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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용원 Jun 07. 2024

나나보조 이야기 254

-허울 대한민국 부역 서사-

숲이 반제국주의 통일전선 주축이다21   


       

모든 계곡으로 들어가라


새벽에 일어나 방문을 열면 거실 통창 넘어 관악산 푸르스름한 실루엣이 한눈에 들어온다. 허리 접어 인사 올린다. 이로써 하루가 시작된다. 관악산은 여기 사는 동안 내가 깃들 넉넉한 품이다. 시월 초하루 나는 관악산 스무 계곡 중 남은 셋을 걸음으로써 모든 계곡으로 들어갔다. 그중에서 지성소로 삼을만한 곳을 찾았다.   

   

살피재를 가로지르는 능선을 타고 걸어 까치산으로 간 다음 서울 둘레길로 접어들어 갈래 진 소곡들을 더듬어 간다. 첫 계곡은 무당골이다. 입구에 등산로 폐쇄를 알리는 안내 표지가 덜렁대고 거의 사용되지 않는 듯한 화장실이 버티고 있어 영 내키지 않는다. 그렇다고 지성소 찾기를 포기할 수는 없다. 나뭇가지로 거미줄을 걷어내며 깊숙이 들어간다. 가까이에 무당 바위가 있어 그저 무당골이라 이름한 모양으로 영검한 기운은 없다. 인적 끊겼으니 고요히 제의를 수행할 호젓한 곳은 있다. 문제는 정갈하게 느껴지지 않는다는 데 있다. 내 천명은 정화에 우선순위가 있으니 이 문제를 각별하게 신경 쓴다. 

    

돌아 나와 산자락을 타고 다음 계곡으로 향한다. 들어서는 순간 느낌이 좋다. 이름도 없는 소곡이지만 나름 깊어 영롱한 물소리를 낸다. 이따금 사람들이 지나가지만 고요한 편이다. 무엇보다 정갈한 느낌을 준다. 몇 군데 눈길을 끄는 곳 가운데 나름 폭포 형상 풍경이 있어 살펴보니 길가긴 하지만 온욱하다. 그래 여기다.    

 


올라온 길을 도로 내려가려던 계획을 바꾸어 더 올라간다. 정상 직전에서 우회해 능선을 타고 내려가다가 다음 계곡으로 넘어가는 자락 길로 접어든다. 샘방골이라는 이름을 지닌 계곡 입구에 도착해 보니 각종 편의 시설과 사방공사로 풍경이 사납다. 진입 자체를 단념한다. 다시 자락길을 걸어 다음 계곡으로 넘어간다. 소박한 소곡인데 나지막이 소리 내어 물이 흐른다. 그 물에 발을 담그고 중년 여자 사람 둘이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가볍게 인사하고 계곡 이름을 물으니 모른단다. 다음 계곡으로 넘어가는 자락길이 있느냐고 다시 묻자, 손가락으로 한쪽을 가리킨다. 물론 지도에 없는 오솔길이다.    

 

오솔길로 접어들어 조금 걸어가니 밤나무가 나타난다. 방금 떨어진 듯한 토실한 밤알이 있어 당을 보충한다. 저혈당 상태를 살포시 감지해서다. 감사 예를 표하고 더 깊이 숲으로 들어간다. 더 깊이 들어간 것이 아니라 숲을 벗어나고 있었다는 사실을 잠시 뒤에 알아차린다. 갑자기 눈앞에 서울대 관악사 운동장이 나타나서다. 

 

관악사 운동장에서 들어가는 계곡이 ‘관악(산속) 지리(산)’ 계곡이다. 이렇게 해서 관악산 계곡 순례가 끝났다. 이제부터 걸어서 들어갔다가 걸어서 나오는 관악산 지성소를 또 한 축으로 삼아 내 삶과 제의, 인간과 숲을 잇는 일을 계속한다. 북쪽 주산 백악과 남쪽 객산 관악을 반제국주의 전선 공동 주체, 아니 으뜸 주체로 모시고 나, 그러니까 사람 나무가 살아가는 나날을 나는 천명 수행 과정으로 여긴다. 오늘 여기서 이웃해 살아가는 다른 사람들이 이런 삶을 어찌 생각할지 나는 모른다. 그저 인과율 가로질러 공부하고 사유하며 실천해 온 내 삶이 지닌 전체성에 터 잡아 찰나마다 살아갈 따름이다. 꼭. 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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