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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용원 Apr 10. 2024

나나보조 이야기 204

-허울 대한민국 부역 서사-

팡이실이 숙의 서사 28 



 


부모의 이혼으로 마음에 금이 간 한 아이가 0에게 왔다. 아이는 부모 중 양육을 맡지 않은 쪽에 극렬한 적개심을 드러냈다.   


“성공해서 복수할 거예요!”     


필시 양육을 맡은 쪽에서 반복해서 부정적인 생각을 주입한 탓일 터이다. 양육자 본인은 강력히 부정했지만, 0은 오랜 경험으로 직감할 수 있었다. 아이는 비단 그 적개심뿐만 아니고, 생각과 행동 전반이 심하게 편향된 상태였다. 말하자면 양육자 아바타로 키워지고 있었던 셈이다. 그 사실 자체가 양육자 이득일 테지만, 아이한테는 엄청난 손실일 수밖에 없다. 0은 우선 시급히 양육자에게 아이 앞에서 전 배우자를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말을 엄금하도록 처방을 내렸다. 아이 생명이 시들어 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무엇을 꿈꾸고 있는지, 무엇을 걱정하고 있는지를 물으며 아이 마음이 어떻게 다쳤는지 살폈다. 아이는 나이에 비해 정신 발달 지체가 뚜렷했다. 유아적 마법 사고 지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양육자와 그 직계존속이 퍼부어 대는 “애지중지 학대”를 계속 받은 나머지, 현실 삶에서 스스로 생각하고 선택하는 능력이 현저하게 떨어졌다. 이를테면 양육자를 향한 막무가내 헌신이었다.  


“돈 많이 벌어 호강시켜 드릴 거예요.”     


내가 물었다.


"뭐 해서 돈 벌지?"   


아이가 대답했다.


"격투기요!"  

   

0은 아이를 치유하기 위해 생활 조건을 바꿀 수 있다면 바꿔야 한다고 판단했다. 양육자에게 전 배우자와 만날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그쪽 이야기도 들어봐야 치우침 없는 상담을 할 수 있고, 무엇보다 아이 양육 조건이 변화할 수 있는지 타진해야 했기 때문이다. 세 사람이 만났다. 계속 이런 만남이 이어질 것 같지 않아서, 0은 양육자 아닌 쪽에게 많은 질문을 하고 그 말에 주의를 기울였다. 그러자 양육자가 낯빛을 바꾸며 이의를 제기했다.  


“선생님, 지금 아이를 병들게 한 사람 편을 들고 있잖습니까?”  


0이 내린 긴급 처방에서 느낀 불편함과 연계된 반응이었음이 틀림없다. 0은 두 사람에게, 아이 때문에 이혼하지 않았다면, 이 문제에 아이를 연루시키면 안 된다, 두 사람이 서로에게 품은 감정을 아이가 물려받을 이유가 없다, 의사가 누구 편을 드느냐 마느냐 하는 문제가 아니다, 이런 점을 분명히 했다.


그날 이후 양육자가 더 이상 아이를 보내지 않았음은 물론이다. 십수 년이 지난 지금도 0은 아이 특이한 말버릇, 표정을 선명하게 기억한다. 어찌 살고 있을까 궁금하다. 아마도 그때와 별반 다르지 않을 듯하다. 그때 보여준 양육자 성향으로 미루어 그 생활 조건이 바뀌지 않았음에 틀림없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면 그때, 0이 아이 양육 조건 열악함에 너무 민감하게 반응했음이 사실이다. 부모, 특히 양육자 면모를 좀 더 지켜보고, 아이와 비양육자 사이 신뢰(rapport)가 생길 때까지 기다렸어야 했다. 만사에는 ‘때’가 있는 법이고, 그 ‘때’는 일방적 열정만으로는 정해지지 않는다. 뉘우침은 늘 나중에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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