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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용원 Mar 18. 2024

나나보조 이야기 184

-허울 대한민국 부역 서사-

팡이실이 숙의 서사 8  


        

임시정부    

  

비교적 수려한 용모의 청년이 겨울바람을 툭툭 털어내며 미끄러지듯 들어섰다. 담백하다 하기에는 어딘가 모호한 느낌을 주는 첫인상이었다. 중성적 이미지가 그런 풍경을 자아내나 싶었는데, 오히려 중성적 이미지는 그 모호함이 낳은 결과 아닐까, 하는 직감에 꽂혔다. 1-6이다.  

    

간단한 검사를 했더니, 1-6은 안정을 추구하고 우울 정서에 민감한 경향을 지닌 사람이었다. 체제는 견고하나 개인은 일렁거리는 직업, 그는 공직자였다. 그의 직업은 그에게 약이기도 하고 독이기도 했다. 내게 왔을 때는 독성을 강하게 드러내고 있었다.    


       

현장 관련 업무를 담당하는 나는, 아무것도 책임지려 하지 않고 관례대로 넘어가는 데 이골이 난 직속상관 때문에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고 있었다. 업무능력은 그렇다 치고 인격적으로 문제가 많은 사람이었다. 상급자니 뭐 어쩌겠나, 넘어가기도 하는데 더 큰 문제는 현장 책임자였다. 매우 무례하고 공격적인 사람이었다. 이 사람을 대하는 게 너무 힘들었다. 구체적인 문제는 내가 그들에게 해야 할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는 사실이었다.      

나는 자신에게 주어지는 업무 모두가 내 소임이라고 생각했다. 그 일에 최선을 다해 책임지려고 늘 능력 넘어 고민을 떠안은 채 괴로워했다. 타인 요구를 받아들이는 데는 한없이 관대하고, 타인에게 요구하는 데는 한없이 인색했다. 타인이 자기 경계를 넘어오는 일에는 속수무책이었고, 타인의 경계를 넘어가는 일은 죄라고 생각했다. 아니, 나는 아예 자기 경계가 없는 사람이었다.  

   

내가 자기 경계 없는 사람이 된 직접적인 원인은 어머니에게 있었다. 어머니는 어렸을 때부터 내게 윤리적인 삶을 지나치게 강조했다. 거짓말이나 욕설 엄금은 말할 나위조차 없다. 어쩌다 실수가 나오면 어머니는 반드시 그 발언을 취소하도록 명령했다. 어머니는 이런 엄금·명령 프레임을 삶 전반에 가동했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내 일거수일투족이 어머니 프레임 검열을 거쳐 나왔다고 할 수 있다. 어머니 견해에 어긋나는 언행은 자동 제거 대상이다. 결과적으로 나는 매우 반듯하고 착하며 안정적인 성인으로 자라났다. 우울증이 덮치기 전까지는 아무도, 심지어 나 자신조차도 어머니 프레임이 내 내면 풍경에 어떻게 회색 덧칠을 했는지 알지 못했다. 


          

세상에 어떤 어머니도 악의를 가지고 자녀를 망치지는 않는다. 1-6의 어머니 또한 선의의 화신이었다. 모든 어머니는 세상에서 자기 같은 어머니는 다시없다고 확신한다. 그의 어머니 또한 최고 어머니였다. 어머니 중 그 누구도 자기 때문에 자녀가 병들었다는 말을 믿지 않는다. 그의 어머니 또한 애지중지 키운 그가 우울증, 그러니까 자기부정증후군으로 치료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믿지 않았다. 그의 어머니는 ‘의사가 무슨 말로 너를 홀렸느냐?’며 궁금해했다.  

    

나는 1-6과 함께 어찌하면 어머니 프레임에서 벗어날 수 있는지를 숙의했다. 무엇보다 먼저 그가 어머니 프레임 안에서 확신해 온 고정관념부터 흔들기 시작했다. 내가 물었다.    

 

“왜 욕을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나요?”     


욕은 신음, 비명과 더불어 가장 절실한 언어라는 진실을 전해주자, 그는 진심으로 욕을 향해 마음을 열었다. 여차하면 언제든 욕할 입 모양을 지을 수 있게 되었다. 내가 또 물었다.  

   

“왜 거짓말을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나요?”  

   

참·거짓보다 상위 가치가 있다는 진실, 크게 보면 말은 모두 거짓말이라는 진실을 전해주자, 그는 진심으로 거짓말을 향해 마음을 열었다. 여차하면 언제든 시침 뚝 떼고 거짓말할 표정을 지을 수 있게 되었다. 그와 어머니 사이에 금 긋는 법을 향해 우리는 한 걸음 더 앞으로 나아갔다. 내가 물었다.  

   

“어머니한테 정색하고 이의를 제기해 본 적이 있나요?”     


있을 리 없다. 나는 그에게 그리스 고전 수사법을 간결하게 요약해 주었다. 처음에 감성을 어루만지고, 다음엔 이성으로 압도하고, 마지막엔 다시 감성을 흔드는 말을 쓰고 읽고 반복 훈련하도록 했다. 그는 이제 상냥하되 단호한 어조로 어머니와 자기 생각이 왜 다른지 어떻게 그래도 되는지를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올 것이 왔다. 마음 병 치유를 위해 숙의하는 과정에서 0이 빼놓지 않고 하는 질문이 있다. 나라고 왜 예외겠는가.  

    

“자신이 매혹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하나요?”

     

나는 우물쭈물했다. 그가 조금 더 구체적으로 질문하자 그제야 조금 분명하게 대답할 수 있었다. 그가 매혹 근거를 제시해 보라며 시간을 주었다. 일주일 뒤, 나는 수첩에 꽤 여러 가지를 적어 갔다. 그가 말했다.    

 

“제게 보여줄 필요는 없습니다. 단, 그 가운데 매혹 포인트가 아닌 것을 스스로 제거해 보세요. 예컨대, 어떤 재능이나 기능을 지니고 있다, 뭐 이런 내용 말입니다.”    

 

나는 뜨끔 했다.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면서 몇 개를 얼른 지웠다. 그가 최후 예각을 세웠다.     


“남아 있는 내용 가운데 성적인(sexual) 사항이 있나요?”   

  

예상치 못한 질문에 나는 당황했다. 대답은 분명했다. 없다, 다. 이 대답이 바로 내 심리적·사회적 본질이었다. 내게서 풍기는 중성적 이미지의 근거가 잡혔다. 나는 자기 경계, 무엇보다 성적인 자기 경계가 없어서 타인이 목적 지향으로 쑥쑥 침범해 들어오는 일을 문제 삼기는커녕 지각조차 하지 못했다. 내가 가정에서든 사회에서든 먹잇감 노릇할 수밖에 없었던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빼어난 미인임에도 그다지 매혹적이지 않은 어머니는 내게 이런 치명적인 프레임까지 걸어 놓았던 셈이다.  

    

나는 어머니 프레임에서 벗어나 독립하는 일이 내게도 어머니에게도 아뜩하게 느껴진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어머니 내면 풍경을 자주자주 들여다보며 나는 발맘발맘 임시정부를 수립했다. 어머니도 조심스레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달라진 면모를 확실히 본다. 온전한 독립이 이루어지는 그날까지 나는 0이 곁에 없어도 그와 숙의를 계속할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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