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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용원 May 28. 2024

나나보조 이야기 245

-허울 대한민국 부역 서사-

숲이 반제국주의 통일전선 주축이다12 


          

관악에서 백악까지   

  

관악산 마지막 골짜기 길이다. 엄밀히 말하면 삼성산과 호암산을 가르는 북쪽 골짜기에서 들어가 남쪽 골짜기로 나오는 길이다. 북쪽 골 물은 도림천 작은 지류라 달리 이름이 없고, 남쪽 골 물은 안양천 지류지만 제법 커서 ‘삼막천’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다.   

   

지도상으로는 북쪽 골짜기 마지막 부분에서 직진해 넘어가지 않고 좌우로 갈라져 들어가다가 능선길을 만나면 돌아와 넘게 돼 있다. 늘 하는 방식을 따라 나는 지도에 없는 내 길을 만들며 직진했다. 골 물을 따라간다고 생각했지만, 이번에도 가다 보니 결국은 능선을 따르고 있었다. 구태여 돌아갈 필요는 없지만 능선을 좋아하지 않는 취향상 아쉽고 또 아쉬웠다. 반전이 시작됐다. 능선임에도, 대부분 소나무 군락지임에도, 의외로 많은 버섯이 반겨주었다. 이들이 나를 불렀구나, 그리 여기지 않을 수 없을 정도였다.  

    

남쪽 골짜기로 내려오는 길도 지도에는 있지만 거의 폐쇄되다시피 한 소로였다. 인적이 전혀 없었다. 갖가지 버섯이 왕국을 이루고 있었다. 정오쯤 되자 갑자기 게릴라 폭우가 숲을 뒤덮었다. 온몸을 적시는 정도가 아니라 숨쉬기를 가로막는 듯한 분위기가 휘몰아쳤다. 커다란 활엽수 아래로 들어가 쓰나 마나 한 우산이지만 얼굴만이라도 가리자, 하고 한참을 서 있었다. 포장도로 가까이 이르자 비가 서서히 잦아들었다. 관악역 근처 식당을 찾아 들어갔다. 내처 걸을 수는 없겠다 싶어서였다.     

 

장마철 일요일이라 그런지 식당은 썰렁했다. 40대 하나와 20대 둘 남자 사람들이 구석 탁자에 앉아 가지고 온 양주를 마시며 이야기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대화 주도권은 40대가 쥐고 있었는데, 주식 하는 기법을 전수하고 있었다. 대학생으로 보이는 20대 초반 둘은 인생을 걸었다는 표정으로 그 이야기에 집중했다. 그 말들은 하나같이 내 귀를 통과하지 못하고 되돌아갔다. 숲속에서 버섯이나 만나고 나온 이 물에 빠진 늙은 생쥐는 얼마나 물색없는 동물인지···.     


전철로 이동해 한강 저 건너편 백악산으로 다시 들어갔다. 장마 탓에 늘 붐비던 그 길도 인적이 끊겼다. 홀로 한 바퀴 돌아 청와대 전망대에 섰다. 언제나 그렇듯 마음이 납덩이처럼 무겁다. 리투아니아 가서 아무 짓이나 막 해대는, 우크라이나 가서 아무 말이나 막 해대는 두 인간을 축원하며 여덟 자 진언 부적 하늘 향해 태우고 손 모으고 고개 숙이고 춘추관 길로 나오면서 다시는 이 길로 드나들지 말자고 다짐했다. 저들 장단에 이런 하찮은 춤마저 추어서는 안 되겠기에 말이다. 북촌 골목길을 이리저리 돌아 단골 음식점에 들어서니 여섯 시, 집을 나선 지 여덟 시간이 훨씬 지난 시각이었다. 

  

  

막걸리 한 대포로 해갈은 했지만, 무지렁이 부역자 인생 고뇌를 해결할 길이 보이지 않아 막걸리가 더 들어가도 국시가 들어가도 헛헛하기만 했다. 이렇게 금방 일어나세요? 묻는 점장에게 웃어 보이고 천천히 걸어 광화문으로 나왔다. 다시 똑같은 밤이 시작될 무렵, 밤의 대통령이 다리 꼬고 앉아 있는 건물 맞은편에서 버스를 탔다. 취기가 벌써 가셨으니, 밤이 길겠구나.  

   

   

독수리 타고 백악으로   

  

늙어감이 스스로 드러내는 증후 가운데 하나가 새벽잠 없어지는 사건이다. 일요일 새벽 네 시도 채 되지 않아 홀연히 잠에서 깨어 돌연히 떠오른 한 생각을 붙든다: 오늘은 산 숲이 아닌 능 숲으로 가야겠다. 여주 세종대왕릉으로 가자. 교통편과 걷기 경로를 탐색하며 아침이 되기를 기다린다. 아내 방에 있는 컴퓨터로 좀 더 정밀하게 알아봐야 한다.    

  

날씨가 심상치 않다. 바람이 세차게 불고 비가 거의 폭우 수준으로 내린다. 일기예보를 보니 오후까지 이런 상황이 계속된다고 한다. 레인부츠를 꺼내 놓고 2주 연속 숲속에서 게릴라 폭우를 견딘 사실에 유념한다. 문제는 지금 부는 바람이 먼 가지지만 태풍이라는 데 있다. 아내가 영릉행을 반대한다. 숲으로 가는 일이 고행은 아니잖아요. 그러게나···.   

   

나는 발길을 돌려 광화문 교보로 향한다. 관심 분야는 시중에 읽을 책이 없어진 지 이미 오래지만, 두루 둘러보자, 하고 간다. 인문 신간 진열대에서 리베카 솔닛이 돌연 튀어나온다. 얼른 집어 들고 보니 그 밑에는 다른 책이 쌓여 있다. 아마 누군가 잊고 간 모양이다. 한참 기다리다가 선물이라 여기고 계산대로 간다. 인연은 이렇게도 찾아오니 말이다.  

   

지난주에 이어 다시 백악으로 향한다. 백악은 내 제당이기도 하려니와 모든 길이 살뜰하게 보살펴져 있어 험한 일기에도 안전히 걸을 수 있다. 역시 인적이 거의 없다. 청와대 전망대로 가는 일방통행로를 거슬러 간다. 비 그치니까 시야가 말쑥하게 열린다. 일망무제 들어오는 발아래 도시 풍경이 깔끔하다. 깔끔도 찰나, 따끔한 살갗 느낌이 들이닥친다.    

 

아, 이 전경은 식민지 구도다. 백악산 앞 청와대, 청와대 앞 경복궁, 경복궁 앞 조·중·동, 조·중·동 앞 관악산. 이 축을 둘러싼 기괴한 반역사적 빌딩 숲이 자연 숲을 전방위로 밀어내고 암 덩어리처럼 들어차 있다. 빌딩 숲을 차지한 특권층 부역자가 ‘대일민국’ 소유주다. 그 가운데서도 강남 빌딩 숲을 분점한 과두가 사실상 토건 대일 재벌 왕회장이다. 

    


망연자실 내려다보다가 마음 모아 ㅅ·ㄱ·ㅍ·ㅁ·ㄱ·ㄴ·ㅍ·ㅁ· 참소리 “축원”을 올린다. 인간 아무도 듣지 못했지만, 비인간 누구나 들은 이 비나리가 허공에 그저 흩어지지는 않음을 새겨둔다. 비와 땀으로 몸까지 정화했으니 이제 숲을 떠난다. 떠나기로 하고 들어온 숲이며 되들어오기로 하고 떠나는 숲이다. 순례는 계속된다. 내가 삶을 거둬들일 그때까지.   


    

*제목에 있는 독수리는 태풍(2023-5) 이름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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