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회는 후. 회.

-숙의의학 소설-

by 강용원


북아메리카 원주민 영혼이 깃들었을 법한 인상을 풍겨내는 ㅅㅌ가 들어섰다. 손대지 않아 다소 중성적인 이미지가 나오지만, 균형 잡힌 이목구비 선이 기본적으로 수려한 얼굴임을 알려주고 있었다. 그 입에서 우울증이라는 말이 흘러나오기까지 ㅂㅇ는 그가 온 이유를 잠시 잊고 있었다.


“저는 가방끈이 길지 못한 사람입니다. 제 능력 문제가 아니었음은 물론입니다. 그 사람은 명문대학을 나왔습니다. 저희 결합이 한참 기울어진 일이라고 대놓고 말하는 주위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두 사람 사이에 문제가 생기면 으레 가방끈 길지 못한 제 탓이라 간주하곤 했습니다. 그 사람 부모는 더 말할 나위도 없었습니다. 기본 예의조차 서슴없이 뭉개는 게 다반사였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그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통 큰 희생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명문대 출신이라는 자랑과 사뭇 어울리지 않는 쌍스러운 폭언을 퍼부을 때도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그는 생업을 규모 있게 꾸리는 데에 미숙했습니다. 저희의 충돌은 매우 잦았습니다. 물리적 폭력이 동원되기도 했습니다. 대화는 점점 더 어려워졌습니다. 마침내 저는 우울증 덫에 걸리고 말았습니다.”


가방끈 길이와 무관하게 ㅅㅌ의 생각은 바르고 맑았다. ㅂㅇ는 배우자 면면이 궁금했다. 세 사람이 함께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거의 밤을 새워가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배우자는 소신이 뚜렷하며 진지한 사람이었다. 문제는 유연하지 못하다는 사실이었다. 보수적인 주류 가치관이 자기 배우자에게 가하는 차별을 별로 문제 삼지 않았다. ㅂㅇ는 대화 말미에 그들에게 말했다.


“부부 기품은 그리 대단한 무엇이 아닙니다. 어느 한쪽이 박탈감을 느끼지 않으면 그 부부는 기품 있는 부부입니다. 누구 말이 옳은가, 따지는 싸움에서 결론이 나지 않으면 형평을 고려하는 선에서 마무리하십시오.”

그들 현실 상황에서 형평을 맞추려면, 배우자가 그에게 많은 배려와 양보를 해야 한다는 말을 덧붙였다. ㅂㅇ는 그들과 헤어져 돌아오는 길에 스스로 평가해보았다. 두 가지 점에서 부족함이 있었다.


첫째, 형평이라는 원만한 결과보다 거래라는 치열한 과정을 좀 더 역동적으로 언급했어야 한다. 그가 기울어진 시소 위에 앉아 있는 까닭은 사랑도 결혼생활도 거래라는 사실을 몸으로 깨닫지 못했기 때문이었으니 말이다. 바르고 맑은 생각이 거래에 많은 방해가 된다는 사실을 몰랐으므로, 거래 현실 감각, 전략·전술을 개요만이라도 제대로 전달했어야 일방적 편들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둘째, 거래는 모든 인간관계에서 보편적으로 나타나니까, 시선을 부부 사이에 가두지 말아야 문제에 사로잡히지 않는다는 사실을 말해주었어야 한다. 거래는 부모 자식 사이에서도 남남 사이에도, 그러니까 나와 그 사이에서도 일어나는 일이니까 말이다. 삶 전반에서 일어나는 거래 문제를 인식하지 못하므로 부부 문제만 그렇다고 생각한다. 거기에 과도하게 집착한다. 아이와, 또 나와 거래하면서 어찌해야 형평을 이루는지 일러주었어야 그가 전체적 관점으로 문제를 해소할 수 있다.


그 뒤 이런저런 사정으로 숙의는 장기간 중단되었다. 어느 날 그 배우자가 세상을 등졌다는 비보가 날아들었다. 후회와 자책으로 뒤척이는 나날이 흘러갔다. 이제라도, 남은 그하고라도 거래를 숙의해야 한다고 ㅂㅇ는 생각했다. 배우자 없는 삶에서도 거래는 어김없이 계속되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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