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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용원 Mar 25. 2024

나나보조 이야기 190

-허울 대한민국 부역 서사

팡이실이 숙의 서사 14 


         

탈옥 

    

살아 있으나 죽은 사람이 정말 가능하다면, 꼭 똑 그와 같은 모습이었을 듯합니다. 2-7이 유령처럼 들어서는 광경을 본 제 영혼이 먼저 눈물을 흘렸습니다. 말해도 들리지 않을 것만 같은 입을 열어 이야기를 꺼낼 때는 넷 에움 모두 숨죽였음이 틀림없습니다.   

        


나는 10대 초반부터 우울증으로 고통받았습니다. 아버지는 귀신이 씌웠다고 하면서 나를 골방에 가두었습니다. 그는 이단 종파 개신교 목사였습니다. 아버지는 안찰기도 한다며 온몸을 두들겨 팼습니다. 나는 네 차례나 도망쳤습니다. 그때마다 잡혀 들어와 더욱 모질게 폭행당했습니다. 보다 못한 어머니가 숨겨두었던 얼마간의 돈을 주어서 0 선생님에게 보냈습니다.

           


헐떡임조차 나지막한 숨 사이로 더듬더듬 기어가던 2-7은 얼마 못 가 이야기를 멈추었습니다. 말할 기력도 부치거니와 차마 말할 수 없는 사연들이 겹겹 쌓인 고개를 넘어가기 무서웠던 탓입니다. 저는 그를 잠시 누워 쉬게 했습니다. 한참 뒤, 저는 처방을 내렸습니다.  

    

하얀 종이에 큼직한 글자 두 개를 그려 넣었습니다.  

    

“탈옥”    


      

심신이 극도로 피폐한 상황에서도 나는 단호히 결단했습니다. 이튿날 가방 두 개를 들고 0 진료소로 갔습니다. 짐을 일단 내려놓고 두 명의 친구 집에서 하루씩 묵은 뒤 한의원으로 돌아갔습니다. 선생님께서는 ‘마침 봄이기도 하니 여기서 며칠 머무르면서 천천히 갈 곳을 찾아보라.’ 말씀하셨습니다. 밥도 사 먹고 영화관도 가고 책도 사 볼 수 있게, 얼마간 용돈도 주셨습니다. 사흘 지나 저는 꽤 여러 날 지낼 수 있는 곳을 찾았습니다.


           

저는 2-7을 데리고 가까운 음식점으로 갔습니다. 음식을 앞에 놓고 그가 말했습니다.  

   

“시력이 떨어져 제대로 볼 수 없었는데, 이젠 연둣빛 나뭇잎이 보여요. 집중이 안 돼 책을 읽을 수 없었는데, 이젠 내용이 머리에 들어와요. 식욕이 없어 도통 먹을 수 없었는데, 이젠 맛있어요. 이거 다 먹을 수 있어요.”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며 2-7은 밥을 먹었습니다. 그렇게 행복하며 그렇게 존엄한 식사를 그날 이후 다시 볼 수 없었습니다. 저는 작별 인사를 하는 그에게 한약과 용돈을 다시 건네며 말해주었습니다.  

   

“부디 자기 연인으로 사세요. 스스로 연애를 걸지 않는다면 누가 있어 프러포즈를 해오겠어요?” 

         


나는 다시 눈물을 흘리며 돌아섰습니다. 어름어름 잊힐 만한 시간이 어름어름 흘러갔습니다. 저는 선생님께 편지를 썼습니다. 완전히 탈옥했음을 알려드렸습니다. 

     

“선생님, 이제 제 걱정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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