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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존심: 자존감

by 강용원

토요일에 이어서 또 한강진 가기로 정하고 일요일 오전 교보부터 들른다. 요즘 곱고 촘촘하게 다시 톺아보는 중인 공포·불안 관련 글들을 살피기 위해서다. 조금 다른 시선을 지닌 책 하나를 챙긴 다음 점심 먹고 떠날 요량으로 음식점으로 간다. 두어 숟가락 뜰 무렵 내 또래 사내가 문을 열고 들어서며 서둘러 주인에게 말한다. “막회 먹으러 왔소.” 주인이 자리로 안내하며 묻는다. “예, 막회 하나 시킬까요?” 그는 자리로 가지 않고 서서 답한다. “아, 화장실 갔다 와서 주문하죠.” 잠시 뒤 그가 볼일 보고 내려와 막회 가격을 묻는다. 차림표에 쓰여 있는데 우정 묻는 어투가 수상하다. 주인이 제시한 가격에서 물경 만 오천 원을 뺀 가격을 말하며 비싸다고 투덜거린다. ‘아, 이 사람은 막회를 먹어본 적이 없구나.’ 단박에 감이 온다. 주인이 그 가격대 다른 음식을 권하자, 그는 이렇게 내뱉고 다시 서둘러 나간다. “됐어!” 문 닫히는 소리가 난 뒤에 잠시 멍하니 있던 주인이 나지막이 중얼거린다. “그냥 화장실 좀 쓰자고 하면 될 텐데. 나잇살이나 먹은 양반이 저렇게까지 할 건 뭐래?” 내 말이~

왜 그는 저런 잔꾀를 부렸을까? 뭐 진지하게 탐구할 바도 아니다. 남한테 아쉬운 소리 하는 일이 자존심 상한다고 여겼으리라. 하지만 저런 서사를 구성하면서 내 남을 동시에 속인다는 자의식이 없었을까? 있었음에도 그랬다면 그는 작정하고 저렇게 한평생 살아온 사람이다. 없었다면 대단히 어리석거나 소시오패스와 그리 멀지 않은 거리에 있는 사람이다. 어느 쪽이든 그는 자존심을 살리려다 자존감을 스스로 무너뜨린 중대한 실수를 저질렀다. 아니다. 실수가 아니라 실패다. 실패는 선택이다. 선택은 인격이다. 주인하고 눈이 마주쳐 민망한 웃음을 흘리다 얼른 거둬들이며 가만히 생각한다. 그만 그런 게 아니라 오늘 우리 사회를 뒤흔드는 이 소요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 모든 사람이 저런 식으로 살고 있지 않은가? “됐어!”라는 그 마지막 한 마디 실로 의미심장하다. 자기 잘못을 상대에게 뒤집어씌운 투사다. 대단히 어리석기도 하며 소시오패스이기도 하며 작정하고 한평생 투사로 일관한 삶을 최후까지 시전하는 명신이 떼거리 잡으러 나는 일어선다. 그처럼 서두르지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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