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울 대한민국 부역 서사-
허울 대한민국 부역 서사(32): 공시적 이야기-아베의 축원㉖
끗빨 패거리(정관계) 부역 서사 3
군대와 경찰 수뇌부 부역 풍경을 더 세밀하게 들여다보면 우리 생각은 그만 집중력을 잃고 만다. 오마이뉴스 2020.8.20. 기사를 인용한다.
“대한민국 초대 육군참모총장은 국가 공인 친일파 이응준이다. 일제강점기 일본군 장교로 무려 30여 년을 복무한 인사다. 당시로서는 매우 드물게 조선 출신임에도 일본군 대좌(대령)까지 올랐다. 이런 인물이 해방 후 우리 군의 중추가 돼, 일본군과 만주군 출신 인사들이 대한민국 국군의 요직을 차지하는 데 마중물 역할을 했다.
해방 후 미군정과 긴밀히 접촉한 이응준은 미군정청 국방사령부 국방사령관 고문으로 위촉됐다. 이후 김백일, 백선엽, 채병덕 등 일본군 및 만주군 출신 군인들을 미군정이 운영하는 군사영어학교에 입학하도록 주선했다. 군사영어학교를 나온 이들은 국군의 전신인 국방경비대에 입대해 국군의 핵심이 된다. 이응준은 1948년 12월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첫 번째 육군참모총장이 됐다. 이 때문에 국립서울현충원 애국지사 묘역 머리맡에 있는 장군 제2묘역에 묻힌 이응준의 묘에는 ‘군의 아버지’라는 글이 새겨졌다.
하지만 이응준은 일제강점기 내내 누구보다도 앞장서서 일제를 위해 헌신한 인물이다. 1941년 일본군 육군 대좌로 승진한 이응준은 후방에서 일제의 침략 전쟁을 지원하며 여러 차례 ‘조선의 청년들이 일본 군인이 돼 전쟁터로 나가 목숨을 바쳐 천황에게 충성을 다해야 한다’라고 공개적으로 발언했다. 2009년 대통령소속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는 이응준을 국가 공인 친일파로 선정해 공식 보고서에 올렸다. 같은 해 발간된 친일인명사전에도 이응준의 이름은 등재됐다.
3대 육군참모총장 신태영과 6대 이종찬, 7대 및 10대 백선엽 역시 모두 이응준과 마찬가지로 대통령소속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에서 공인한 친일파이자 민족문제연구소에서 발간한 친일인명사전 등재된 인물들이다.
신태영은 아들 신응균과 함께 부자가 국가 공인 친일파로 선정된 인물이다. 이응준과 마찬가지로 일본 육사를 나와 시베리아 간섭전쟁과 태평양전쟁에 참전해 일제 부역했다. 김원웅 광복회장이 지난 15일 광복절 기념사에서 ‘조선 청년의 꿈은 천황폐하를 위해 목숨을 바치고 야스쿠니신사에 묻혀 신이 되는 것’이라고 말한 주인공이 바로 신태영이다. 그는 3대 육군참모총장을 거쳐 4대 국방부장관을 역임했다. 그의 묘 역시 국립서울현충원 애국지사 묘역 머리맡에 있다.
6대 참모총장 이종찬은 할아버지 이하영, 아버지 이규원과 함께 3대가 국가 공인 친일파로 선정된 인물이다. 1937년 중일전쟁에 참전해 상하이 방면에서 크게 활약했다. 이러한 공적을 인정받아 일제는 일제강점기 조선인 출신 일본군 장교 중 최초로 최고등급인 금치훈장을 이종찬에게 수여했다. 당시 중일전쟁의 여파로 중국 상하이, 항저우, 난징 등 지역에서 활동하던 우리 독립운동가들은 일제의 총검을 피해 중국 내륙으로 피난길에 올라야 했다. 해방 후 이종찬 역시 육군참모총장을 거쳐 국방부장관을 역임했다. 서울 현충원 장군 제3묘역 최상단에 그 묘가 있다.
지난 7월 10일 사망해 대전현충원에 안장된 백선엽 역시 정부에서 공인한 친일파다. 대통령소속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공식 보고서에는 백선엽이 ‘1941년부터 1945년 일본 패전 시까지 일제의 실질적 식민지였던 만주국군 장교로서 침략 전쟁에 협력했고, 특히 1943년부터 1945년까지 항일세력을 무력 탄압하는 조선인 특수부대인 간도특설대 장교로서 일제의 침략 전쟁에 적극 협력했다’라고 기록됐다.
이외에도 2대 참모총장 채병덕과 5대 정일권, 9대 이형근은 모두 민족문제연구소가 발간한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된 인물들이다. 태평양전쟁 당시 만주 전선과 후방에서 일군과 만군에 소속돼 직간접적으로 독립군 토벌에 역할을 한 일본군 장교들이었다.
대한민국 11대 육군참모총장 송요찬은 일제강점기 지원병 출신으로 일본군 오장(부사관)으로 복무한 인물이다. 일본군으로 복무 당시 그는 전선에 나가는 대신 훈련소에서 조교 등으로 복무하며 조선 출신 청년들을 전선으로 내보내는 데 일조했다. 해방 후 군사영어학교 1기로 졸업했다. 송요찬은 제주4.3 진압군 지휘관으로 군의 중심에 자리 잡았다. 육군참모총장과 국방부장관을 역임했다.
12대 최영희, 14대 장도영, 15대 김종오, 16대 민기식, 17대 김용배, 18대 김계원, 19대 서종철 등은 모두 학병 출신으로 1944년~1945년 태평양전쟁 후반부 일본군 육군 소위로 임관했다. 그러나 전선에 나가 독립군을 토벌했다는 공식 기록은 없다.
13대 최경록은 11대 송요찬과 마찬가지로 일본군에 지원병으로 자원입대한 인물이다. 하사관 후보생을 거쳐 일본 육군 예비사관학교에 입학했다. 그러나 육사 입학을 위해 대기하던 중 부상당해 일본군 장교가 되지 못했다. 21대 이세호 역시 1944년 일본 육군항공대 간부후보생으로 지원해 일본에서 교육받던 중 종전을 맞았다. 그래서 전선에서 활약하지 못했다. 20대 육군참모총장 출신 노재현은 일제강점기 후반부 행적이 다소 묘연한 상태다. 일부 언론에서 ‘일본군 경력이 전혀 없다’라고 강조했지만, 일본 육사를 거쳐 일본군 소위를 역임했다는 기록 역시 발견되고 있다. 다만 전선에서 활약했다는 기록은 찾을 수 없는 상태다.
광복회 관계자는 19일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1대부터 21대 대한민국 육군 참모총장들은 모두 일본군과 만주군에 소속돼 활약한 인물들’이라면서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군과 만주군의 존재 목적은 일왕에 충성 맹세를 한 뒤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광복군에 맞서서 명백하게 침략 전쟁을 수행했던 군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친일파라는 범주를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일본군과 만주군에 부역한 친일 행적에 관한 만큼은 1대부터 21대까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라고 말했다.”
국민의 군대가 국민이 세운 정부를 쿠데타로 무너뜨리고, 독재자에 맞서 일어선 국민을 향해 총부리를 겨누는 일이 어떻게 가능했는지 이보다 더 명쾌하게 증명할 수는 없다. 황군 출신이 만들고 황군 출신이 이끄는 군대가 대한민국 군대다. 지금은 다른가? 무슨. 이런 체제는 물론 미군정이 만들어 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