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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용원 Apr 23. 2024

나나보조 이야기 215

-허울 대한민국 부역 서사-

팡이실이 숙의 서사 38  


        

코 자  

   

무엇에도 애착 끊은 표정은 저렇구나, 싶은 작고 깡마른 얼굴을 한 8-6이 들어섰다. 그 걸음걸이는 어쩐지 그 자체로 변명처럼 느껴졌다. 아니나 다를까 공황장애 병력이 있고 우울증도 심했다. 무엇보다 문제는 불면증이었다. 그 말에 따르면, 지난 몇 년 동안 2~3시간 이상 자본 적이 없었다. 그런 그가, 불현듯 생각났다는 듯 말했다.  

    

“비염 치료를 받은 뒤부터 불면증이 더 심해졌습니다.”    

 

아뿔싸! 일종의 의료사고다. 내가 진단한바, 그가 앓는 비염은 전형적인 알레르기비염이 아니었다. 혈관운동신경성비염이라는 긴 이름의 특별한 비염이었다. 제국주의 백색의학 임상 실제에서 이 둘을 명확히 구분하는지 자세히 알 수는 없지만, 아마도 대부분 알레르기비염으로 진단하고 항히스타민제를 처방하리라. 이 방법이 증상을 억제할 수는 있겠지만, 제대로 된 치료는 아니다. 이 방법을 쓰면 나타나는 부작용 가운데 하나가 바로 불면증이다. 면역학의 이치상 그럴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대부분 백색 임상의는 알지 못한다. 나는 이 이야기를 그에게 상세히 해주었다. 제대로 된 지식 전달 자체가 치료 한 축이기 때문이다. 당연히 항히스타민제 원리와 다른 한약을 처방했다.   

   

내가 지어 보낸 한약 치료 원리는 우울장애 치료와 같은 기반을 지녔다. 무얼 의미할까? 혈관운동신경성비염과 우울증이 본질상 서로 맞닿아 있는 병이란 얘기 아닐까? 이 통찰은 나 자신 병력과 관련 있다. 나는 우울증 때문에 혈관운동신경성비염을 앓았다. 15년 이상 치료가 안 되어 고생하던 40대 후반, 양방 병리학책에 첨부된 소논문을 읽다가 벼락같은 한 문장을 만났다.  

    

“혈관운동신경성비염은 대개 슬픔·원망 등 감정 요인이 작동하므로, 심리치료 말고는 현재 의학 수준에서 마땅한 치료법이 없다.”

     

그제야 나는 여태까지 했던 노력이 왜 부질없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즉시 나는 실천에 옮겼다. 애써 다른 전문가를 찾을 필요를 느끼지 못했기 때문에, 스스로 숙의 치유를 진행했다. 칠흑 같은 밤 어둠 속에서 침묵과 절규를 가로지르며 극진히 자기 대화 나누기를 서너 시간, 이윽고 희붐하게 동이 터오고 있었다. 어느 한순간 문득, 연거푸 나오는 재채기·엄청난 양의 맑은 콧물·코 막힘·가려움·미열·두통 증상들이 아침 해 뜨면 물안개 사라지듯 없어지는 풍경을 목격하게 되었다. 이내 소름 돋는 느낌이 와락 달려들었다. ‘아, 이제 병은 없구나!’ 그렇다. 그것으로 내 혈관운동신경성비염 긴 역사는 막을 내렸다. 

     

임상 현실에서 혈관운동신경성비염에 심리치료가 필요하다는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일 의료인은 아마 거의 없을 듯하다. 나는 내 경험을 토대로, 진단 과정에서 혈관운동신경성비염인가, 아닌가를 면밀하게 살핀다. 

   

거꾸로 접근하는 진료도 필요하다. 마음 병을 앓고 있는 사람을 진단할 때 코에 주의를 기울이는 일이다. 특히 우울장애일 경우는 이 진단을 빠뜨릴 수 없다. 문진과 경추압진(頸椎壓診-목뼈를 손가락 끝으로 누르는 진단 방식-)을 하면 거의 완벽하게 알 수 있다. 앞서 말한 대로, 우울장애와 혈관운동신경성비염은 ‘혈통’이 같은 병이다. 기억 속에 저장된 아픈 감정을 되살려내어 마음 장애를 유발·지속·증폭시키는 주체가 후각이라는 사실을 생각할 때,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이치가 아닐까. 이런 이치를 깨닫지 못하고 오랫동안 우울장애와 혈관운동신경성비염을 따로 생각하면서 시달려 온 전형적인 예가 바로 나 자신이다. 내가 자기 숙의로 혈관운동신경성비염을 치료한 일은 결국 우울장애의 치료를 겸한 일이었다.  

    

바로 이 이치를 나는 8-6에게 그대로 적용하였다. 그는 자신에게 과도하게 집착하는 어머니가 주입한 근거 없는 기준으로 말미암아 어린 시절부터 자기혐오를 맹렬히 겪었다. 외모·학교·전공 뭐 하나 내세울 게 없다는 생각이 끊임없이 반복해서 일어났다. 이런 이야기를 속 깊이 나누며, 그는 점차 불면과 비염과 우울의 동굴에서 빠져나왔다. 동굴로 되돌아갈 일이야 없겠지만 혹 그럴 때라도 설마 변명처럼 걷지는 않겠지요, 8-6씨? 



     

* 혈관운동신경성비염에 관한 이야기 일부는 반제국주의 의학 서사 중 <비학은 반제국주의 마그나카르타다>에서 가져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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