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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용원 Aug 01. 2024

앉은 자와 선 자

   

출근길 지하철. 오늘따라 무슨 일인지 일찌감치 듬성듬성 자리가 빈다. 임산부 배려석 옆에 앉는다. 얼마 뒤 장년 여자 사람이 그 앞에 선다. 머뭇머뭇하더니 이내 앉기를 포기하고 옆 기둥을 붙잡고 선다. 다음 정류장에서 비슷한 연배 여자 사람이 탄다. 한 치도 망설이지 않고 그는 임산부 배려석에 앉는다. 그 자리 앉기를 포기한 여성이 옆에 서 있는 사실도, 임산부 배려석인 사실도 전혀 모른다는 표정이다.   

   

내가 내리려고 일어서 한 걸음 채 옮겨 디디기도 전에 그는 내가 앉았던 자리로 옮긴다. 두 사실 모두 알고 있음을 증명한 거다. 서 있던 여자 사람은 내가 앉았던 자리에 앉으려 몸을 움직이다가 또 포기하고 선 자세로 돌아간다. 어찌 보면 그는 같은 사람한테 두 번씩이나 양보하기를 당한(!) 꼴이다. 이들이 기울어진 까닭은 명분 자체가 아니라 명분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서다. 명분을 사유화하면 ‘앉은’ 자다.  

   

우리 사회는 목하 명분 사유화 전성기를 구가한다. 정부 수반 가시버시가 앞장서서 나아가니 그 떨거지는 물론 아닌 체하던 자들까지 덩달아 난리난리육이오는난리도아닌난리브루스다. 사유화가 마침내 나라를 통째로 흠일·숭미 제물로 또 바치는 식민지 놀이에 가닿는다. 무능한 ‘개검’ 정권 아니다. 유능한 부역 권력이다. 무정부상태 아니다. 반국가상태다. ‘사패’ 표정 짓고 앉은 자를 선 자가 어쩌면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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