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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용원 Mar 23. 2024

나나보조 이야기 189

-허울 대한민국 부역 서사-

팡이실이 숙의 서사 13


          

입장권

      

암 때문에 목회를 그만두었던 친구 목사가 병을 극복하고 새 교회를 열었습니다. 그가 초대해서 창립식에 참석했습니다. 거기서 어떤 부부와 반가운 해후가 이루어졌습니다. 어찌나 반가워하는지 제가 도리어 감격에 겨워했습니다. 

     

그들은 그때로부터 몇 해 전 10대 초반 아들인 2-6과 함께 저를 찾아왔습니다. 그는 ‘뚜렛증후군’이었습니다. 이 질병은 틱 장애가 1년 이상 치료되지 않는 중증 상태입니다. 안 가본 데가 없다고 했습니다. 그중에는 우리나라 최고 권위자-무슨 근거에서 하는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여하튼-도 있었답니다. 3년 이상 그렇게 헤맸지만, 전혀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애를 끓이던 차에 우연히 한 선배한테 제 말을 듣고,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찾아왔습니다. 그 선배가 바로 이 해후를 가능케 한 제 친구 목사였습니다.

      

상황 설명을 간략하게 들은 다음, 저는 부모를 밖으로 내보냈습니다. 2-6과 단둘이 마주 앉았습니다. 그는 질병에 시달려 낯빛이 거무스름했습니다. 제대로 자라지 못해 몸이 전체적으로 아주 작았습니다. 저는 그와 눈을 맞추려고 납작 엎드렸습니다. 제가 물었습니다. 

    

“2-6아, 너는 이 병이 왜 생겼는지 알지?”   

  

그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 또렷하게 대답했습니다.  

    

“네! 알아요. 근데 아무도 묻지 않았어요!” 

     

그렇습니다. 2-6은 여태껏 누가 물어주기를 기다렸습니다. 3년이나 지나도록, 부모야 그렇다 치고, 수많은 의사조차 단 한 번도 묻지 않았습니다. 왜일까요? 아이니까 모를 거라 간주했기 때문입니다. 아이 마음 상태와 무관한 병이라는 잘못된 의학적 판단 때문입니다. 그가 제게 들려준 사연을, 나중에 이 사실을 알고 부모가 들려준 이야기와 결합해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2-6이 아직 아기였을 때, 아버지는 교회 전도사였습니다. 한국 교회가 대개 그렇듯 새벽기도회는 늘 전도사 몫이었습니다. 전도사 부부는 아기가 곤히 잠든 모습을 확인하고 집을 나섭니다. 어느 날 아기가 우연히 잠에서 깹니다. 어둠 속에서 본능적으로 더듬어 엄마를 찾습니다. 엄마가 없습니다. 공포가 들이닥칩니다. 아기는 울음을 터뜨립니다. 아무리 울며불며 엄마를 불러도 엄마는 오지 않습니다. 울다 지쳐서 잠이 듭니다. 돌아온 부모는 여전히 잠들어 있으니 별일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면서 아이는 시나브로 숨을 크게 몰아쉬는 행동을 반복하기 시작합니다. 부모는 대수롭지 않게 넘어갑니다. 아이가 가슴 통증을 호소하자 비로소 관심을 가지기 시작합니다. 이미 병이 뿌리 깊어진 다음 일이었습니다.  

    

저는 2-6에게 ‘얼른 낫고 싶으냐?’ 물었습니다. 그는 눈을 반짝이며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저는 그를 진단 베드로 안내했습니다. 반듯이 눕힌 다음 ‘얼른 낫게 해줄게. 그 대신 문제 하나 풀어볼래?’ 하고 그가 누운 침대로 다가가 우뚝 섰습니다. 갑자기 두 팔을 벌려 올리고 손을 맹수 앞발 모양으로 만들며 ‘어흥!’ 소리를 냈습니다. 곧바로 그에게 물었습니다.  

     

“너를 잡아먹으려고 이렇게 호랑이가 달려들 때 넌 어떤 마음이 들어야 살아남을 수 있겠니?”   

  

어른 같으면 이 질문에 쉽사리 대답하기 힘들었을 테지만, 아이는 망설임 없이 대답했습니다.  

    

“당근, 공포죠.”     


2-6이 제 의중을 간파할 수 있다고 판단하고 다시 물었습니다.   

   

“그럼, 공포랑 칭구 먹을 수 있어?” 

    

그는 힘차게 대답했습니다. 

     

“네!” 

    

저는 그에게 ‘공포랑 칭구 먹는’ 비밀을 귀띔해 주었습니다.   

   

엄마가 사라졌다는 사실을 아는 순간, 아이에게는 숨 막히는 공포가 덮칩니다. 공포로 말미암아 살아남기 위한 첫 방어반응이 이어 나타납니다. 숨을 크게 몰아쉬는 동작입니다. 숨을 크게 몰아쉬면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격정 상태에서 이 동작을 계속 반복하면 통증이 생깁니다. 통증은 점점 더 강해집니다. 극렬한 통증은 다시 공포를 부릅니다. 이 악순환은 통증을 없앤다고, 숨 크게 몰아쉬기를 없앤다고 해서 끊어지지 않습니다. 공포가 지니는 양면성을 직시해야만 끊어집니다. 공포는 누구라도 다시는 마주치고 싶지 않은 어둠임과 동시에 생명을 지켜내려면 없어서는 안 될 날카로운 빛 감성입니다. 이 이치를 알아차린 2-6에게 제가 제안했습니다. 

   

“자, 숨 크게 몰아쉬기가 닥쳐온다고 상상한다. ‘칭구야, 어서 와!’라고 하면서 두 팔 벌려 숨을 더 크게 몰아쉬어 본다.”     


“상상 말고 진짜 해볼게요.”     


2-6은 잠시 저를 밖에 나가 있으라고 합니다. 제가 나가는 즉시 그 증상이 재현된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입니다. 제가 밖으로 나와서 잠시 부모와 이야기를 나누는데, 그가 됐다며 손짓합니다. 얼굴엔 웃음이 가득합니다. 의미와 재미를 동시에 담은 웃음입니다.  

    

부모는 매우 놀라워했습니다. 지난 3년 동안 누군가와 단둘이서 5분 이상 대화를 나눈 적이 없었다고 합니다. 그날, 심지어 첫 만남이었는데 무려 40분이나 더불어 대화했지 뭡니까. 더군다나 그가 웃기까지 했으니···    

 

그날부터 꼭 한 달 동안, 2-6은 한약 두 제를 먹고 숙의 치유를 세 번 더 했습니다. 3년 동안 꼼작도 하지 않던 아이는 몰라보게 달라졌습니다. 남은 문제가 없지는 않았지만, 부모에게 몇 가지를 당부하고 치료를 종료했습니다. 도리어 불안해하던 부모의 표정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몇 년 만에 다시 만난 부모는 제게 경이로운 소식을 전해주었습니다. 학교 갈 수 없어 집 교육(homeschool)으로 대신했던 2-6이 미국 고등학교에 진학했다는 사실, 게다가 축구선수라는 사실, 더군다나 전교 회장이라는 사실까지 말입니다. 아, 그와 저는 그렇게나 짧은 시간에 그렇게도 놀라운 삶을 함께 준비해 갔던 셈입니다.   

    

2-6 부모와 헤어져 돌아오면서 주마등처럼 지나가는 기억을 더듬다가 저는 짐짓 엄숙한 음성으로 중얼거렸습니다. “혹시 내가 죽어서 천국이라는 데를 간다면, 2-6을 치유한 탓 아닐까···” 이런! 그 사이 전동열차는 제가 내릴 역을 지나서 달려가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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