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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용원 Mar 16. 2024

나나보조 이야기 183

-허울 대한민국 부역 서사-

팡이실이 숙의 서사 7



독립전쟁    

 

어느 봄날 오후 전화벨이 느슨한 시공을 아연 팽팽하게 당긴다. 간호사가 뭐라 뭐라 통화하더니 “원장님, 내일 오후 5시, 우울증 상담 예약 잡혔습니다.” 한다. 메모하고 30분쯤 지났을까, 전화벨이 울린다. 여느 때는 끊기더라도 직접 받지 않는데 이번엔 그냥 0이 수화기를 든다. 마음 치료를 하다 보면 생기는 직감으로 ‘다시 걸려 온’ 전화임을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저기, 조금 아까 예약한 사람인데요. 나중에 다시 하려고요.···”    

 

머뭇거리는 음성에서 표정이 묻어나온다. 우울증 환자가 이러는 일, 비일비재하다. 공감하고도 남는 일이다. 죄송하다며 황급히 전화를 끊으려 하는 지극히 짧은 시간, 0은 이렇게 말한다.    

 

“예, 오시기 쉽지 않습니다. 충분히 이해합니다. 괜찮습니다.”   

  

이런 경우, 대부분 다음 예약 잡기 위한 질문 형 권유 문장을 날린다. 훈련받지 않은 직원이면 ‘네, 그러세요.’ 정도로 시큰둥하게 끊는다. 물론 두 경우 다 환자는 오지 않는다. 한 시간쯤 뒤 한의원 문이 열린다. 바로 그, 1-5다. 예약 없이 달려온 그가 앉자마자 0에게 말한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아, 이런 분이라면 내 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겠구나, 했습니다.”     


이게 뭐, 절정 고수의 초식인가? 아니다. 그저, 그대 마음에 공감합니다, 정도의 평범한 표현일 뿐이다. 문제는 대부분 그 정도 공감조차 못 하고 산다는 사실이다. 더군다나 마음 병 치료한답시고 나선 이른바 전문의들은 공감은커녕 되지도 않는 분석에다 ‘지적질’이나 하고, 약 몇 알 떨어뜨려 주는 짓 하면서 ‘공감 따위로 병을 치료할 수 있겠느냐?’ 훈계나 한다.      


1-5는 유난히 초롱초롱한 큰 눈망울을 지녔다. 그 큰 눈망울에서 쏟아내는 눈물은 통째 내밀어 주는 화장지 상자가 다 민망할 정도였다. 그가 상담을 끝내고 나간 자리 바닥에는 똘똘 말린 화장지 조각들이 봄날 아까시나무 낙화처럼 흩뿌려져 있었다.      


1-5는 매우 순응적이었다. 0이 하는 말마다 크게 고개를 끄덕여 동의를 표했다. 동시에 “네. 네. 네. 네.”라고 재빨리 반복했다. 1년가량 아픔과 삶을 숙의하는 과정에서 고개 끄덕임은 누구라도 그렇게 할 만큼 작아졌다. 이의를 제기하고 거절하고 싸우는 법을 배우는 과정에서 “네. 네. 네. 네.”는 “네. 네. 네.”로, “네. 네. 네.”는 “네. 네.”로 “네. 네.”는 “네.”로 줄어들었다. 급기야 그 “네.”는 “···”까지 줄어들었다. 본인은 미처 그 변화를 감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어느 날 0이 그 이야기를 들려주니 그는 어린애처럼 신기해했다.    

  

대체 무엇이 1-5를 그토록 순응적인 사람으로 만들었을까? 그 인생 40여 년은 크게 두 시기로 구분할 수 있다. 제1기는 어머니 시대. 이 시기는 어머니가 그를 만들어 간 시기다. 어머니는 일거수일투족을 지배하고 관리했다. 어떤 이의도 용납되지 않았다. 아니 그럴 필요가 없었다. 어머니 생각과 행동은 오류 없는 신적 사랑과 같은 급이었기 때문이다. 그 사랑에 곱게 싸여 온 영혼이 거무튀튀하게 썩고 말았다. 여전히 어머니는 시시콜콜 그를 조종하려고 들며 끝마무리는 늘 이렇다.  

    

“얘, 그렇지 않니?”  

   

물음표가 있다고 해서 이 문장이 의문문은 아니다. 동의 구하기를 가장한 명령, 그러니까 “그렇다고 말해!”가 포함된 허위 의문문이다. 언젠가 어머니가 0에게 전화를 걸어왔다. 똑같은 의문문을 구사했다.    

  

“선생님, 그렇지 않습니까?”  

   

0은 단호히 말했다. 

    

“아닙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그 어머니가 당혹스러워하며 문맥을 끊지 못하는 사이 0이 먼저 맺음말로 문맥을 끊었다. 0은 1-5에게 이 비법(!)을 전수해 주었다.     

 

“맨 마지막 말을 1-5씨가 함으로써 대화 자체는 물론 그 맥락 끊기를 주도하세요.”


제1기 어머니 시대에 1-5는 단 한 번도 대화 주도권을 잡은 적이 없었다. 그 결과 그는 어머니 “얘, 그렇지 않니?”에 따라 피아노 배우고 학교 가고 전공 정하고 결혼했다. 그 몸 안에는 자기 영혼이 없었다. 그 존재론적 공백, 부재는 단단한 자기부정증후군으로 자리 잡았다. 자기부정증후군이 우울증이라는 사실을 그는 0에게서 비로소 전해 들었다. 그는 울고 또 울었다.  

   

제2기는 배우자 시대. 1-5에게 배우자는 대체된 어머니였다. 배우자는 그와 마음을 주고받지 않았다. 아이들과도 소통하지 않았다. 관심은 오로지 돈이었다. 결혼하고 자녀를 낳아 기르는 삶을 왜 선택했는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사람이었다. 그는 배우자가 지닌 그런 뜻과 길에 이의를 제기하지 못했다. 모든 맥락, 처음과 끝은 언제나 배우자가 쥐고 있었다. 그 삶에는 그가 없었다. 자기부정증후군은 한껏 증폭되었다. 도저히 더는 견딜 수 없는 임계점에서 어찌어찌 발견한 사람이 0이었다. 기나긴 경청 끝에 0은 선언했다.  

   

“이제부터 독립전쟁 시작입니다.” 

    

어머니한테서 정신적으로 독립하는 일이 치유 핵심임을 알려주자 1-5는 수긍하면서도 거기에 무슨 내용이 담겨 있을지 도무지 감을 잡지 못했다. 단 한 번도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으니 말이다. 그는 자기 자신이 어머니와 하나라고 생각하며 40여 년을 살았다. 어머니와 다른 생각, 다른 말, 다른 삶을 사는 일이 무엇인지 알 수 없음은 당연했다. 0이 그에게 제안했다.     


“엄마를 어머니라고 불러보면 어떨까요?”   

  

그는 그렇지 않아도 큰 눈을 더 크게 떴다. 40년 동안 엄마라고 불러왔는데 갑자기 어머니 소리가 쉽게 나올 리 없다.     

 

“어머니라는 호칭이 바로 독립선언서입니다.”  

    

잠시 후 그는 그 말뜻을 알아차렸다. 0는 그것을 ‘제2채널(the 2nd channel)’이라 이름 지었다. 제2채널을 통해 연속 세계에서 단절 세계로 넘어간다. 연속은 억압이다. ‘엄마’라는 이름이다. 단절은 자유다. ‘어머니’라는 새 이름이다. 삶을 바꿀 때 가장 먼저 할 일은 바로 말, 무엇보다 이름 바꾸기다. 이름을 바꾸면 그 이름을 지닌 사람과 맺는 관계가 바뀐다. 관계가 바뀌는 사건이 바로 삶이 바뀌는 사건이다. ‘어머니’라고 힘들게 이름을 바꾼 그에게 0이 물었다.     


“이제 1-5씨와 엄마 사이에 금이 그어졌나요?”    

 

그 눈이 빛났다. ‘어머니’에서 시작하여 그는 0과 함께 독립전쟁에 돌입했다. 모든 말에 경어를, 모든 문장에 문어를, 모든 대화에 치밀한 수사학을 장착하고 예의 바르되 단호하게 어머니 앞에 선다. 마지막으로 준비한 결정타가 바로, 조금 아까 말했던, 최후 일격으로 맥락 끊기였다. 이 전투가 배우자에게도 똑같이 치러졌음은 물론이다.    

 

어머니도 배우자도 일대 혼란에 빠져버렸다. 배우자는 늘 그랬듯 침묵으로 일관했지만, 어머니가 마침내 0을 찾아왔다. 어머니는 다짜고짜 물었다.     


“얘가 치료되고 있는 게 맞습니까?” 

    

0은 단호히 말했다. 

    

“1-5씨는 아이가 아닙니다. 1-5씨는 아주 좋아졌습니다.”  

   

어머니는 1-5가 여기 와서 치료받으면 더욱 착하게(!) 예전 모습으로 복귀할 거라 믿었음이 틀림없다. 0과 대화하는 동안 수긍하는 면모를 보였으나, 돌아가서 어머니는 1-5에게 여전한 말을 했다.    

 

“얘, 제대로 된 의료기관에서 치료받아야 하지 않겠니?”  

    

1-5는 정중하면서도 단호하게 0에게 계속해서 치료받겠노라 선언했다. 독립된 삶을 숙의해 가던 어떤 시점인가, 중대한 변곡점에 다다랐다. 하루는 0이 말을 일단락 짓자 1-5는 정색하고 말했다.     


“이제부터는 제가 숙의 선두에 서보겠습니다.”   

  

0은 직감했다. 숙의를 마칠 때가 가까이 오고 있다는 것을. 40여 년 동안 남의 말을 듣고 따르기만 해오던 삶을 내던질 욕구가 그에게 생겼으니 말이다. 얼마 뒤, 1-5는 스스로 숙의 종결을 요청했다. 0은 흔쾌히 받아들였다. 이듬해 스승의 날, 1-5는 0에게 꽃바구니와 더불어 문자 한 통을 보냈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선생님을 뵙고 제 삶은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세상을 다른 눈으로 바라볼 힘을 길러주셨습니다. 이제까지와 다른 방식으로 살아갈 용기와 이정표도 주셨습니다. 선생님과 만난 일은 제 인생에 더없이 커다란 선물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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