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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용원 May 23. 2024

나나보조 이야기 241

-허울 대한민국 부역 서사-

숲이 반제국주의 통일전선 주축이다8   


       

직진새 길 만들기   

  

이런 풍경일 줄은 차마 몰랐다. 비교적 이른 시각에 아무 작정도 하지 않은 채 출발해 무심히 들어선 도봉산 도봉천 계곡은 등산객이라기보다 행락객이라 해야 할 사람들로 너무 소란스럽고 너저분했다. 산에 들어서기도 전 냇가에는 벌써 돗자리를 깔고 삼삼오오 둘러앉아서 소주에, 삼겹살에 거나한 판이 벌어지고 있었다.  

   

나는 그들 앞을 지나 길이 끊어진 곳에 다다랐다. <출입 금지> 표를 매단 밧줄이 내 앞을 가로막았다. 망설이지 않고 나는 밧줄을 넘어 직진했다. 물과 바위, 철조망과 콘크리트 벽이 계속해서 돌아가라 윽박질렀지만 나는 그대로 앞을 향했다. 마침내 제법 높다란 다리가 보이고 그 다리가 이어주는 큰길이 눈에 들어왔다.   

  

큰 계곡 길은 더욱 소란스럽고 너저분했다. 안전하게 잘 정돈된 길을 걷는데도 왜들 그렇게 스틱으로 땅을 찍어대는지, 산에 와서까지 구태여 돈 얘기를 떠들썩하게 지절거려야 하는지, 여성끼리만 있다 싶으면 미팅하자고 들이대는 놈팡이 표정은 왜 그리 게걸스러운지···. 능선 코밑에 이르러서야 고요가 깃들기 시작했다. 

    

능선에 이르자마자 나는 원통사를 거치지 않고 무수천 계곡으로 바로 가는 길을 찾았다. <출입 금지> 표를 매단 밧줄이 내 앞을 가로막았다. 망설이지 않고 나는 그 길로 들어갔다. 물론 처음부터 길을 잃었다. 스마트폰으로 방향을 확인하며 직진했다. 이번에는 절벽에 가까운 경사와 바위 낭떠러지가 돌아가기를 강요했다. 


    

되돌아오고 다시 나아가기를 반복했다. 중심 시각으로 헤매다 비 중심 시각으로 발견한 버섯들을 사진에 담을 때, 또 때늦은 각성이 들이닥치며 안심했다. 아, 이들이 나를 불렀으니 갈 길도 알려주겠구나. 바위틈을 이리저리 빠져나오다 보니 길 아닌 듯하나 인기척을 간직한 소로가 나타났다. 대뜸 어디쯤인지 알아차렸다. 

    

원통사로 올라가는 길과 갈라지는 곳에 이르러보니 길을 잃었다기보다 아예 길이 지워진 상태임이 틀림없었다. 원통사 쪽은 누가 봐도 길처럼 생겼는데 내가 내려온 계곡 꼭대기 길로 진입하는 초입은 전혀 길처럼 보이지 않아 사람들이 쉽게 들어서지 못함으로써 이곳저곳 인적이 지워진 결과였다. 길이 지닌 운명 아닐는지.   

  

길만 그렇지는 않다. 우리 삶도 그렇다. 누군가 먼저 살아갈 때 다른 누군가가 인기척을 듣든지 인적을 보든지 뒤따라가야 공생 서사가 형성돼 간다. 먼저 사는 사람은 더불어 살 만한 삶을 살아야 한다. 뒤따라 사는 사람은 먼저 산 사람에게 고마워하며 그 삶을 뒤 사람에게 이어주는 삶을 살아야 한다. 살림 없이 삶은 없다.  

   

이 단순한 이치가 무너질 때 길이 사라지듯 인간 공동체도 사라진다. 대한민국을 공동체라 할 수 있는가? 특권층 부역 집단이 틀어쥔 사회 모든 분야가 식민지 본성을 중첩적으로 지니고 있다. 본디 길을 찾는 일이 없는 길을 새로 내는 일과 같은 숲으로 우리는 깊숙이 들어왔다. 길 없는 숲에서 바른 방향으로 직진해야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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