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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용원 Jul 31. 2024

‘이상한’ 치료

    

오랜만에 동창들 만나면 나더러 세월 도둑놈이라 한다. 더 젊어 보여서 하는 말이다. 한의사니까 보약 지어 먹어 그렇다 그들은 믿지만 나는 한약‘발’이 먹히지 않는 ‘이상한’ 한의사다.   

   

나는 몸에 문제가 있다고 느끼면 두 가지 ‘이상한’ 방법을 써서 홀가분한 상태로 바꾼다. 하나는 일부러 대변보기다. 속에 탈이 나면 둔중이 느껴지는데, 그 가운데 중요한 하나가 뒤(腸)가 무지근하다는 느낌이다. 대변보고 나면 장이 가벼워진다. 그다음에는 몸 전체가 가벼워진다.   

   

있어야 하지만 없는 무엇을 채우는 일과 없어야 하지만 있는 무엇을 비우는 일 가운데 나는 어떤 일에 더 능할까. 평생 가난 속에서 겨우 간신히 아슬하게 살아온 나는 후자를 운명으로 느낀다; 보양보다 정화가 천명이라 느낀다. 내가 이 치료를 먼저 발견한 곡절이 여기 있다. 

   

  

다른 하나는 국수 먹기다. 속에 탈이 나면 경직이 느껴지는데, 그중 중요한 하나가 가운데(胃)가 굳어 있다는 느낌이다. 국수를 먹으면 위가 풀어진다. 그다음에는 몸 전체가 풀어진다.  

    

모든 국수가 다 그런 효과를 내지는 않는다. 꼭 똑 소면 잔치국수만 치료 효과를 빚어낸다. 가난한 산동네 소년에게 한 번도 이뤄보지 못한 소원이었던, 하여 끝나지 않는 그리움이었던 낭창낭창하고 뽀얀 소면 국수가 마침내 몸을 달래고 치료하는 약식(藥食)으로 승화된 셈.  

    

하필 소면 국수고, 어찌 소원이며 그리움인가. 그 시절 동네 국수 공장은 두 종류 국수를 만들었다: 고급 밀가루 하얀 소면, 저급 밀가루 누런 넓적 면. 누런 넓적 국수는 극빈의 상징이었다. 소년기 극빈 기억을 끌어안은 몸을 다독이는 소면 국수가 묘약이 아닐 도리란 없다.   


   

늙어가면서 입을 닫으라는 말은 이른바 꼰대가 되지 말라는 말이다. 내가 입을 닫는 이유는 다르다: 남들이 나를 ‘이상히’ 여길 때 굳이 설명하려 하지 않는다. ‘이상히’ 여길 만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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