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울 대한민국 부역 서사-
숲이 반제국주의 통일전선 주축이다72
나아가지 않고 되돌아오는 물 걷기-중랑천2
중랑천은 양주 불곡산 청엽굴 고개에서 발원해 의정부와 서울 도봉구, 노원구, 성북구, 동대문구, 중랑구, 광진구, 성동구를 지나 경강(京江)으로 흘러든다. 경강 지천 가운데 가장 강에 육박하는 풍모를 지녔다. 탄천이나 안양천도 만만치 않지만, 걸으면서 마주하는 규모감은 확연히 다르다. 서울 유역에서는 가장 북단인 도봉산역 근처까지 거슬러 올라가도 폭이 좁아진다는 생각이 그다지 들지 않는다.
경강과 만나는 두물개 근처에 조선 태조 이성계와 태종 이방원 고사가 서린 살곶이다리가 있다는 사실은 중랑천을 따라 난 길이 관북(關北)과 서울을 잇는 중요한 경로 일부였음을 알려준다. 함경남도와 강원도 경계 추가령(599m)을 넘어 그 구조곡 단층대를 따라 식민지 시대 건설된 경원선도 여기를 지난다. 1970년대 하류 직강화를 거쳐 동부간선도로가 나면서 교통 요지 성격은 더 뚜렷해진다.
그런 위상 탓만은 아니겠지만 강에 가까운 위용을 지녔으면서도 유역 자연생태 환경은 상대적으로 가장 열악한 편에 속한다. 둔치에 있을 법한 습지 중심 숲도 빈약하고 그나마 심어 놓은 나무들은 듬성듬성 초라하기만 하다. 조금 반반하다 싶은 곳이면 가차 없이 똬리 튼 체육, 위락 시설은 물 걷기 하는 나 같은 사람에게 여간한 살풍경이 아니다. 식민지를 거쳐 온 우리 근현대가 지닌 민낯이리라.
물 걷기를 하면서 산을 더 유심히 보기는 또 처음이다. 특히 북서쪽에서 점점 더 다가오며 자태를 드러내는 도봉산 능선이 눈길을 자꾸 끌어당긴다. 하도 잘생겨서 수시로 걸음을 멈추면서 바라본다. 고층 아파트가 심지어 주요 스카이라인조차 잡아먹는 통에 이리저리 각을 옮기며 살피는 불편도 있지만 즐거움이 더 커 이내 관대해지고 만다. 어떤 사진가 말마따나 도봉산은 모든 미학을 갖추었다.
도봉산역 근처까지 걷고 다리 건너 의정부 땅을 밟아본 뒤 중랑천 걷기를 마무리한다. 중랑천 걷기는 경강 지천 걷기 연장선에 있으나, 내 마음 지도에서 여기부터는 앞으로 나아가는 삶 일부가 아니다; 되돌아 살피는 삶이 비롯되는 걷기다; 지난 삶에서 놓친 근본 문제를 직면하러 회귀하는 걷기다; 경험 함정에 빠진 편향과 그 결과로 나타난 참담한 결여를 살펴 뒤집고 채우기 위한 뼈아픈 순례다.
되돌아오는 걷기가 칠십 줄에 든 내게 유쾌할 리 없다. 그러나 가지 않고는 오지 못할 길이다. 현실에서 다른 선택이 가능하지 않았다면, 가고 옴은 본성상 차이가 없다. 나는 다만 내 우울 맥락에서 출발했으므로 맞닥뜨린 불가피한 한계에 다다랐을 따름이다. 이렇게 경계를 열어 하나와 둘 사이를 확실한 불확실 관계로 풀어 놓는 일은 언제 어디서나 일어나기 마련이다. 겸허하고 담담하게 걷는다.
(2024. 11.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