으며 기독교보다 과학에 더 친화된 입장을 견지했다.···자유 민권 사상에 친화적이었으며, 영미식 민주주의에 천착했다. 즉, 제2기 조선의 미국 유학생과 비슷한 역할을 부여받았던 일본 지식인 집단이 ‘과학과 민주주의’를 선택했다면, 향후 한국의 근대화를 이끌어 나아가야 했던 창조적 소수자였던 제2기 미국 유학생 집단은 ‘기독교와 민주주의’를 선택한 셈이다.”
무슨 이야기인가. 종교가 전제된 학문은 결국 거기에 종속된다. 종교가 전제된 정치는 결국 거기에 종속된다. 모든 제도 종교는 수구적이다. 종교에 볼모 잡힌 학문도 정치도 수구로 빠져든다. 대한민국은 이 진리를 너무도 확실하게 역사와 사회에 새겨넣고 있지 않은가. 김우재 이야기를 계속해서 들어본다.
“1919년 3.1 운동 이후 조선총독부는 해외유학에 대한 개방책으로 선회했고, 당시 향학열에 불타던 국내의 학생들은 앞다퉈 사비유학을 떠나게 된다. 1920년대 일본을 제외한 해외유학생은 약 436명으로 나타나는데 이 중 대부분인 332명이 미국 유학생이었다.
미국 유학은 식민지 상황에서 일본인에 밀려 이등 시민으로 전락한 한국인들에겐 출세의 기회이자 신분 상승의 기회로 여겨졌다. 이 당시 유학생들의 전공 분포를 보면 드디어 과학기술 분야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다. 1925년의 조사표에선 여전히 사회과학 분야가 대다수이지만, 공학과 자연과학 유학생이 유의미한 숫자로 등장하기 시작하며, 이런 비율은 1929년까지 계속해서 이어진다.
1910년대 대부분 유학생이 신학과 의학에 집중되었던 것과 비교하면, 점차 실용 학문으로 유학생들의 관심이 확대되어 가기 시작한 것이다. 분명 이 시기의 미국 유학은 ‘학위나 명예를 위한 유학에서 벗어나 실력양성에 주력한 것’으로 보이지만, 여전히 인문학을 비롯한 신학과 의학 분야에 대한 선호도가 많은 것은, 식민지 조선의 시대 상황과 밀접한 관련성 때문이다. 이렇게 1900년 전후에 태어나 일본 혹은 미국으로 유학할 수 있었던 인물 중에서 한국 과학기술의 1세대라고 불릴만한 인물들이 탄생하게 된다.
하지만 미국유학생의 과학에 대한 관심은 순수할 수 없었다. 그들 대부분이 도미 이전에 이미 독실한 기독교인이었기 때문에 이들은 과학 그 자체의 역사와 의의보다 ‘종교와 과학’이라는 주제를 통해 과학에 관심을 보였다. 특히 당시 동아시아와 미국까지 휩쓸었던 사회진화론의 영향력 속에서 유학생 대부분은 진화론을 ‘민족의 실력양성’이라는 사회적 맥락에서만 다루었다.···나라를 빼앗긴 이들 유학생에게 과학기술을 통한 근대화는 너무나 먼 기대였다.
장차 대한민국을 건설하게 될, 그리고 한국 과학기술의 1세대가 될 이들 미국 유학생들은 기독교와 자유주의라는 원칙을 바탕으로 실용주의와 과학주의에 기초한 자본주의 체제를 통해 국가를 건설하는 것에 동의하는 새로운 근대화된 인종이었다. 이들보다 먼저 미국에 유학했던 윤치호의 문명관 또한 ‘문명개화 의식, 민주주의 인식, 기독교 의식, 그리고 황인종 의식’으로 집약되어 있었다. 사회진화론을 근거로 결국 친일협력의 논리로 이어지는 윤치호의 모습이 이 시기 미국 유학생 대부분에서 나타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기독교적 자유주의와 개인주의적 자본주의를 추구하는 동시에 이들은 사회주의에 강한 비판의식을 보였다. 1920년대 국내 지식인들 사이에서 사회주의 사조가 급속도로 확산될 때, 미국 유학생들은 이에 단호히 반대했고 그 근거로 내세운 논거들 역시 ‘실용주의적 과학 정신과 자본주의의 사유재산 옹호론, 기독교의 종교 도덕과 자유주의’였다.
이승만의 반공 논리 또한 미국 유학생 집단에겐 당연한 귀결이었다.···미국 유학생들은 향후 남한 자본주의국가 건설의 밑그림을 그리는 데 주도적 역할을 한 그룹이었다는 점에서 이들이 공유하던 자유주의에 기초한 반공 논리는 향후 한국에서 펼쳐질 역사적 전개에 결정적인 방향타가 될 수밖에 없었다.···”
시사저널은 현재(2020년) 국내 30대 그룹(자산총액 기준)에서 오너가 있는 기업 총수와 후계자 등의 최종 학력을 전수조사했다. 24개 그룹 중 63%인 15곳의 총수가 미국 대학 출신이었다. 하지만 실제 체감되는 비율은 훨씬 높다. 국내파 총수들은 대부분 70세 이상 고령의 1~2세대이기 때문이다.
최근 대기업 3~4세 경영이 본격화되고 있는 점을 감안할 때 이 비율은 향후 100% 가까이 올라갈 것으로 보인다. 후계 구도에 있는 ‘예비 총수’들은 물론 그 자녀들에게도 미국 유학은 필수로 여겨진다. 미국 유학파 총수·후계자 중 경영학 석사 출신이 상대적으로 많지만, 학교는 겹치는 곳 없이 골고루 분포돼 있다. 어느 대학이냐보다 미국에서 공부한다는 것 자체에 의미를 두는 것으로 풀이된다.···
재벌 총수와 후계자들이 너도나도 미국 유학길에 나서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경상 대한상공회의소 경제조사본부장은 “과거와 달라진 환경에서 경영 수업을 제대로 받으려다 보니 비즈니스 스쿨 쪽으로 특화된 미국을 선택하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 본부장은 “기업 규모가 커지면서 예전처럼 ‘하면 된다’ 정신이나 주먹구구식으로 경영해선 안 된다. 그렇기에 시스템을 제대로 갖춰 큰 기업을 운영하는 미국의 흐름을 배우고 오려는 것”이라며 “대기업들이 (한국 특유의) 오너 경영의 장점은 어느 정도 가져가면서 미국식 선진 경영을 접목하는 과정에 있다”고 덧붙였다.···
유학은 재벌가 교육의 오래된 특징이다. 해방 전후 극심한 혼란기에 대기업을 일군 창업주들은 외국과의 교류, 선진 문물 도입 등을 강조 또 강조했다.···이는 자녀 교육에도 적용됐다. 2세대부터 상당수가 경영에 본격적으로 참여하기 전 미국, 일본 등에서 수학했다.
오너 2세대 시대가 저물어가고 한국이 세계 10위권 경제 대국이 된 지금도 재벌가 자제들의 유학은 활발하다. 아예 선택이 아닌 필수 요건이 됐다. 일본 유학은 거의 자취를 감췄고 미국으로 집중됐다. 더 나아가 요즘 트렌드는 조기 도미(渡美)다. 3세까지 주로 한국에서 중·고등·대학교 과정을 마친 후 미국으로 나갔다면 4세 이후론 초등학교만 졸업하고 한국을 떠나는 사례가 부쩍 늘었다.···
오세형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재벌개혁본부 팀장은 “(유학을 통해) 재벌 체제의 장점과 미국의 선진 경영 시스템을 접목하고 있다는 말은 어불성설”이라며 “대기업의 행태를 보면 정작 미국에서 경영학이나 경제학의 본질, 자본주의 원칙 등을 배워 오는 총수는 없는 듯하다”고 꼬집었다. 홍성추 《재벌 3세》 저자도 3세 이후의 재벌가 자제들을 가리켜 “온갖 특혜를 누리며 살기만 했고 기업 경영과는 거리를 둔 채 유학 등의 시간을 거치며 한국의 사회·경제 전반에 대해 익숙지 않다”며 “입사 후 바로 임원이 되고 차후에 오너가 될 이들에게 바른말을 해 줄 사람은 없다고 봐야 한다”고 했다. (출처 : 시사저널(http://www.sisajournal.com))
미국 유학생 서사 결정판이다. 김종영을 다시 인용한다. “학벌 인종주의로 물든 한국 사회에서 한국 엘리트들에게 최고의 지적 등급을 부여하는 곳은 미국 대학이다.” 이와 다른 어떤 말로 대한민국 교육 부역 서사 고갱이를 표현할 수 있을까. 이를 어떻게 해석하고 받아들여야 할까. 내 경우 김종영식 문제의식에 전적으로 동의하기는 어렵다. 그 또한 제국 논리 안에 있기 때문이다. 본질주의라는 말을 너무 쉽게 내팽개치지 말고 우리 공동체 생태적 실재를 옹글게 담을 고유성을 어떻게 찾아 보전하고 육성할지 곡진하게 고민해야 한다. 미국에 있다면 한국엔들 왜 없겠는가 말이다. 현재는 물론 미래에 가장 결정적인 문제, 그 교육 서사를 새로이 써 나아가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