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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용원 May 15. 2024

나나보조 이야기234

-허울 대한민국 부역 서사-

숲이 반제국주의 통일전선 주축이다1  


   

숲으로 가는 길  

   

2022년 후반부터 2023년 전반까지 내게 일어난 각성과 회심은 삶의 근원적 지점을 통렬하게 균열시켰다. 생애 마지막 구간에 이르기까지 남이 쓴 글을 주해하는 일에 매달려 있는 나를 다른 관지에서 보게 만들었다. 그 남은 거의 모두 제국 엘리트고 나는 식민지 변방 이류지식인이라는 진실을 깨닫게 했다. 마침내 내가 무지렁이 부역자에 지나지 않는다는 진실 앞에 무릎을 꿇렸다. 이런 과정에서 나는 제국주의와 식민지 우리 진경을 섬밀하게 들여다볼 수 있었다.   

   

적잖은 시간이 흘러갔다. 그사이 내가 숲에 드나드는 일은 변함없이 계속되었다. 물론 목적에는 변함이 있었다. 본디 목적에 반제국주의 통일전선 주축으로 숲을 모시는 일이 더해졌다. 숲은 도구가 아니고 동등한 소통 주체라고 생각하는 내 본디 생각에다 숲 또한 제국주의에 수탈·살해당하는 식민지 생명이므로 마땅히 제국주의에 항거하는 주체여야 한다는 깨달음-물론 이는 아미타브 고시에게서 받은 영감이 크게 작용했다-이 보태졌다. 나는 그렇게 숲을 걸었다.   

   

숲을 걸은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그때그때 본문으로 들어간 경우도 많지만, 독립된 에세이로 남은 글이 더 많은데, 이 글들 또한 전체 여정에서 빼놓을 수 없이 중요한 부분이다. 아니, 숲 이야기가 빠진 『나나보조 이야기』는 관념적 공부에 지나지 않을 테니 내 방식 실천으로서 더욱 중요한 가치가 있다고 해야 한다. 의도된 구성도 없고 당시 쓰던 글 내용과 직접 연관되지 않지만 서로 다른 맥락에서 어떤 흐름으로 함께 흘러가는지 톺아봄으로써 여러 갈래 미래를 펼친다.  



백악 단상


추적추적 봄비가 내리는 일요일 오전, 백악산으로 향한다. 비로 말미암은 뜻밖의 여정이다. 능선 따라 백악마루로 가지 않고 남쪽 사면으로 접어든다. 임기 말 문재인 전 대통령 내외가 자상하게 챙겨 개방한 길이라 한다. 지나치다 싶을 만큼 안전과 편의에 신경 쓴 흔적이 역력하다. 틈틈이 버섯에 예를 표하며, 주위 숲과 내려다보이는 도시 풍경을 번갈아 본다. 얼마쯤 가다가는 아예 우산을 접어 넣고 가랑비와 뒷비를 맞으며 간다. 정취랄까, 예의랄까. 

    

청와대 전망대에 이르러 심호흡하고 고요히 선다. 청와대, 경복궁, 광화문 광장, 세종대로, 목멱, 저 멀리 비구름에 가려진 관악까지 이슥히 들여다본다. 형언할 수 없는 감정이 복받쳐 오른다. 생애 마지막 공부라 여기며 공들인 식물 공부가 필연적으로 제국주의, 부역 생태 서사 공부로 흘러가면서 숲에 드나드는 목적이 달라진 탓이다.   

  

백악 풍경에 느끼는 감사함과 부역 정권을 내려다보는 참담함이 뒤엉켜 한동안 우두커니 서 있는다. 그냥 내려올 수는 없다. 곡진히 사납게 빌어마지않는다. 특권층 부역 집단이 잡은 권력을 향해 검정 부적 두 장 날린다. 한결 홀가분해져 숲을 나온다.   

   

하늘은 식민지 회색으로 여전하지만, 비가 멈춘다. 청와대 둘레길 끄트머리에 이를 즈음 신라말을 구사하는 패거리를 만난다. 그 고주파 폭력을 막아내지 못하고 서둘러 청운동으로 내려온다.     


허름한 식당에 들어 매운 국물 시키고 막걸리부터 들이켠다. 이름 모를 막걸리 맛이 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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