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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용원 Apr 24. 2024

나나보조 이야기 216

-허울 대한민국 부역 서사-

팡이실이 숙의 서사 39 


         

우물우물 

    

“왜 죽지 못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수많은 우울증 환자에게서 왜 사는지 모르겠다는 말을 들어온 내게 반 바퀴 구른 이 말은 정서적 현기증을 자아내기 충분했다. 실제로 8-7은 수없이 자살을 기도했다. 두 번 죽음 그림자를 힐끗 보기는 했으나 ‘아쉽게도’ 번번이 실패했다. 사는 일도 죽는 일도 그에게는 아무 의미 없이 어렵기만 한 무엇이었다. 그는 아주 천천히 우물우물 말했다. 


         

생애 초기부터 내게 어머니는 없는 사람이었다. 5세 때 마침내 어머니는 머나먼 나라로 유학을 떠났다. 공부를 마치고 돌아온 뒤에도 일을 계속했으므로, 어머니 부재 상태는 전혀 변함이 없었다. 어머니가 사실상 나를 버렸듯, 나는 사실상 내 삶을 버렸다. 20살 이후, 단 한 순간도 삶에 애착을 품어본 적이 없다.  

    

어머니에게서 찾지 못한 따스한 인간관계를 찾으려고 연애를 여러 번 시도했다. 실패할 수밖에 없는 병든 연애였으므로, 나는 거기서도 언제나 버려졌다. 헌신할수록 비참하게 ‘까였다.’ 까일 만큼(!) 헌신하는 데도 트라우마가 작용했다. 중학생 때 나를 좋아하던 학생이 나를 만나러 오다 내 눈앞에서 교통사고로 죽었다. 깊은 죄책감의 또 다른 진원지였다. 그런 취약점을 간파한 상대방은 가차 없이 포식자로 군림해 주었다. 

     

상호작용으로서 따스한 삶을 나는 마침내 포기해 버렸다. 어느 날부터 나는 이성 속옷, 액세서리, 소지품 따위에 집착하기 시작했다. 심지어 훔쳐서라도 지니려 시도했다. 정서적 충동이 격렬히 휘몰아칠 때는 거의 발작 수준이라 의식이 소실되기도 했다. 정신을 차리고 보면 파출소에 잡혀 있는 경우도 드물지 않았다. 그럴수록 내 마음은 닫혀만 갔다. 삶은 그저 시간에 밀려 떠내려가는 맛도 영양도 없는 건더기에 지나지 않았다. 와중에 내가 알 수 없는 어떤 경로를 통해 숙의 치윤지 뭔지 한다는 0을 만났다.  


         

나 또한 우물우물 8-7에게 제안 하나를 했다.  

   

“음···기왕 없어진 김에 맛이 없다, 영양도 없다···뭐 그런 생각조차 싹 다 거두면 어떨까요?”   

   

그러니까 ‘그냥’ 한번 살아보기로 하자는 말이었다. 어차피 없는데, 애써 있다, 있다 하는 짓만큼이나 없다, 없다 하는 짓도 부질없지 않냐, 그런 이야기였다. 그는 물끄러미 나를 봤다, 멍하니 허공을 봤다, 하더니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한 주 뒤에 와서 8-7 먼저 말을 꺼냈다. 우물우물하던 말에 살짝 속도가 생겼다. 

     

“선생님, 해보고 싶은 일이 생겼습니다.”  

 

만세!!!   


        

나는 얼마 뒤, 프랑스로 건너갔다. 해보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서였다. 돌아가면 찾아간다, 어쩐다, 따위는 약속하지 않았으니 그다음 0과 숙의하는 일은 내 알 바 아니다. 다만 그와 함께 일으킨 종자 변화를 간직하고 있는 한, 나는 더 이상 우물우물하지 않을 테다. 우물우물하면 우울 우울하다는 사실을 아니까. 


         

[후일담] 10년 뒤 나는 8-7을 만났다. 그는 우물우물하지 않았다. 그는 그때 일을 전혀 기억하지 못했다. 기억이 그의 경쾌하고도 육중한 삶에 금을 낼까, 싶어 나는 시침 뚝 따고 우물우물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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