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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용원 Apr 25. 2024

나나보조 이야기 217

-허울 대한민국 부역 서사-

팡이실이 숙의 서사 40



망상이 어때서   

  

과학이 발달하면 종교는 소멸한다는 담론이 한 시절을 압도했던 적이 있었다. 물론 여전히 그 말을 좇는 자가 있겠지만, 이는 마치 종교가 제시하는 천국이나 극락이 실재한다는 말을 좇는 것과 하등 다를 바가 없다. 종교라는 서사가 인간 공포·탐욕·무지에 터 한 마법적 사유 유희일진대 과학 발달이 아무리 완전해진다 해도 공포와 탐욕까지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 한, 그 소멸은 어림없는 일이다. 마법으로만 ‘해결할 수 있을’ 궁지에 몰린 인간 악조건이 존재하는 한, 인간 종교 의지는 막지 못한다. 마법적 사고는 유아기 고착 또는 퇴행을 의미한다. 유아기 고착 또는 퇴행은 정신적인 질병 상태다. 병식(病識)이 없다. 헤어 나오기 대단히 어렵다. 

    

한의원에 오는 사람 가운데, 온갖 병원, 갖은 요법을 전전하다가 포기하고 맨 나중에 혹시나 해서 찾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 이들은 결코 한의사를 존경하거나 신뢰하지 않는다. 존경이나 신뢰가 있었다면 처음부터 왔을 테니 말이다. 그럼에도 효과는 기적처럼 나타나길 바란다. 금방 변화를 느끼지 못하면 다그친다. 한의사 관지에서 보면 어이없는 상황이다. 0은 이따금 사실을 적시한 뒤 예의를 갖추되 엄격하게 대응한다. 대부분은 그냥 넘어가 준다. 왜냐하면 당사자가 이미 마법적 사고에 빠진 유아이기 때문이다. 종교적 상황인 셈이다. 물론 한의사가 승려나 신부 아닌 선무당 대우 받는 현실이 안타깝긴 하지만, 아픈 아이 앞에서 그 차이는 아무 의미 없다.     

 

20년 넘게 뚜렛증후군에 시달린 9-1이 0을 찾아왔다. 그때까지 0이 경험한 뚜렛증후군 가운데 가장 심각한 상태였다. 그야말로 틱 증상 백화점이었다. 강도도 심해 특정 동작의 반복 때문에 염증이 유발되고, 피부가 변형될 지경. 당연히 자율신경 실조, 사회불안, 강박, 우울장애가 결합해 있었다.    

  

9-1은 미리 자기 상황을 알리는 글을 써서 가지고 왔다. 증상을 10가지로 분류하여 적었고, 그동안 받은 치료도 6가지로 나누어 적었다. 맨 마지막에 질병으로 말미암아 잃은 바를 조목조목 적었는데, 그가 얼마나 자신의 문제를 부여잡고 해결하려 애썼는지 눈시울이 뜨거워질 지경이었다.   

   

0은 전혀 다른 방법을 쓸 수밖에 없었다. 효과 없었던 각종 방법을 그가 다시 한다고 해서 될 일이 아닐 테니 말이다. 차분히, 세계가 비대칭 대칭으로 구성되고, 그 자발적 깨뜨림으로 운동한다는 진실부터 전하기 시작했다. 그다음, 자신이 처한 현실을 있는 그대로 느끼고 알아차리고 받아들이도록 이끌어갔다.   

   

어떤 환자보다도 상담에 보이는 9-1 반응을 예의주시했다. 그가 묵직한 신뢰를 두지 못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원인은 두 가지 정도다. 우선, 그 역시 종교적 상황에 있었다. 기적 같은 효과가 빨리 나타나야만 했다. 잔잔한 대화가 성에 차지 않았다. 그다음, 자신이 처한 현실을 있는 그대로 느끼고 알아차리고 받아들이라는 말을 수용하기 어려웠다. 20년 동안 오매불망 제거되기만을 바라던 부정적 현실을 어찌 평가 없이 인정하란 말인가. 사실 0도 정서적으로는 십분 공감하는 터였다. 오죽하면 여북하겠나. 마법을 쓸 수만 있다면···내가 예수 그리스도라면···그 생각 간절했다. 그럴 수 없기에 담담하되 극진한 대화를 이어 나아갔다. 다른 길은 없었다.   

   

9-1은 견디지 못했다. 그 잘못이 아니다. 0 잘못도 아니다. 모두에게 잘못 없지만 어긋나는 일이 훨씬 더 많은 법이다. 치료자 0으로서는 이 일을 의당 자기 잘못이라고 새긴다. 위장된 교만일 수 있지만, 망상이라도, 죽는 날까지 ‘입을 댄즉 병이 나았더라.’라는 풍경을 꿈꾸어야 한다. 그 꿈마저 꾸지 않는 의자 삶이란 얼마나 꿉꿉한가. 



         

좌 정성 우 기획  

   

부모가 자식을 망치는 현실은 드라마에서 과장되게 보여주는 서사 이상으로 참혹하다. 온 정성을 다해 양육한다고 한 행동이 자식을 성격장애로 몰아넣는다. 손톱만큼 악의도 없이 선의에서 한 평범한 훈계가 자식을 우울장애로 쑤셔 박는다. 정도 차이가 있을 뿐 오늘을 사는 부모 그 누구도 이런 실패 가능성에서 놓여나기 어렵다.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 없이 복잡하게 얽히고 널브러진 삶과 정신 문제로 시달리는 청년 초기 여자 사람 9-2, 그는 자신을 이런 상태에 가둔 장본인으로 부모, 특히 아버지를 지목했다. 

     

아버지는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아는 뜨르르한 엘리트다. 고급 엘리트답게 아버지는 9-2에게 완벽한 양육을 시도했다. 장난감 하나를 사주어도 교육적 의미와 거기에 도달하는 알고리즘을 염두에 두었다. 청소년기에 외국 유학을 보내 세계시민 의식을 함양하도록 이끌었다. 전 지구적 명망가를 꿈꾸도록 격려했다.  

    

이 과정은 9-2에게 과연 어땠을까? 그는 유학지에 도착하자마자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했다. 심지어 조현병 진단까지 받았다. 의사들은 알 수도 없는 희한한 이름을 지닌, 수도 없는 온갖 약을 처방했다. 그는 결국 학교를 그만두고 돌아와야 했다. 물론 아버지는 분노했다. 자기 정성과 기획이 낳은 어처구니없는 결과를 받아들이지 못했기 때문이다. 

     

돌아온 9-2는 더욱 큰 혼란에 빠져들었다. 전보다 더 적응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정신과 치료를 받기 위해 이런저런 의료기관을 전전했음은 물론이다. 그가 0에게 보여준 진단명은 실로 놀라웠다. 조현병, 분열성성격장애,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 양극성장애, 강박장애, 편집장애, 우울장애, 자폐스펙트럼, 공황장애···제국과 식민지 백색 정신의학이 그에게 한 짓은 대체 무엇인가? 수많은 약물 이름을 적어왔다. 병이 그를 이렇게 만들었는지, 약물이 그를 이렇게 만들었는지 참으로 알 수 없는 지경이었다. 

     

9-2가 매우 심각한 상태임은 너무나 아픈 사실이었다. 엄밀하게는 숙의랄 수 없는 시간이 허다히 흘러갔다. 그가 0과 함께하는 시간을 한사코 붙잡고 있었으므로 가능한 만남이었다. 문제는 부모, 특히 아버지였다. 아버지 문제는 결국 돈 문제였다. 아버지는 치료에 그 정도 돈 들어간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 없었다. 숙의는 강제 종료되었다.

      

그 뒤 9-2가 어찌 살아가는지 0은 알지 못한다. 아마도 여전히 그렇게 자기 존재 허심을 감싼 채, 자기 경험 후순위에서 서성이며 살고 있으리라. 아무에게도 고의가 없었는데, 한 사람이, 살았으나 죽은 상태로 떠돌고 있다. 인간만이 그려내는 살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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