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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용원 Jun 08. 2024

나나보조 이야기 255

-허울 대한민국 부역 서사-

숲이 반제국주의 통일전선 주축이다22  


        

인간은 숲에서 생겨났다    

 

집에서 나와 까치 능선길을 따라 관악산으로 들어가는 경로는 다소 지루하다. 그러나 내가 서울에서 차를 타지 않고 숲길을 걸어 들어갈 수 있는 큰 산은 관악산뿐이다. 오늘은 그렇게 걸어 아주 많은 사람이 이용하는 등산로를 따라 계곡을 거쳐 능선에 도착한다. 천년송 지나자마자 낙성대역으로 내려가는 능선으로 들어선다. 얼마 가지 않아 오른쪽으로 들어가면 내 지성소 계곡으로 내려가는 길이 나온다.  

    

내려가면서 지난번에 걷지 못한 계곡물 발원지를 확인한다. 물론 발원지는 하나가 아니다. 계곡 갈래를 잘 살피면서 내려오다 보니 또 다른 발원지가 나온다. 누군가 그곳을 보존하려고 석축을 쌓고 들머리 물길을 확보해 놓았다. 사람이 자주 지나는 곳이라 훼손될 염려가 커서 그리 한 모양이다. 숲에 나뒹구는 사람 자취를 극도로 싫어하지만, 이런 손길은 결 다르게 느껴진다. 완전한 야생 숲이 진리는 아니다. 

    

문제는 숲을 행락 장소로 써먹는 인간이다. 내가 지성소 삼은 작은 폭포 위 너럭바위에 남녀 여럿이 앉아 고기 먹고 막걸리 마시며 왁자하다. 도시 오염된 공기와 자동차 소음 속에서 먹고 마시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좋다는 사실을 모르지 않는다. 숲이 다만 그런 도구로 여겨지고 마는 일이 안타까울 뿐이다. 인간은 숲에서 생겨났다. 숲이 인간에게 팡이실이를 가르쳤다. 나무가 인간 직립 본성을 창조했다.    

  

나는 이 진실에 감사하며 먹고 떠드는 사람을 등 뒤로 하여 숲에 큰절을 올린다. 정화수와 잔을 올리고 반제국주의 진언, 그러니까 부역 아이콘을 위한 ‘축원’을 올린다. 인간들 떠드는 소리가 아득히 멀어진다. 흐르는 물소리 가을벌레 소리가 교향악으로 영을 채운다. 숲을 도구 삼은 인간들이 알아들을 수 없는 내 말을 숲은 듣는다. 피톤치드로나 기억하는 인간들이 알아들을 수 없는 나무의 말을 나는 듣는다.   


   

지성소 계곡에서 나와 서울 둘레길을 따라 낙성대로 향한다. 세 번째 찾은 음식점에서 간단히 점심을 먹는다. 맛있게 먹은 다음 계산을 하려는데 주인 여자 사람이 말을 건넨다. “선생님, 참 단정해 보이십니다. 그러면서도 참 다정해 보이십니다.” 곱슬해서 제멋대로 뻗친 꽁지머리에 회백색 수염이 덥수룩한데 단정해 보인단다. 단정하면 냉정해 보일 텐데 다정해 보인단다. 태어나서 처음 듣는 극찬의 표현이다. 

     

칭찬 반응에 서투른 나는 산에서 내려오는 길이라고 엉뚱하게 대답하고 만다. 민망한 나머지 서둘러 백악산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가면서 생각하니 그 대답은 엉뚱하지 않다. 그 대답은 나 아니라 숲 자신이 했기에 말이다. 오늘따라 연이어 오는 등산객 등쌀에 청와대 전망대 아닌 장소를 택해 제의를 진행한다. 나지막이 소리 내어 백악 생명에게 내 뜻을 전한다. 고요히 귀 아닌 귀를 열어 말 아닌 말을 듣는다.  

    

앞으로 이 순례와 제의가 내 삶에서 주축을 이루게 될 듯하다. 그 이름을 관백제라 붙인다. 오늘 관백제 끄트머리는 다소 심란하다. 청와대에서 무슨 떠들썩한 공연이 벌어지고 있다. 들려오는 노래 면면이 ‘거시기’하다. 청와대 희화화 일환은 아닌지. 천공인지 철공인지 하는 자가 내린 처방은 아닌지. 특권층 부역 정권이 하는 패악이 점입가경이니 분노하는 일도, 슬퍼하는 일도, 견뎌내는 일도 여간 어렵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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