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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용원 Mar 21. 2024

나나보조 이야기 187

-허울 대한민국 부역 서사-

팡이실이 숙의 서사 11     



연기   

  

0은 함께 밥 먹는 것을 숙의 과정에 포함한다. 당사자 허락을 전제로 함은 물론이다. 또 당사자 허락을 조건으로 반주 잔을 기울이기도 한다. 대부분 진료소 근처 소박한 백반집에서 한다. 그 집은 인공조미료를 거의 넣지 않은 음식 대부분을 주인이 직접 만든다. 주인 내외가 그 또래라 친구 삼아 마음 편히 드나들며 이따금 함께 소주도 한 잔씩 한다. 나도 그 백반집에 여러 번 갔다. 첫날 일을 기억한다. 주인장이 예의 그 시원스러운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아유, 원장님! 오늘은 배우를 모시고 오셨네!”   

  

틀린 말은 아니다. 나는 배우 지망생이었다. ‘단연’은 아닐지라도 내 외모는 출중한 편에 속한다. 심각한 내면의 고통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아무도 모를 만큼 말이다. 내 검고 커다란 눈망울에는 언제나 쏟아질 준비가 돼 있는 눈물이 가득 숨겨져 있었다. 나를 짓누르는 가장 육중한 말은 할머니와 아버지, 특히 어머니가 노래 후렴구처럼 내뱉곤 하는 바로 이 말이었다.   

  

“네가 성공해야 우리 집안이 다시 일어선다!”     


우리 집안이 어떤 집안인지, 다시 일어선다는 말이 어울릴 만큼 본디 뜨르르했는지 전혀 공감하지 못한 상태에서 어릴 적부터 나는 이 말에 귀가 닳아버렸다. 참으로 희한한 일은 그런 말 뒤에 아무것도 따라오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이를테면 투자, 그러니까 재정적 지원, 뭐 이런 거 말이다. 생활이 그다지 넉넉지 않다는 사실을 고려하더라도, 벌거벗겨 벌판에 세워놓고 대박 나서 돌아오라 손 비비는 꼴과 다름이 없었다.  

    

실제로 나는 개나 소나 가는 무슨 연극영화과 간 적도 없었다. 알바 해 번 돈으로 사설 연기학원에 다니면서 공부하고 오디션도 보며 정신없이 살고 있었다. 그나마 돈이 모자라면 학원 등록도 거른 채 아등바등 견뎠다. 0 앞에서 그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사이 내 눈에서는 눈물방울이 숨죽이며 굴러 내렸다. 그가 화장지 상자를 통째로 밀어주며 말했다.     

 

“엉엉, 소리 내 우세요.”  

   

찰나, 정체 모를 웃음이 쏜살같이 지나갔다. 이내 대성통곡이 들이닥쳤다. 그 와중에 침 꽂고 누워계신 어르신들의 나지막이 혀 차는 소리가 스며들어 왔다. 통곡이 그치기를 기다렸다가 0이 손뼉을 치며 내게 말했다. 


“매우 감동적인 연기였습니다.”  

    

내 눈빛에서 순간적으로 칼날이 번쩍했다. 왜 아니겠나. 해묵은 억압을 빠듯이 뚫고 올라와 온몸으로 운 사람한테 연기라니. 조금 뜸을 들였다가 진지한 표정으로 그가 이치를 말해주었다: 우리는 배우가 연기를 하는 모습을 보고 현실보다 훨씬 과장된 행위라고 생각한다. 음성도 발음도 어휘도 표정도 몸짓도 웃음도 울음도 모두 현실에는 없는 무엇으로 여긴다. 정반대다. 명배우의 연기야말로 고스란한 현실이다. 이래저래 병든 우리 일상이 우리로 하여금 접히고 찌그러지고 꼬이고 뒤틀리고 토막 난 음성·발음·어휘·표정·몸짓·웃음·울음을 내게 한다. 치료는 명배우의 연기처럼 펼치고 펴고 풀고 바로잡고 이어주는 음성·발음·어휘·표정·몸짓·웃음·울음을 내는 작업이다. 마음 아픈 사람에게 삶은 그 자체로 치료다. 그러므로 연기다. 제대로 된 옹골찬 연기가 아픈 삶에 예의를 갖추는 정중한 자세다.  

    

물론 0이 최민식이나 전도연 같은 배우는 아니다. 그는 마음 아픈 사람과 숙의하는 과정에서 치료 연기를 직접 하고, 또 가르치는 배우다. 나는 그와 함께 내 상황을 그때그때 정확하게 연기하는 일이 무엇인지 숙의했다. 밥 먹을 때도, 소주 한잔 마실 때도, 이 작업을 계속했다. 알바를 할 때도, 심지어 연기학원에서 연기를 배울 때도, 삶의 한가운데서 연기가 일어난다는 사실을 유념하는 데 힘썼다.  

    

나는 숙의 초기에 우느라고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울 상황이 아닌 데서도 울곤 했다. 그가 나지막이 물었다. 

    

“왜 울어요?” 

    

생전 처음 받은 질문이라 놀라서 찰나적으로 나는 울음을 멈추었다.   

   

“그러게요.”     


나도 나지막이 대답했다. 그가 다른 감정으로 표현해야 할 문제를 모두 눈물로 몰아버리도록 억압되어 그렇다는 이치를 일러주었다. 한동안 울지 않을 상황에서 울지 않는 연기를 숙의했다. 

     

과다하게 우는 그 이상으로 나는 과다하게 웃었다. 마치 반드시 웃어야만 한다고 결심한 사람처럼 말을 꺼내기 전부터 웃기 시작해서 중간에도 연신 웃고 끝내고 나서도 웃었다. 그가 나지막이 물었다. 

    

“왜 웃어요?”   

  

생전 처음 받은 질문이라 놀라며 찰나적으로 나는 웃음을 멈추었다.    

  

“그러게요.”   

  

나도 나지막이 대답했다. 그가 그 웃음이 눈물을 감추기 위한 위장이라는 이치를 일러주었다. 한동안 웃지 않을 상황에서 웃지 않는 연기를 숙의했다. 


          

울음과 웃음을 일상으로 돌려놓는 일만으로도 마음 상태는 훨씬 좋아졌다. 2-4는 여전히 스스로 뒷바라지하며 힘들게 연기 공부를 하고 있다. 내가 그와 함께한 시간이 실제로 얼마나 큰 도움이 될지 알지 못한다. 다른 어떤 배우 지망생도 알지 못하는 연기의 진실을 알고 있는 한, 언젠가는 훌륭한 배우가 될 수 있으리라는 신뢰를 그에게 보낸다. 사인 미리 받아두지 못한 일은 후회막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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