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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용원 Apr 13. 2024

나나보조 이야기 207

-허울 대한민국 부역 서사-

팡이실이 숙의 서사 30 


         

고군(孤軍예찬    

 

6-6은 뭐랄까, 어떻게도 명쾌히 규정할 수 없는 심각한 장애를 지닌, 그러나 너무도 정상적인 언행 일부를 전유한, 매우 독특한 문제 인물이었다. 미국 정신의학 협회(APA)가 펴내는 정신장애 진단과 통계 편람(DSM-5)으로는 포착할 수 없는 그만이 지닌 증후군-가벼운 정도 편집형 조현병, 반사회성 성격장애, 간헐적 폭발장애, 공황장애, 사회적 인지장애와 같은 유형이 뒤섞여 있으나, 이들 모두로도 포괄이 안 되는-에 사로잡힌 채 세상 변방에서 나름 분투하며 사는 사람이었다.  

    

얼핏 보아서는 과도하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기 힘든 진지함, 성실함, 정중함, 의로움을 지니고 있다. 몇 번 대화를 나누고 나서야 그 언행이 어른 흉내를 내는 아이 짓과 같다는 사실을 알아차릴 수 있다. 상황과 어울리지 않게 부풀려져 있으며, 기묘하게 어긋난다는 사실을 그 자신은 전혀 인지하지 못한다. 그런 진지함, 성실함, 정중함, 의로움을 상대방이 수용하지 않는 상황이 닥치면 급작스럽게 그 모두를 한꺼번에 부수어 버린다. 같은 일이 거듭 반복되면서 사회 공동체로 본격 진입하는 일 자체가 무한히 유예되는 상황이었다.    


       

제 비극은 아주 어린 시절 시작되었습니다. 저는 실내 구조가 2층으로 되어 있는 집 2층 난간에서 떨어지는 사고를 겪었습니다. 심리적 충격은 물론이고 뇌를 다쳤을 가능성이 매우 높은 상황임에도 부모는 제가 울음을 멈추자, 걱정도 멈추었습니다. 이후 제가 보이는 상식 밖 언행을 부모, 특히 아버지는 질병 아닌 윤리 차원에서 응대했습니다. 아버지는 바로잡아야 한다며 난폭한 매질을 가했습니다. 저는 그때 그 공포를 너무도 선명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제 말이 병적 과장을 포함한다고 하더라도 그 자체가 이미 오랫동안 지속되어 온 반응이므로 무시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성인이 된 다음에도 아버지가 큰 소리로 욕설을 퍼붓거나 때리는 시늉만 하면 저는 오직 이 말만을 되뇌었습니다.    

  

“살려주세요!”   


       

겁먹은 강아지가 크게 짓는 법이다. 6-6은 사소한 충돌에도 격분 반응을 절제하지 못했다. 극단적인 언어로 맞서는 일은 기본이고 걸핏하면 경찰에 신고했다. 심지어 아버지를 신고한 적도 있었다. 이런 경험이 반복되면서 그에게는 반사회적 경향이 쟁여졌다. 반사회적 경향은 그가 비윤리적이어서가 아니라 사회 전반을 향한 나름 의로운 비판의식을 지니고 있기에 생겼다. 물론 정확한 사회적 지식에 터 하지 않았으므로, 많은 부분이 비판 아닌 비난일 수밖에 없었다. 이런 모순들이 주위 사람들을 다양한 불편으로 몰아넣었다.   

   

수많은 사람과 숙의로 치유해 오면서 이 청년처럼 힘들고 조심스러운 적도 드물었다. 나는 우선 그의 정서를 ‘있는 그대로’ 느끼고 알아차리고 받아들임으로써 신뢰를 구축했다. 그의 입에서 ‘제 말을 끝까지 다 들어준 분은 선생님이 처음입니다.’라는 말을 들은 뒤에야 객관적인 분석과 평가를 친절하게 전달해 주었다. 그는 조금씩 서서히 자기 상황과 생활 조건이 어떻게 불화하고 있는지 알아가기 시작했다. 물론 한계는 매우 뚜렷했다. 나는 냉정하게 그 한계를 헤아리고 딱 반걸음만 먼저 나아갔다. 


          

제게 일생의 중대사는 단연 취업 문제였습니다. 저는 나름대로 열심히 정보를 수집하고 학원 다니며 공부했습니다. 필요한 외국어 능력 시험 점수를 확보하고 자격증을 따는 일에 매달렸습니다. 그 일은 0 선생이 도울 수 없었습니다. 면접, 자기소개서 부분은 숙의 시간은 물론 그 외 시간을 따로 내어 도와주었습니다. 특히 자기소개서는 빈틈이 너무 많아 일일이 어휘를 교정하고 비문을 없애고 논리와 서사를 바로잡아 주었습니다. 실패를 거듭하면서 좌절에 빠지기도 했지만, 결국 저는 ㄱ도 지방공무원 시험에 합격하였습니다.  


           

일단 거기까지 6-6과 나는 함께 적응해 갔다. 앞으로 기나긴 세월 동안 그가 사회에서 어떻게 적응해 나갈지 걱정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나는 그가 그 운명에 합당한 길을 찾으리라 믿는다. 내 믿음이 단서를 잡았다. 그에게서 전화가 왔다.   


   

“선생님, 그동안 참 감사했습니다. 이렇게나마 인사를 드리는 것이 최소한의 도리라고 생각했습니다.”   


  

나는 그 ‘도리’란 말을 ‘종자 신뢰’로 번역했다. 오역이어도 오달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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