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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용원 Mar 19. 2024

나나보조 이야기 185

-허울 대한민국 부역 서사-

팡이실이 숙의 서사 9    


      

나나 되니까 망정이지  

   

나는 전반적 판단 능력이 16살에도 못 미치는 32살짜리 1-7이다. 내 상태를 이렇게 진단한 0 선생과 나는 숙의 치유를 8년간, 400회에 걸쳐 진행해 왔다. 8년간이라니. 선뜻 공감하는 사람은 많지 않으리라. 0 선생이 스스로 무능한지 의심하실 만큼 나는 지독한 성장 지체 상태다. 3%가량 된다는-0 선생의 상징적 언급- 32살 어른 자아가 생각하기에도 그렇다. 그런데도 숙의 치유를 계속하는 까닭은 둘이다. 하나, 이 정도라도 자란 일이 지난 8년의 성과이기 때문에 희망을 버릴 수 없다. 둘, 이 상태로 즐겁게 살아가는 일을 내가 거부한다. 앞으로 어찌 될지 나는 모른다. 뭐, 0 선생이라고 알겠나. 나는 끊임없이 짜증 내며, 0 선생은 끝없이 견뎌내며 걸을 따름이다. 다른 선택을 고려하지 않는다.  

    

처음 0 선생을 찾아갔을 때, 내 생각은 안이하면서도 단순했다. 이미 초등학교 시절부터 시작된 사회부적응 상태가 대학 생활 후반부에 접어들면서 임계점에 도달했다는 느낌을 어떻게든 해결하고 싶었다. 졸업, 취직, 결혼으로 이어지는 과제 앞에서 위축되는 내 삶을 어떤 식으로든 변화시키고 싶었다. 빨리. 각 잡고. 0 선생과 숙의를 해나가면서 나는 내밀하고 모진 내 문제를 아주 천천히 알아차리기 시작했다.   

    

내가 겪는 고통은 예컨대 이런 식이다. 처음 만난 사람이 ‘안녕하세요?’ 인사를 건넨다. 그 인사를 받을 때 대체 어떤 표정으로, 무슨 말로 대응해야 하는지 알 수 없어서 머릿속이 하얘진다. 그냥 똑같이 ‘안녕하세요?’ 하면 될 일인데 뭐가 문제냐, 반응하는 사람은 건강한 상태다. 그래서 이 고통이 얼마나 신랄한 것인지, 죽었다 깨어나도 알 수 없다. 죽었다 깨어나도 알 수 없는 사람 중에 내 부모가 있다. 내 부모는 시종 ‘얘가 대체 왜 이래?’라고 반응한다.    

 

나는 이른바 조산아였다. 안타까움과 애틋함을 보상하려는 심리에선가 부모는 이후 나를 발에 먼지 하나 묻히지 않고 키웠다. 그 결과 나는 초등학교 1학년부터 또래들과 잘 교감·소통하지 못했다. 놀림과 따돌림은 일상이 되어버렸다. 부모는 사태가 심각하다는 사실을 거의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다. 심지어 본인들이 그런 상황을 심화시키기도 했다. 어머니는 내 성장 지체 상태를 비난하면서 수시로 자긍심을 공격했다. 아버지는 어머니에게 가하는 폭력을 통해 나를 공포·불안으로 몰아넣었다.  

    

사람과 일 앞에서 내가 느끼는 두려움은 커져만 갔다. 대학 시절에도 친구 하나 변변히 사귀지 못했다. 조별 활동 때 발표 하나 만족스럽게 한 적이 없었다. 단순노동을 하는 아르바이트조차 번번이 잘렸다. 이런 일들을 겪으면서 나는 깊은 절망감에 빠져들었다. 죽을 때까지 그 늪에서 빠져나올 수 없지 않을까? 이대로 더는 안 되겠다, 싶은 어느 날 0 선생을 찾아갔다.  


         

정직하게 말하자면, 처음에 나는 1-7이 지닌 문제 핵심을 간파하지 못했다. 사회불안과 우울증이 결합한 형태로 보고 트라우마 에피소드를 중심으로 평범한 ‘상담’을 진행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이야기 성격과 핵심은 바뀌었다. 내가 그 가정과 사회생활 자체를 숙의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고 판단한 이유다. 한 사람을 보통 어른으로 성장시키기 위해 삶 전반에 관여하여 양육하는 목표를 잡은 최초 사례가 되었다.   


예상대로 그 부모는 숙의 치유를 비난하고 방해했다. 아버지는 내게 심한 모욕을 가하기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자신들이 원하는 바와 전혀 다른 방향으로 그가 변해가는 모습을 목격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호칭, 어투, 자세를 바꾼 새로운 대화를 마주하면서 당혹스러워했을 광경이 눈에 선하다. 그는 그런 대화로 부모와 성장 전쟁을 시작했다. 집을 나와 친척 집에서 살다가 마침내 원룸을 얻어 반쯤 독립했다. 아직 경제적으로 도움을 받기는 하지만, 내게 내는 치료비는 그 스스로 번 돈으로 지급했다. 이 모든 변화 과정의 배후 조종을 내가 한다고 생각한 부모는 원래 상태로 돌아오기를 종용했다. 그가 나와 무엇을 숙의하며, 어떤 과정을 거쳐 어디를 향해 삶을 바꿔 가는지 알지 못하기 때문에 부모는 ‘왜 이 고생을 하느냐?’고 말했다.   

   

그가 왜 이 고생을 하고 있을까? 그가 하는 이 고생이란 무엇일까? 부모는 그가 하는 일이 무엇이기에 고생이라 낙인찍을까? 그가 어떻게 살아갈지 정하지 못한 채 발끝을 태우는 초조감에 한창 시달릴 때, 내가 물었다. 

 

“뭘 가장 잘한다고 생각하나요? 생업으로 삼아 혼신 다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요?”  

   

물론 그는 대답하지 못했다. 2주일 정도 시간을 두며 나눈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그가 꺼내든 카드는 시였다. 나는 시를 써보라고 말했다. 그 뒤, 그 삶은 시 쓰기, 그리고 시 쓰기 위해 먹고살기, 이 두 축을 기조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부모 생각에는 확실히 고생 맞다. 내가 이따금 그에게 짓궂게, 아니 진지하게 묻곤 했다.   

  

“고생스러운데 지금이라도 돌아가면 어떨까요?”  

   

그는 대뜸 고개를 저었다. 그는 이름 석자 대면, 시깨나 읽은 사람 누구나 아는 중견 시인 제자로 열심히 시를 공부했다. 여러 사람 앞에서 칭찬받는 데까지 도달했다. 또한 그는 동네 학원에서 중고생을 가르쳤다. 이루 다 말할 수 없이 신산한 해고의 역정을 견디며 나름대로 자리를 잡아갔다. 불과 얼마 전까지 이 두 가지 모두 꿈에서라도 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대체 어떻게 이런 변화가 가능했을까?    

 

1-7과 내가 그동안 심혈을 기울여 숙의하고 훈련해 온 바는 두 가지였다. 하나, 지금 자기 현실을 있는 그대로 해석·평가 없이 느끼고 알아차리고 받아들이기. 둘, 자기 상태를 있는 그대로 펼쳐내 표현하기.    

  

지금 자기 현실을 있는 그대로 해석·평가 없이 느끼고 알아차리고 받아들이기는 숙의 치유 기반이다. ‘있는 그대로’는 순수사실(pure fact)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순수사실이라고 기억하고 이해하는 심리적 실재로 재구성된 사실을 말한다. 흔히 말하는 대안적(alternative) 사실을 포함한다. ‘해석·평가 없이’는 자신한테 현재 일어나고 있는 어둠 사건에 긍정이든 부정이든 어떤 의미도 가치도 부여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의미·가치 부여는 현실을 억압함으로써 소외시키거나, 증폭시킴으로써 집착하게 한다. 소외도 집착도 모두 왜곡된 관계 맺기다. 그냥 말갛게 ‘그렇구나!’ 함으로써 자기 삶 일부로 품어 안는 일이다. 이를테면 긍정·부정을 넘어선 대(大) 긍정인 셈. 대 긍정에 이르면 허위 기준이 사라진다. 허위 기준이 사라지면 수치심, 죄책감, 열패감, 예기 불안이 잦아든다.  

    

이 작업은 사소해 보이지만 실로 어려웠다. 특히 일상에서 사람과 만나 대화하고 감정을 나누고 일하는 데서 그는 엄청나게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부모, 형제, 친구, 직장 상사, 심지어 분식집 아주머니조차 그에게는 경직과 격분, 후회 대상이었다. 나는 그와 인사 기본예절, 어휘 선택과 수사법을 포함한 대화·논쟁 기술···심지어 부의금 액수 문제까지 광범위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밖에 없었다.  

    

다음으로 자기 상태를 있는 그대로 펼쳐내 표현하기다. 이는 자기를 제힘으로 치유하는 매우 근본적이고 중대한 작업이다. 있는 그대로 인정하기에 근거한 일임은 물론이다. 나와 숙의하는 과정에는 시 공부 이야기가 포함된다. 여기서 어휘, 논리, 서정, 서사 모두를 숙의한다. 나는 시인이 아니다. 비평가도 아니다. 오랫동안 시와 비평을 읽어온 독자로서 나 또한 진지하게 공부해 가며 기본이 되는 정도에 국한해서 도움을 준다. 예술적 표현이 곧 치료적 표현이며 치료적 표현이 곧 정확한 표현임을 깨달아 가는 과정이다. 정확한 표현은 억압을 풀어내고, 격정을 감정으로 녹여, 자기 고고학으로 보존하는 행위다.  

    

그렇게 1-7 자라가고 있었다. 갈 길이 아직 많이 남았으나 분명한 희망 징조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에게는 남다른 특징이 있었다. 병적인 상태에 깊이 침윤해 있을 때, 어머니 얼굴을 덮어쓴다는 사실이다. 특히 입술의 크기와 형태, 말할 때 균형이 깨지는 모양은 놀라울 정도로 똑같았다. 두 시간가량 숙의하고 나면 제 얼굴로 돌아왔다. 그러기를 긴 시간 동안 반복하다가 어느 순간부터 그에게서 어머니 얼굴이 더는 나타나지 않았다. 뭔가 크게 한고비 넘겼다고 생각한 바로 그때 더 깊은 어둠이 영악한 얼굴을 비웃음과 함께 들이밀었다. 


          

나는 0 선생과 숙의하면서 내가 범한 치명적 실수를 긴 시간 동안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그 오해에 편승해 나는 변화했다. 그 변화를 나는 핵심적 변화라고 믿었다. 이 잘못된 믿음은 나 자신을 속이고, 결과적으로 0 선생마저 속였다. 나를 속이고 0 선생도 속인 것은, 아뿔싸! 다름 아닌 시였다. 시, 


시는 내게 무엇인가? 나는 시를 내 슬픔과 아픔을 드러내는 증상, 또는 실재를 펼쳐 보임으로써 나를 치료하고 성숙시키는 유일한 길이라고 생각한다(고 믿어왔다). 이 인식은 0 선생과 공유된 바라고 생각한다(고 믿어왔다). 시간이 지나면서 내 생각이 실은 근거 없는 믿음이었음이 드러났다. 단도직입으로 말하면 나는 시를 내가 특별한 사람, 0 선생 표현대로라면 ‘천손(天孫)’임을 증명하는 도구로 이용했다. 0 선생은 두 가지 증거를 제시했다. 하나, 시를 내가 어떻게 버림받아 약해진 사람인지 알리는 메시지로 삼고자 시도했다는 점. 둘, 시 쓰기와 생활 노동을 분리하고 나는 본디 타고난 시인인데 수모를 당해가며 노동한다는 생각을 고수했다는 점. 그 결과, 시 쓸 때는 징징댔고 노동할 때는 툴툴댔다. 이 모순된 태도를 0 선생은 ‘(빼앗겨서) 무력함에 떨어진 천손’ 신화를 지키는 야누스라고 이름했다. 이 야누스를 확인한 0 선생은 숙의 논리 전체를 전복시켰다.  

 

       

숙의 치유에서 내가 기본적으로 주의를 기울이는 바는 환자 심리 실재다. 현실 실재와 괴리가 있음을 처음부터 전제하고 인지 교정을 강요하지 않는다. 적절한 시점과 계기가 있다. 1-7 경우는 자기 정신과 사회적 기술에 치명적 결함을 일으킨 요인이라고 주장한 내용이 계속 바뀌었다. 그 주장을 나는 해석·평가하지 않고 모두 받아들였다. 그 주장에 터 잡아 1-7이 원하는 해결 방식에 동행했다. 시간이 지나가면서 그는 길을 잘못 들었다는 느낌을 받기 시작했다. 그 느낌을 분명히 확인하고 나서 나는 그에게 물었다.  

   

“1-7씨! 이 길 맞나요?”  

   

그는 주저하면서도 천천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나는 처음부터 하나씩 되짚어갔다. 그가 지목한 수탈 사건을 일일이 점검했다. 심리 실재와 현실 실재의 괴리를 그 스스로 인식하도록 했다. 괴리에는 과장과 편향, 그리고 오해 또는 조작이 포함되어 있다. 가능한 모든 사항을 추적해 피해의식을 줄이거나 없애는 쪽으로 숙의 성격을 조정했다. 이렇게 되기까지 4~5년 시간이 필요했다. 처음부터 이렇게 했다면 그는 부모와 짜고 친다며 뛰쳐나갔음이 틀림없다. 

     

1-7이 지닌 피해의식은 기억처럼 단단했다. 마치 본능처럼 작동했다. 나도 그도 감성과 이성, 그리고 의지를 총동원해 숙의를 이어갔다. 부질없다는 생각이 수시로 달려들었지만, 작은 성취와 평안을 밑절미 삼아 끈덕지게 걸음을 계속했다. 전진을 가로막는 치명적 문제는 그가 마치 처음 왔을 때처럼 홀랑 뒤집혀서 원점으로 돌아가는 격분 행동을 규칙적으로 반복하는 일이었다. 나는 이를 다만 훈습 차원의 문제라고 생각해 왔는데 어느 순간 아닐지도 모른다는 의구심이 들었다. 피해의식과 피해 사실-엄밀히는 기억- 인과관계 또는 선후관계가 뒤바뀌지 않았을까?    

 

나는 1-7의 중요한 심리적 결절 지점을 톺았다. 그가 격분 행동을 하는 지점은 대부분 생활 노동과 관련되어 있었다. 거기서 갈등과 충돌이 일어날 때 그는 수모를 당했다고 평가했다. 수모를 당하면서도 살아야 할 이유를 모르겠다는 생각에 사로잡히는 순간, 그는 다른 모든 감정과 미학과 가치를 단박에 때려 부수어버렸다. 언제나 똑같은 말, 표정, 눈물, 제스처로 그 격분 행동을 표현했다. 그것은 말하자면 “제의”였다. 제의 근거는 경전이다. 경전 연원은 신화다. 신화를 찾아 나섰다. 

    

나는 특정 맥락을 누락시킨 상태에서 1-7에게 물었다.   

   

“당신은 어떤 사람인가요?”   

  

쭉 그렇게 생각해 왔음에도 마치 처음이라는 듯이 그는 느릿느릿 말했다.  

   

“저는 자존심 상하는 걸 젤 싫어하는 사람입니다.”    

 

유도신문에 넘어간 사람에게라도 하듯 나는 정답 같으면서도 질문인 한마디를 던졌다. 

    

“천손?”   

  

갸우뚱도 잠시, 이내 그는 배시시 웃었다. 그 웃음을 보는 순간 나는 판단이 섰다. 아, 1-7은 천손 신화로 일거수일투족을 구성하며 살고 있구나. ‘천손 지위를 무고히 빼앗겨 무력한 처지에 빠진 나를 들어 올려 복권하라.’ 그 메시지이자 실천이다. 그가 평범한 사람들과 소통할 수 없는 까닭은 천손을 증명하기 위해 특별한 프로세스를 구사하며 살든가, 이게 어디냐 감지덕지하며 살든가, 하지 않아서다. 그는 다만 천손이라는 당위와 무능이라는 현실 사이를 희생 신화로 메울 뿐이다. 지난 수십 년 동안 그는 자신이 희생자라는 물질적 증거, 아니 책임 뒤집어씌울 희생양을 찾아 헤맸다. 그런 천손 신화를 검푸른 물에서 꺼내 볕에 말릴 때가 왔다. 신화는 볕 아래서 평범한 사람이 쓰는 역사가 되어야 하니까.   


        

0 선생은 내게 마지막이라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신화 속 희생양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설혹 있다고 해도 1-7씨를 구원하지 못해요. 구원에는 현실 삶이 없거든요. 감지덕지는 모독일 테고. 그럼 특별한 프로세스를 구사하는 길만 앞에 있습니다. 지난 시간 그토록 시달려 온 내면 불화에서 벗어나 깃발 날리며 살아갈 특별한 프로세스를 이제 펼쳐보시지요.   

  

아, 난감하다. 잿빛 격려인가, 장밋빛 저주인가. 내가 이 말 하나 들으려고 허위단심 허덕지덕 8년을 달려왔던가. 순간 어지럼증이 일어난다: “특별한 프로세스”란 대체 뭣에 쓰는 물건인고? 머릿속이 뽀얘진다. 여태껏 나는 이 말 언저리를 머리로 떠돌았을 뿐인가. 남이 하는 그 말을 흉내 냈을 따름인가. 그 물건을 들고 내가 써먹을 수는 있는가. 온 영혼이 부글부글 끓는다 싶더니 팽팽하게 부풀어 오른다. 터진다 싶은 바로 그 찰나 0 선생이 언젠가 내게 던졌던 낯선 말 한마디가 비수 되어 날아든다.    

  

“전반적 사회관계 장애”   

  

꽝! 기어이 터졌다. 물경 32년밖에 되지 않는다. 험험, 나나 되니까 망정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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