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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용원 Jul 09. 2024

나나보조 이야기 281

-허울 대한민국 부역 서사-

숲이 반제국주의 통일전선 주축이다45   


       

이순신이 강감찬을 만났을 때     


관악구청 서남쪽에 있는 골짜기 따라 정능산을 오르면서 오늘 숲 일정 막이 오른다. 비록 작은 골짜기지만 물과 습기를 품은 고운 풍경을 펼쳐내어 나를 대뜸 심취 상태로 데려간다. 천천히 오르다 재를 넘어 서울대학교 치과병원 맞은편으로 내려간다. 길을 건너면 남북 방향으로 좁다랗게 누운 곧은 능선을 만난다.    

  

지도에는 이름조차 없는 나지막한 산줄기지만 남쪽 끄트머리께에서는 버쩍 머리를 들었다 놓으면서 서울대학교 교정을 동서로 가르는 분기점을 마련해 준다. 반대로 그 북쪽 끄트머리에서는 관악산깨나 드나드는 사람들 대부분이 모르지만, 유서 깊은 공간 하나를 품는다. 덕수공원이다. 나도 여러 번 스치듯 지나갔다.    

 

덕수공원 이름은 덕수(德水) 이씨에서 왔다. 덕수 이씨 중흥조인 이변(李邊)과 그 아들을 포함한 일족이 여기 묻혀 있다. 이변은 조선 전기 고위 문관으로 국가에 세운 공이 많아 그가 죽자, 조정에서 예장을 치러주고 여기에 모셨으며 후손이 수호 봉사를 계속해 왔다 한다. 충무공 이순신이 바로 그 이변의 5대손이다. 

     

서울서 태어나 자란 이순신이 걸출한 중흥조 선영에 다녀갔을, 나아가 드나들었을 가능성은 작지 않다. 그런데, 개울 건너 바로 맞은편에 인헌공 강감찬 생가터가 있다. 왜놈들이 훼손하기 전 원형을 간직한 석탑서껀 마을 사람들이 기려온 신성한 낙성대를 모른 채 지나쳤을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거의 없으리라 본다.  


    

이순신이 어렸을 그 무렵 이미 왜구 소란은 물론 국가적 전란 위기 담론이 일반 백성에게도 어느 정도 알려져 있었다고 한다면 강감찬 석탑 아래서 왜적 물리치는 장수가 되는 꿈을 꾸는 이순신을 상상하는 일이 마냥 소설은 아니다. 수백 년을 가로지르는 공시성으로 두 영웅을 서사화하는 일이 그저 드라마는 아니다.  

    

한참이나 숲을 떠나지 못하고 나는 서성거린다. 특권층 부역자 박정희가 억지스럽게 꾸면 놓은 안국사, 동네 한복판에 이지러진 모습으로 명맥을 이어오는 생가터를 들여다보는 강감찬과 골프연습장·구민운동장에 둘러싸여 오그라진 선영을 들여다보는 이순신 시선으로 오늘 내가 어떻게 알량한 부역자인지 들여다본다.

     

숲길을 이따금 뒤돌아보면서 음식점으로 간다. 여느 때처럼 삼삼오오 떼지은 개신교도들로 북적인다. 한쪽 구석에 앉아 천천히 밥을 먹는데 주인이 다가와 빨리 먹으라고 재촉한다. 수긍은 하지만 수용할 수 없다. 그렇다고 괭하게 마음 드러내지도 못한다. 무지렁이 부역자다운 소심한 응징은 다신 안 가는 정도 따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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