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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용원 Apr 12. 2024

나나보조 이야기 206

-허울 대한민국 부역 서사-

팡이실이 숙의 서사 29   


       

덩실덩실     


숫기 없이 뽀얗게 웃으면서 들어서는 모습이 도리어 짠했다. 분명히 우울증으로 예약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으니 말이다. 전체적인 6-4 풍모는 내 마음을 아예 적시고 들어왔다. 누가 보더라도 귀티가 흐르는 얼굴, 이름깨나 있는 부티크 옷, 명품 가방, 풍요로 다듬어진 스마트 매무새···울컥했다. 아, ‘가진 게 많아서’ 아프구나!  


         

나는 유서 깊은 부자가 모여 산다는 바로 그 뜨르르한 동네 주민이다. 적어도 내 40여 년 기억 속에는 티끌만큼 가난도 존재하지 않았다. 어머니보다 아버지가 경제력이 조금 약했다는 사실 말고는 내게서 풍요 감각을 덜어낼 그 어떤 요인도 없었다. 

     

‘모태’ 풍요 속에서 아무런 의심 없이 내 삶은 부모 재력이 제시하는 인생 궤도를 따라갔다. 과외 하라면 과외하고, 악기 하라면 악기하고, 어디 학교 가라면 어디 학교 가고, 무슨 과 전공하라면 무슨 과 전공하고, 누구하고 결혼하라면 누구하고 결혼하고, 어디다 투자하라면 어디다 투자하면서 승승장구 살았다. 아무 문제 없었다.  

    

정말이다.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지듯 허무가 밀려든다. 살고 싶지 않다. 내가 뭐냐 싶다. 눈물이 하염없이 흐른다. 모든 사랑이 가뭇없이 사라진다. 그렇게 무(無)가 되었다. 내가 스러지자 모두 달려왔다.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대체 네가 뭐 아쉬워서 우울증이냐?” 

    

그렇다. 돈 많다. 집 좋다. 조물주 위 건물주다. 외제 차 끈다. 배우자도 손에 꼽는 억대 연봉 전문직이다. 뭐가 아쉬울까. 0이 도끼눈을 뜨고 내게 말했다.   

   

“6-4씨, 돈 말고 뭘 더 가졌습니까?” 

         


그렇다. 집이든 건물이든 차든 억대 연봉 배우자든 그들이 죄다 돈이지 뭐 다른 가치겠나. 돈 말고 나머지 모두를 잃었으니, 어찌 허망하지 않겠나. 돈 끝내 허깨비니 어찌 ‘꽝’(無)이 아니겠나. 6-4가 엉엉 소리 내어 울기 시작했다. 태어나 처음으로 울어보는 울음다운 울음이다. 실컷 울더니 비로소 돈독에서 풀려난 맑은 웃음을 웃는다. 나는 그를 데리고 나와 허름한 백반집으로 갔다. 막걸리 한 잔씩 따라 벌컥벌컥 들이켰다. 그가 말했다.  

    

“선생님, 막걸리 한 잔에 제 속이 덩실덩실 춤을 춥니다.” 



          

뒹굴뒹굴    

  

나는 인생이 술술 풀리는 사람으로 주위 부러움을 한 몸에 받던 사람이었다. 어느 날 갑자기 공황 상태에 빠졌다. 공황 뒤엔 우울증이 덮쳐왔다. 영문을 통 알 수가 없었다. 나도 가족도 속수무책이었다. 뭔가 결정을 내려야 하는 긴급한 상황인데도 전혀 움직이지 못했다.  

     

그다지 복잡하지 않은 생애 길목을 통과하는 동안, 내가 한 노력에 비해 일이 잘, 그것도 아주 잘 풀려왔음은 어김없는 사실이다. 거의 한 번도 위기에 봉착한 적이 없다. 모든 일이 마치 섭리처럼 흘러갔다. 사실 거기에는 가족이 베풀어 준 결정적 보우가 있었다. 그 보우는 약이기도 했고 독이기도 했다. 이번에는 그 독 날에 베인 모양이다. 가족은 나를 숙의 치유자 0에게 보냈다.   


       

가족 강권으로 상담하긴 하는데 여전히 6-5는 자기 문제를 정면으로 바라보지 못하는 상태였다. 시간이 흐르면 뭐가 돼도 되겠지, 하는 유아기적 사고에 붙들려 있었다. 질문하면 그 즉시 대답하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한참 뜸을 들이다가 대답하는데 대부분은 글쎄요, 잘 모르겠는데요, 나머지는 피상적인 답변이었다. 이야기 주제를 제시하고 준비해 오라 해도 응하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책을 추천하고 읽어오라 해도 머리 긁적이며 넘어갔다. 위기가 어느 정도 수습되고 가족 걱정이 수그러들자, 숙의 예약에 아랑곳없이 더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나는 그를 걱정하지 않았다. 모르긴 몰라도 그는 전과 같이 ‘자알~’ 살고 있을 터이기 때문이었다. 지난번보다 훨씬 더 심각한 위기가 오거나 자기 문제를 문제 삼게 되지 않는 한, 무심중에 살아가는 삶을 지속할 터였다. 그런 삶이 마냥 나쁘지만은 않기도 하겠다. 저 찰스 슐츠가 말한바 ‘인생에는 목적도 의미도 없다. 그냥 나는 행복하다.’ 정도로 달관했다면 말이다. 그게 어디 쉽겠나. 2년가량 지난 어느 날 갑자기, 그가 숙의를 청해왔다. 그는 앉자마자 스스로 입을 열었다.   

   

“별로 아는 바 없는 제가 생각하기에도 지금 우울증 상태인 듯합니다.”     


그가 예시하는 증상들은 틀림없이 우울장애 전형적인 표지였다.  


         

나는 분명히 중대한 갈림길에 서 있었다. 판단도 선택도 실행도 모두 어려웠다. 모든 곤경 근원은 하나, 여태까지 삶 자체가 거대한 문제이며 그 앞에 마주 설 주체는 오직 자신뿐임을 인정하지 못한 바로 그 문제였다. 0은 내게 자기 딸아이 어렸을 때 잠 깨우던 방법을 들려주었다: 일어나야 할 시각 5분 전에 딸아이 방으로 조용히 들어간다. 귓속말로 다정하게 별명을 부른다. 그리고 딱 한 마디만 한다. 4분 57초 동안 뒹굴뒹굴! 그는 이어 나를 향했다.   

   

“뭘 해야 한다는 당위 의식을 내려놓습니다. 현재 아무것도 할 수 없어 도망가고 싶어 하는 자기 심리적 실재를 있는 그대로 인정합니다. 그리고 딱 사흘 동안 뒹굴뒹굴할 여유를 스스로에게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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