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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용원 Mar 22. 2024

나나보조 이야기 188

-허울 대한민국 부역 서사-

팡이실이 숙의 서사 12   


       

질문이 답이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랑과 그 이야기가 인간사를 수놓지만 정말 사랑을 아는 이가 그렇게나 많을까. 의미를 꼭 알아야 사랑도 삶도 가능하다는 말은 아니다. 모를 때 빚어지는 어긋남이 생각보다 큰 화를 부르기에 화두로 들 가치가 있다는 말이다.   

     

청소년티가 아직 벗겨지지 않은 얼굴을 한 2-5가 사랑 깊고 품 넓어 보이는 어머니와 함께 왔다. 귀여움을 잔뜩 머금은 얼굴 어디에도 고통 그림자는 얼씬거리지 않았다. 어머니가 먼저 현재 상태와 자초지종을 대략 설명하는 동안, 그는 미소를 띤 채 원장실 풍경에 눈길을 보내고 있었다. 어머니가 나가자, 분위기가 아연 달라졌다.  

    

사달 근원은 아버지였다. 10대 초반 그는 아버지 외도 현장을 목격했다. 아버지에 대한 적개심으로 치를 떨 때 보인 어머니 반응이 방아쇠를 당겼다. ‘그래도 아버지니까 도리를 저버려서는 안 된다, 공부 열심히 해서 성공하면 된다, 엄마는 가정을 지켜야 한다.’ 아버지가 가출해서 나쁜 일을 벌일 때마다 어머니는 수습해 주고 집에 들였다. 아버지는 다시 가출해서 사고치고 어머니한테 손을 벌렸다. 악순환 무한 반복이었다. 이를 견딜 수 없었던 그는 거식과 폭식을 교차 반복하는 상황으로 급속히 빠져들었다. 폭식 대상이 소주가 되고, 하루 음주량이 깜짝 놀랄 만큼 되자, 서둘러 치료 길을 찾아 나섰다. 내가 그에게 물었다.    

 

“어머니는 어떤 분이세요?”    

 

그는 망설이지 않고 매지근한 어투로 대답했다.      


“고마우신 분입니다.” 

    

많이 듣는 소린데 들을 때마다 부아가 치밀어 오른다. 나는 즉각 질문을 보충 설명으로 바꾸었다. 

    

“머리에서 하는 판단 말고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느낌을 물었어요.”  

   

그의 입에서는 예상치 답이 정확히 흘러나왔다.   

   

“그런 건 없습니다.”     


많이 듣는 소리라 들을 때마다 놀라지는 않는다. 나는 일단 문제의식을 발효시키기로 했다. 얼마쯤 시간이 흐른 뒤, 숙의를 잠시 멈추고 가능하면 길게 홀로 여행을 떠나보라고 제안했다. 그는 휴대전화기를 놔두고 어머니 카드 한 장만 쥔 채 여행을 떠났다. 열흘 채 안 되어 느닷없이 그가 나타났다. 내가 물었다.   

   

“왜 갑자기 돌아왔나요?”     

 

잠시 망설이던 그 입에서 튀어나온 말은 적잖이 나를 놀라게 했다.     


“엄마 보고 싶어 왈칵 눈물이 났습니다.”    

  

정작 충격적인 말은 바로 그다음.  

    

“태어나서 처음 든 느낌이었습니다.”     


아뿔싸! 이 대체 무슨 상황인가. 나는 때가 되었음을 알아차렸다. 어머니를 뵙자고 했다. 어머니는 이 말을 전해 듣고 목 놓아 울었다. 한참 울더니 어머니는 눈물을 훔치며 말했다. 

    

“세상 어느 엄마보다 사랑으로 키웠는데 어떻게 이럴 수가 있습니까?”    

 

나는 습기를 쏙 빼고 말했다.  

   

“어머니께서 말씀하신 바는 사랑이 아닙니다.”    

 

당연한 의문이 눈빛을 타고 들이닥친다. 나는 재빨리 이어서 말했다.    

 

“뒤치다꺼리입니다. 어머니 아니라도 누구든 할 수 있습니다.”   

   

어머니는 다시 울음을 이어갔다. 자신이 뭔가 잘못했음을 직감으로 느꼈기 때문일 터. 한참 울더니 너무나 중요해서 너무도 진부한 질문을 던졌다.   

  

“어떻게 하면 사랑인가요?”  

   

나는 짐짓 큰 소리로 화를 냈다. 그게 지금 엄마 입에서 나올 소리냐며 꾸짖었다. 어머니는 모르겠는 걸 어찌하느냐며 또 오열했다. 나는 또박또박 말했다.  

   

“아이 감정이 형성되어 가는 과정에 동참하지 않고서는 결코 사랑을 알 수 없습니다.”  

   

어머니는 진지한 눈빛을 하고 물어왔다.  

    

“아이 감정이 형성되어 가는 과정에 동참하려면 어찌해야 합니까?”     


나는 간결하게 대답했다.  

    

“질문으로 아이에게 다가가시면 됩니다.”     


묻는 일이 사랑하는 일이라는 말이다. 어머니 변화와 맞물리면서 우여곡절 끝에 2-5는 안정을 찾았다. 결혼을 약속한 사람도 만났다. 청년 초기 이런 경험을 통해 그가 체득한 사랑은 그 생을 이끌 힘으로 작동하리라. 주례사를 써 두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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