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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용원 Apr 01. 2024

나나보조 이야기 196

-허울 대한민국 부역 서사-

팡이실이 숙의 서사 20 


         

그때그때   

  

누군가를 수탈한 사람은 수탈당한 사람이 얻은 이득(이라고 간주하는 무엇)을 들이미는 적반하장으로 합리화하기 마련이다. 지주는 소작농이 자기 소유의 논두렁에서 콩을 수확했다고 주장한다. 성폭행한 자는 상대방도 즐겼다고 주장한다. 일제와 그 특권층 부역 집단은 식민 통치가 조선을 근대화했다고 주장한다. 박정희와 유신 본당은 개발독재가 우리를 보릿고개에서 해방했다고 주장한다. 

     

부모, 특히 아버지한테서 학대당하고 적반하장의 합리화에 20년 이상 시달려 온 나는 한껏 피폐해진 영혼으로 숙의 치유자 0을 찾아갔다. 나는 자신의 내면 정체성이 아버지를 부정하는 에너지로 형성되어 왔다는 사실을 익히 인지하고 있었다. 배우자나 자녀를 대하면서 아버지 그림자가 드리워진 자신 모습에 진저리 친 적이 많았다. 나는 0에게 말했다.  

   

“나 자신에게도 혐오 감정을 지닐 수밖에 없는 아버지‘표’ 현실이 죽도록 싫었습니다. 아버지‘표’ 현실은 힘이 매우 셌습니다. 어머니도 결국은 아버지의 부역자일 따름이었습니다. 아버지가 돈을 쥐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애면글면하지만 여전히 쪼들리는 생활 속에서 그 사람도 아이들도 순간순간 미워지기 일쑤였습니다. 날로 까칠해지는 제 영혼을 더는 두고 볼 수 없었습니다.” 

          

4-1은 매우 이성적·논리적인 분위기를 풍기면서 그에 걸맞은 언어를 구사했다. 이 풍경이 상처 반응 또는 방어기제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나는 한 박자 늦게 알아차렸다. 그는 첫 상담을 마치고 나서 기다란 비판 글을 온라인 상담실 게시판에 올렸다. 의사가 공감은 하지 않고 자기 틀로 분석만 하더라, 가 요지였다. 나는 심한 당혹 속에서 진심 어린 사과 글을 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내 글을 보고 자기 글을 신속하게 내렸다. 나는 내 글을 그대로 두었다. 두고두고 보며 숙의 의식을 일깨우기 위해서였다.  

    

내 정서적 공감과 지지에 아랑곳하지 않고 그 뒤에도 4-1은, 공개 글은 아니지만 이런 사후 비판을 계속했다. 긴 호흡이 필요한 문제였다. 몇 번 고비를 넘겨야 할 문제였다. 아직은 그에게 이 지구력을 요구할 시점이 아니었다. 그에게 수입은 멈춘 채였고, 시간은 흘러만 갔다. 이 어긋남은 끝내 우리 만남도 어긋나게 하고 말았다.   

   

포식자는 피식자가 방어할 힘이 없을 때를 노려 덮친다. 당하고 난 뒤, 복원은 불가능하다. 보상도 보복도 마찬가지다. 그때그때 맞서는 일만이 길이다. 그때그때 맞서는 일이 계속 지체될 경우, 피식자에게는 회한, 자책을 담은 상처 반응, 방어기제가 쟁여진다. 뼈아픈 진실이다. 그래, 그때그때    


      

두 쪽 카드   

  

흔히 평범함에 깃든 참 행복을 말한다. 이 말을 스스로에게 할 경우는 나름 비범함을 경험하고 나서일 터이다. 비교적 쉽게 입 밖으로 꺼낼 수 있다. 평범 이하 삶밖에 살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이 말처럼 야속한 무엇도 없다. 제발 평범함‘만’에라도 가서 닿을 수만 있다면 소원이 없겠다.  

    

나는 다섯 남매 가운데 둘째로 태어나, 줄곧 주목받지 못하는 삶을 살아왔습니다. 가족은 입버릇처럼 나에게 고집 세고, 느리고, 답답하다고 말했습니다. 영유아기 때는 분리불안이 극심했습니다. 방치되어 자라던 학령기 이전 때는 애정결핍에서 비롯한 사고를 수시로 쳤습니다. 초등학교 이후는 늘 외톨이였습니다. 다른 사람 말을 잘 알아듣지 못했습니다. 목표도 계획도 없이 하루하루를 그저 견뎌낼 뿐이었습니다. 성인이 되어서도 사회적 기술을 터득하는 데 어려움을 겪어, 어떤 곳에서도 잘 적응하지 못했습니다. 힘든 일은 무조건 피하려고만 했습니다. 나이가 차서(!) 중매로 결혼은 했는데 배우자도 인척도 아이들도 모두 힘들기만 한 존재였습니다. 특히 아이들 양육 문제는 무거운 죄책감을 안겨줄 뿐 도무지 어떤 방도를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는 사이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라는 병이 아이들을 덮쳤습니다. 아이들 치료하려고 정신과 드나들다가 나도 극심한 우울장애라는 사실에 놀라 약물치료를 시작했습니다. 아무런 효과도 없이 ‘아니면 말고’ 식으로 약물만 바꾸어 대는 나날이 흘러갔습니다. 가족도 배우자도 내 우울장애에 아무런 관심을 두지 않았습니다. 이러느니 죽는 게 낫다 싶은 충동이 왈칵 솟아오르자 너무나 무서웠습니다. 나는 허겁지겁 꾸물꾸물 인터넷을 뒤져서 0을 찾아갔습니다. 내가 그에게 한 첫 말입니다: 선생님, 살고 싶어도 살아갈 수가 없어요.   

  

평범함은 얼마나 아득한 거리에 있는가, 내 눈동자는 시시각각 허공으로 흩어졌다. 나는 죽을힘을 다해 두 달 동안 0과 내 삶을 숙의했다. 살면서 무슨 일을 이렇게 꾸준히 해본 적이 없다. 나는 스스로 기특해했다. 가족과 배우자는 이런 변화에 돈이 들어간다는 사실을 알자, 자상하게도 내 카드를 두 쪽으로 나누어주었다. 



=입구


4-3-1이 말한다. “낼모레면 내 나이 육십이다. 남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몰라도 내게는 이 사실이 중요하다. 알 만큼 안다는 얘기다. 그는 내가 외도했다고 주장하지만, 나는 그에게 편집장애가 있어서 그렇게 생각한다고 판단한다. 이럴 때 그에게 내려만 진다면 그 질병 진단은 곧 내가 결백하다는 선언 효과를 낸다. 나아가 편집장애에 걸린 그는 인격적 결함을 지닌 사람으로 규정된다. 원하는 바는 아니지만 내 출구는 이뿐이다.” 

      

4-3-2가 말한다. “의학적 차원 장애를 윤리적 차원 결함과 일치시키는 일은 명백한 잘못임에도 사회 통념적 위력 때문에 아무런 여과 없이 그런 범주 일탈이 가능해진다. 여기에 편승해 그는 내가 편집장애라고 주장한다. 외도가 사실일 경우 더욱 강고해질 터이다. 나는 필사적으로 병이 아니라고 부정한다. 나는 더 객관적이고 정밀한 증거를 확보한다. 진행 과정과 그 인과관계를 구성한다. 달리 길이 없다.” 

          

0이 말한다. “확실히 남편이 외도하지 않았고, 확실히 4-3-2가 편집장애 환자인 경우, 문제가 간단해 보여도 해결은 만만치 않다. 왜냐하면 병 문제를 윤리 문제로 비틀어버려서 그가 치료를 거부할 터이므로. 이때 가장 난처한 사람은 바로 나다. 적어도 그쪽에서 보면 내가 남편과 한패이기 때문이다.   

   

화쟁(和諍) 노력이 필요하다. 한편으로는 정신적 장애를 윤리적 관점에서 보지 않도록 4-3-1을 깨우친다: 장애는 결함이 아니라 결핍입니다, 결함은 교정 대상이지만 결핍은 애정 대상입니다, 곡진한 사랑으로 그 결핍을 치유하십시오, 그리고 필수 불가결한 한 가지. 외도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강조하지 말고 신뢰 주지 못했다는 사실을 미안해하십시오.  

    

다른 한편으로는 정신적 장애에 대한 왜곡된 시선 피해자로서 스스로 소외시키려는 4-3-2를 다독여 치유에 임하도록 한다: 사실 여부와 상관없이 자꾸 그런 생각 속으로 빠져드는 일은 스스로 아프게 하는 길이므로 여기서 멈추십시오, 뇌 안의 특정 신경전달물질 부족으로 일어나는 현상이기도 하므로 담담하게 치료받으십시오. 무엇보다 자신이 신뢰감에 상처를 입어서 이렇게 됐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지난 삶을 되돌아보는 일이 중요합니다, 어디쯤에서 어떻게 입은 상처인지 더듬어 거기 웅크리고 앉아 울고 있는 영혼을 안아 일으켜야 합니다, 그리고 필수 불가결한 한 가지. 외도했느냐 여부에 매달리지 말고 신뢰하느냐 자신에게 물으십시오.”  

        

처음에는 우리 두 사람 다 수긍했다. 얼마 가지 않아 나 4-3-2는 상담을 거부했다. 한약도 거부했다. 나 4-3-1은 나더러 어쩌라는 거냐며 상담 때마다 가서 내게 문제가 없다는 사실을 되풀이해서 강조했다. 숙의 치유자가 마법사일 리 없음에도, 무슨 수를 내주지 않는다고 화를 냈다. 숙의 치유자 말문을 막은 뒤 우리는 이전으로 분연히 돌아갔다. 앞으로 어찌 될지는 그만이 안다. 꼴도 보기 싫어서 우리는 그를 떠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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