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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용원 Apr 09. 2024

나나보조 이야기 203

-허울 대한민국 부역 서사-

팡이실이 숙의 서사 27  


        

그만이다   

  

낙인이란 말에는 이미 느낌 낙인이 찍혀 있다. 벗어나기 어려운 육중한 무엇을 가리킨다. 질병과 관련해서는 주로 정신질환이 가혹한 낙인인 경우가 많다. 정확히는 정신질환이 아니지만 그와 같은 사회적 편견 뉘앙스를 머금은 낙인이 바로 ‘간질병’이다. 공식 용어는 뇌전증(epilepsy)이지만 여전히 시중에서는 간질병으로 통용되고 있다.  


         

내가 0을 찾아간 이유는 간질병 때문이었다. 좀 더 분명히 말하자면 내가 간질병이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유수의 대학병원에서 간질병 판정을 받고 나 자신은 물론 가족 모두가 큰 충격에 빠졌다. 서구의학으로는 간질병 약을 먹는 일이 유일한 치료라고 하는 말을 듣고 다른 길이 없을까, 알아보다가 지인 소개로 그를 찾아갔다. 나는 그 앞에 앉자마자 이렇게 물었다.    

 

“선생님, 저 간질병 아니지요? 그렇죠?”  

   

그는 단호하게 대답했다.     

 

“간질병, 아닙니다!”    


      

나는 말이 지닌 규정력이 얼마나 고약한 차꼬인 줄 알기 때문에 무조건 풀어주었다. 5-7은 나지막이 편한 숨을 내쉬며 발개진 얼굴을 쓰다듬었다.   

   

그가 유달리 공포에 취약하게 태어났는지 분명하지 않다. 어린 시절부터 이런저런 공포·불안 요인에 반복적으로 노출되었다는 사실은 확인할 수 있었다. 4살 무렵엔 동생 출산으로, 9살 무렵엔 연이은 조부모 초상으로 홀로 큰 집에 남겨져 공포를 심하게 느낀 적이 있었다. 8살, 11살 무렵 뚜렷한 승강기 공포증을 일으킨 적이 있었다. 청소년기 따돌림을 당하면서부터는 타인 시선을 예민하게 의식하게 될 때도 공포가 밀려들었다. 세상은 너무 큰데 자신이 한없이 작아진다는 이상감각을 일으키기도 했다. 공포는 이내 신체 증상을 동반했다. 목이나 팔다리에 나타나는 뒤틀림, 돌아감, 꼬임 따위들이었다. 어떤 경우는 팔이 떨어져 나간다는 느낌도 들었다. 이런 증상들에 근거해 간질병 판정이 내려진 듯하다. 나는 이런 현상을 제국주의 백색의학과는 달리 심신 상호작용 이치로 차근차근 설명했다. 내가 물었다. 

    

“팔이 뒤틀리고, 목이 돌아가고, 다리가 꼬일 때 어떻게 반응하나요?”   

  

그가 대답했다.   

  

“힘 빡 주죠. 막아야 하잖아요.”   

   

내가 말했다.   

   

“계속 막으면 심장이 뒤틀리고 몸통이 돌아가고 뇌 회로가 꼬입니다.”  

   

그는 깜짝 놀라 입을 벌린 채, 멍하니 나를 쳐다보았다. 병이 오면, 생명은 반드시 신호를 보낸다. 신호란 본디 정보를 전달하기 위한 작디작은 에너지 활동이다. 공포·불안이 병적 수준에 이를 때, 생명은 그 사실을 알리기 위해 목이나 팔다리 정도 근육 이상을 일으킨다. 더 크고 중요한 부위 심각한 이상을 방지하려 함이다. 제국주의 백색의학은 이런 이치를 알지 못한다. 무조건 증상을 억제한다. 그렇게 상품화된 오류를 의료 대중이 답습하고 있다. 나는 덧붙여 말했다.   

  

“팔이 뒤틀리고, 목이 돌아가고, 다리가 꼬일 때, 아, 내 안에 더 큰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거구나, 하고 그대로 받아들이세요.” 


         

점점 나는 0의 말을 있는 그대로 느끼고 알아차리고 받아들여 갔다. 그럴수록 그런 증상은 현저하게 줄어들었다. 당연한 일로 여겨졌다. 이쯤 해서 그만둘 수도 있는 일이다. 아니다. 조금 더 나아가야 한다. 그가 물었다. 

 

“간질병, 무서워요? 싫어요?”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간질병이면 어떻고 또 아니면 어떤가. 무슨 대수인가. 그래. 고개 둘을 넘었다. 아는지 모르는지 나는 자연스럽게, 욕구를 따라 다음 맥락으로 넘어가고 있었다. 연애 이야기였다.  


         

늘 그렇듯 이런 상황을 마주한 청춘에게는 두 가지 심리가 공존한다. 연애에 시큰둥하게 반응하는 이성, 그리고 연애에 두 귀를 쫑긋 세우는 감성. 하나는 공포, 하나는 그리움. 둘 사이, 화해가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 게다가 5-7에게는 어린 시절 결핍 때문에, 뭐랄까 아주 사소한 인프라조차 깔려 있지 않은 상태였다. 가령 홀로 사는 방에 이성 친구가 들어온다, 몸에 손을 댄다, 이런 상황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조차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였다. 마음 경직은 몸 경직이고, 몸 경직은 삶 경직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달아야만 할 시점에 다다랐다. 어느 날 작심하고 그에게 담담히 말했다.   

  

“간질병, 맞습니다.”  

   

간질병은 뇌전증이 아니다. 인생 병이다. 경직과 경련이 삶 문제 한가운데서 유연하게 풀려나가는 일이 치유 종착점이자 본성이다.    


       

아프든 건강하든 누구나 자기 삶 문제 한가운데 서 있다. 시험이든 면접이든 내가 칼날 위에서 요동칠 때마다 0이 함께 있었다. 나는 거듭해서 실패했다. 헛된 실패란 결단코 없다. 비록 성에 차지는 않지만, 세월이 흐를 만큼 흐른 뒤, 나는 지금 나름 유연한 삶을 산다. 혹 또 다른 삶을 꿈꿀 때, 또 그렇게 경직을 직면하고 나아가면 그만이다. 그만둬도 그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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