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총독과 왜국 총리가 만나 무슨 늑약을 꾸몄을지 무섭도록 계속 궁금해하다가 생각했다: 114년 전 그때도 이렇게 나라를 팔아먹지 않았을까. 거짓말하고 침묵하는 부역 집단 야합에 변방 백성들은 어어? 어! 하면서 그냥 식민지 개돼지가 돼버린 게 아닐까. 부역 권력자가 흔쾌히 내준 나라를 개돼지가 빼앗겼다며 되찾는 일이 가당키나 할까.
온몸이 뻘게지도록 부끄러운 것은 그런 상황 속에 내가 있다는 사실이 아니다; 그런 상황 속에서 내가 물적(material) 저항을 전혀 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속수무책, 입만 나불거리다가 왜놈 사타구니 밑을 기며 살아가는 날을 보지 않으려면 내가 오늘 여기서 할 수 있는 일이 뭘까, 생각하다가 홀연히 떠올린 말이 “소신공양”이다. 느닷없이 떠올린 이 두려운 말이 왜 이리 일상으로 다가드는지. 베트남 틱꽝득(釋廣德) 스님에 대한 기억 감동이 일으킨 팡이실이 연상일 테다. 차마 흉내조차 낼 수 없는 내공이지만 절박함이야 못지않다.
눈 깜빡할 사이 나는 다시 통속한 소음 속으로 내려앉는다. 털썩거리며 생각한다: 114년 전에는 있을 리 없었던 거대 야당, 171명이나 되는 국회의원을 거느린 민주당은 지금 덩치에 걸맞은 정치력을 발휘하고 있는가? 어찌 보면 이런 상황을 자초한 저들이 비상한 노력으로 매국 협잡질을 막아내야 할 텐데, 한국 대통령을 가장한 조선 총독 앞에서 속수무책이다. 그리고 저 뜨르르한 진보 지식인은 다 어디 갔는가? 저들이 지어내는 담합 침묵은 필경 자기가 특권층 부역자임을 인정하는 자백이다. 정나미가 똑 떨어진다. 뚝 생각을 접는다.
접어도 접어도 생각이 몽개몽개 피어난다. 증조할아버지는 왜군 총탄에 쓰러졌다. 할아버지는 반평생 왜경에게 쫓겨 다니느라 삶이 공중 분해됐다. 모든 사실을 알았던 아버지는 박정희한테 속아 자신과 가족을 더럽혔다. 모순으로 뒤범벅된 멸문 역사 하류에 선 내게는 오늘 상황이 견딜 수 없이 괴롭다. 심리적 “소신공양”은 이미 실행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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