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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용원 Sep 12. 2024

다정불심2- 의연법(擬然法)

  

남해관음_김홍도


나는 그리 살가운 사람이 못되기에 그리도 살가운 사람을 꿈꾸지만, 여전히 나는 그리 살갑지 못한 사람을 한 모퉁이 단 위에 모셔두고 살아갈 작정이다. 이는 살갑다는 인간적 범주 그 너머 생명과 비생명에 대해 예의를 갖추기 위해서다. 물론 내 살가움이 그들에게 어떻게 아름답게 번역되어 전달될지 안다면 이 작정은 취소다.

 

거의 한평생 나는 스스로 사람을 아껴서 사람이 된 나무로 여기며 살아왔다. 하필 그 나무가 버드나무다. 버드나무는 나무를 사랑해서 나무가 된 물이라 여겨진다. 그래서 결국 나는 그렇게 나를 물로 여기면서 살아간다. 내가 버드나무며 물일 때, 내 살가움이란 무엇일까? 버드나무와 물에 의인법을 쓰면 모독이다; 의연법 며리.

  

인간에게 살가움은 있으면 더 좋고 없어도 그만인 무엇인가? 만일 그렇다면 나무나 물에는 존재할 수 없다. 나무나 물에는 그런 구분 자체가 성립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살가움이 만일 인간 본성에 속하거나 참여한다면 나무나 물에도 존재할 수 있다. 결국 나무나 물 본성을 번역해야 살가움 실재가 드러나지, 그 반대는 아니다.


나무 본성 요체는 팡이실이(네트워킹)고 물 본성 요체는 녹여 담기(융해)다. 내가 인간으로서 인간에게 행하는 살가움은 따라서 인간 생명 팡이실이(네트워킹) 자체 또는 거기 참여하는 방편이며, 내 삶에 타자를 녹여 담기(융해) 자체 또는 거기 참여하는 방편이다. 나무나 물 본성을 인간 언행으로 번역한 한 양태가 살가움이다.

 

단도직입. 내 작정 취소다. 내가 나무와 물에 인간적 범주를 강요해서는 안 되겠기에 그리 살갑지 못한 사람을 한 모퉁이 단 위에 모셔두고 살아가기로 작정했지만 내 예의가 도리어 주제넘은 짓임이 드러났다. 나무가 살가우며 물이 살갑다. 내 생명이 거기서 왔으니 나 또한 의당 살가워야 한다. “천지불인(天地不仁)”은 몽매다.


★ 의연법은 의인법을 뒤집은 내 표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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