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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용원 Mar 20. 2024

나나보조 이야기 186

-허울 대한민국 부역 서사-

팡이실이 숙의 서사 10   


       

하소연과 넋두리 사이  

   

나는 진료가 끝나 한의원 문을 안으로 닫고 막 돌아서는 숙의 치유자 0을 본다. 필사적으로 달려가 쿵쿵 두드린다. 예상대로 그는 문을 연다. 가슴 두근거림을 호소하며 딱 한 번 침 맞았던 나를 기억한 그가 내 어둡고 다급한 표정을 한눈에 알아본다. 그는 나를 안으로 맞아들이고 침 치료를 위해 잠시 누워 기다리게 한다. 잠시 뒤, 그가 고요히 내 옆에 앉는다. 무엇에 홀린 듯 나는 다급히 입을 연다.   

  

“선생님, 저 하소연 좀 해도 되죠?”


문맥도 없이, 대중도 없이, 살아온 이야기를 나는 폭포처럼 쏟아내기 시작한다. 들을수록 답답하고 대책 없는 사연들을 나는 앞뒤 뒤섞어 중구난방으로 펄떡펄떡 게워 낸다. 어느 순간 나는 꺽꺽 울음을 토해낸다. 두 주먹을 불끈 쥔다. 가슴을 두드리다 못해 쥐어뜯는다. 사방팔방 팔을 휘두른다. 발버둥을 친다. 격심한 몸부림이 쓰디쓴 체취를 낭자하게 흩뿌린다.   

  

0은 그동안 수없이 많은 사람의 아픈 말을 들었으리라. 눈물을 보았으리라. 손을 잡았으리라. 하지만 내가 말하는 동안, 우는 동안, 끝내 내 손을 잡지 않았다. 손을 잡으면 그만하라는 메시지가 될 수밖에 없는 지경이었기 때문이었을 테다. 그저 못 박힌 듯 꼼짝하지 않고 내 퍼덕임에 주의·집중할 따름이었다. 그러는 40분 남짓한 시간 동안, 필경 그는 작두날 위에 선 만신이었다. 적어도 내겐 그리 보였다.


드디어 긴 한숨과 함께 날뛰던 내 언어와 몸짓과 울음이 한목에 털썩 주저앉았다. 나는 한참을 죽은 듯 숨소리조차 안 내고 있다가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죄송합니다.” 

     

0은 무어라 달리 할 말을 찾지 못하는 듯했다. 이해도 공감도 접근도 해결도 절연된 무력한 타인임이 분명하기 때문이었으리라. 이제-여기가 숙의 파트너 시공이던가. 바로 그때, 그가 뚜벅 내 말을 고대로 따라 했다. 

   

“죄송합니다.”  

    

이 말을 듣는 순간 내 하소연과 만신 넋두리 사이 경계선이 무너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와르릉! 경이로 젖은 내 영혼에 그는 보송한 꽃 한 송이를 놓아주었다. 

     

“소리치고 울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왜 이 말이 그리도 아뜩했는지 여태껏 모른다. 그 시각 이후 나는 0한테서 달아나 가뭇없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책만 묵묵히 돌아왔다 

    

어머니는 핏덩이인 나를 두고 홀연히 사라졌다. 나는 할머니와 고모 손에 크면서 모질게 학대받았다. 학령기·청소년기 학교생활이 제대로 될 리 없었다. 대학 입학을 포기하고 공장에 들어갔다. 거기서 나는 우연히 사회정치 문제에 눈을 뜨게 되었다. 체계적인 지식 습득 없이 울분과 열정으로 뛰어든 노동운동과 사회운동 판에서 무수한 시행착오를 겪으며 상처받았다. 나중에는 공산주의자로 몰려 고초를 당하기까지 했다.   

   

이런 삶의 고비마다 술이 있었다. 술은 단순한 알코올이 아니었다. 술은 내 ‘어머니’였다. 술은 광기를 길어 올리는 악마의 우물이었다. 그 술에 빠져 상상 불허 온갖 불상사를 일으켰다. 번번이 유치장 신세를 졌다. 새로운 삶을 살지 않으면 안 되겠다고 결심하고 나는 0에게 숙의 치유를 청했다.   


        

나는 2-2가 대화하는데 능숙하지 않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대뜸 알아차릴 수 있었다. 문맥이 사라지는가 하면 조리에 누수 현상이 수시로 일어났다. 무엇보다 타인 말에 집중하는 힘이 현저히 떨어져 자꾸 자기 세계 속으로 되돌아가곤 했다. 말 밑바닥을 흐르는 진지함과 선함조차 사회적 맥락을 떠나있기 일쑤였다.   

  

나는 그 삶 전경을 염두에 두고 감정과 상처 동선을 이어갔다. 그가 순간에 알아들을 수 있도록 간단하게 정리해 주었다. 그가 단박에 실천할 수 있도록 명료하게 조언해 주었다. 나름대로 유의미한 숙의가 이루어지고 있다고 생각하던 어느 날, 아무런 말도 없이 그가 나타나지 않았다. 전화도 받지 않았다. 치료비 지급을 뒤로 미루고, 책을 빌려 간 상태였다. 얼마간 기다리다가 나는 그에게 편지를 썼다.     


“어찌 지내십니까? 상담을 왜 오시지 않는지 묻지 않겠습니다. 그럴 만한 곡절이 있으리라 믿습니다. 지급하지 않으신 상담치료비를 청구하지도 않겠습니다. 그럴 만한 곡절이 있으리라 믿습니다. 부디 책만은 돌려주셨으면 합니다. 저자 친필 서명이 들어 있는 소중한 책이기 때문입니다. 평화로운 나날이길 빕니다.”  

   

며칠 뒤, 책만 묵묵히 돌아왔다. 

     

[후일담] 5년이 지난 어느 날, 홀연히 그가 나타나 상담치료비를 지급했다. 추락 사고로 몸을 많이 다쳤다면서 침 치료받더니 다시 홀연히 발길을 끊었다. 나는 그 뒷모습을 묵묵히 상상해 보았다.  


         

병 주고 병 주고 

    

가족은 불가사의다. 사랑과 학대가 동의어인 기괴한 에덴동산이다. 모든 선의와 모든 죄악이 거기서 발원한다. 무조건인 자비를 행하던 손으로 무자비한 범죄를 저질러도 모순을 구성하지 않는 소도다. 이 역설은 사냥꾼이 되는 쪽과 사냥감이 되는 쪽이 비대칭 대칭구조를 이룸으로써 작동한다; 대를 물려 확대 재생산된다. 자비 가족이 인애한 이상으로 무자비 가족은 잔혹하다.    


평상시 온갖 짧은소리나 작은 동작을 되풀이한다. 심하면 동물 울음소리를 내거나, 크게 정면공격을 당할 때 두 팔을 엇갈려 위로 올리는 방어 동작을 취한다. 이들이 0을 찾아온 10대 초반 2-3이 나타내는 틱 증상이다. 부모는 길고 격렬한 싸움 끝에 소송을 거쳐 이혼했다. 부모 중 일방은 소송에 그를 끌어들였다. 이혼 뒤 그는 양육권을 가져간 쪽에서 살 수밖에 없었다. 그에게 가해지는 폭력은 갈수록 심해졌다. 특히 틱 증상을 보일 때마다 ‘병신 짓’이라며 모질게 욕하고 때렸다. 아이가 이쪽저쪽을 오가며 느끼는 불안과 슬픔에 아랑곳하지 않고 부모는 신경전을 벌였다. 한쪽은 좀 더 폭력적이고, 다른 한쪽은 좀 더 포용적인 점에서 둘은 분명히 달랐지만, 정서적 안정과 행복감을 그에게 능동적으로 제공해 주지 못한다는 점에서는 아무런 차이가 없었다. 그는 정신적으로 하루하루 말라비틀어져 갔다.   

   

2-3이 일으키는 불안은 집에 국한되지 않았다. 학교에서도 상황은 같았다. 부모 욕하는 인터넷 동우회로 패거리를 이룬 아이들도 거대한 폭력이었다. 교사 또한 부모에 버금가는 폭력이었다. 그는 곳곳에서 밀어닥치는 폭력으로 말미암아 단 한 순간도 안식을 누릴 수 없었다.  

    

차분하게 대화하기가 어려웠다. 폭력 상황을 모면하고 도망가는 쪽으로만 모든 감각이 모여들었다. 삶을 바꾸려면 참으로 긴 시간이 필요하겠구나, 0은 생각했다.  

    

욕하고 때리는 짓이 습관으로 굳어진 부모 한쪽이 연락도 하지 않은 채, 0을 찾아왔다. 모두 전 배우자 잘못이며 2-3 양육은 자신의 사명이라 단호히 말했다. 그가 왜 왔는지 알아차린 0이 물었다. 

     

“그 사명감에 힘입어 폭력을 행사하나요?”    

 

그는 펄쩍 뛰었다. 자신은 2-3을 때린 적이 없다고 극구 부인했다. 0이 진부한 진실을 다시 꺼내 들었다.  

    

“언어폭력이 더 잔혹한 폭력이라는 사실, 잘 아실 텐데요.” 

    

그는 그조차 부인했다. 올바른 말로 훈육했을 따름이라고 못 박았다. 마침내 그가 본색을 드러냈다. 2-3 덜미를 낚아채 황황히 떠났다. 끌려가며 돌아다보던 아이의 푸른 눈빛을 0은 차마 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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